중력을 이기고 솟구치는 마음

비행기가 선사하는 낯선 해방감

by KELLY

비행기 창가 좌석에 앉아 벨트를 꽉 조일 때, 나는 비로소 내가 감당하던 일상의 무게로부터 격리됨을 느낀다. 활주로를 전속력으로 질주하던 기체가 육중한 몸을 일으켜 허공으로 뛰어오르는 순간, 나의 세계는 두 갈래로 나뉜다. 지질한 고민과 산더미 같은 업무가 남겨진 ‘지상’과, 오직 구름과 태양만이 존재하는 ‘천상’. 비행기를 타는 설렘의 본질은 어쩌면 내가 발 딛고 서 있던 현실을 수천 킬로미터 아래로 수직 낙하시켜 버리는 물리적인 쾌감에 있을지도 모른다.


구름 위에서 바라보는 삶의 크기


비행기가 고도를 높여 구름 층을 뚫고 올라가면, 지상에서 나를 괴롭히던 거대한 문제들은 장난감처럼 작아진 도시의 불빛 속으로 흩어진다. 빽빽한 아파트 단지도, 막히는 도로 위의 자동차들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낱 점에 불과하다.


그 압도적인 거리감은 나에게 묘한 안도감을 준다. "저 작은 점들 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아등바등하며 살았을까." 구름 위에서 마주하는 끝없는 수평선과 눈부신 채광은, 좁은 시야에 갇혀 있던 나의 마음을 우주만큼 확장시킨다. 하늘 위에서는 어떤 고민도 결코 구름보다 무거울 수 없음을, 비행기는 온몸으로 가르쳐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비행(飛行)'이라는 고립


비행기 안은 현대사회에서 몇 안 되는 '정당한 고립'의 장소다. 인터넷 신호가 희미해지고 휴대폰이 비행기 모드로 전환되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연락으로부터 해방되어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다.


좁은 좌석에 앉아 헤드폰을 쓰고 엔진의 웅웅거리는 백색소음을 배경 삼아 영화를 보거나, 창밖의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색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 그것은 생산성을 강요하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망명객의 휴식과도 같다. 기내식 테이블 위에 놓인 시원한 음료 한 잔과 따뜻한 물티슈 한 장조차, 이 폐쇄적인 안락함 속에서는 세상 그 어떤 진미보다 특별한 위로가 된다.


도착보다 빛나는 '과정'의 미학


사람들은 여행의 목적지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비행기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다. 승무원의 단정한 안내 멘트, 이륙 전의 긴장감, 그리고 착륙 직전 창밖으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낯선 도시의 풍경들.


목표 지점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는 삶에 지쳤을 때, 비행기는 우리에게 '중간 지점'에 머무는 법을 알려준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공중에서의 시간은, 마치 인생이라는 긴 소설의 챕터 사이에 끼워진 예쁜 책갈피 같다. 그 책갈피가 있기에 우리는 다시 시작될 다음 챕터를 설렘으로 기다릴 수 있다.


당신의 마음은 이미 이륙했다


비행기 바퀴가 지면에 닿고 육중한 동체가 멈춰 서면 설렘은 아쉬움으로 변하곤 한다. 하지만 비행기가 남긴 그 고공의 시선은 우리 마음속에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는다.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 치열한 하루를 살아가더라도, 우리는 알고 있다. 구름 위에는 언제나 태양이 빛나고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이 무거운 중력을 이기고 날아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이 순간,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며 설레고 있는 당신에게 축하를 보낸다. 당신의 영혼은 이미 지상을 떠나 가장 자유로운 궤도에 진입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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