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부모와, 보다 더 어린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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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앓았던 것은 특발성 척추측만증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유전적인 요인이 있을 수 있는 척추기형.
어린 시절 유난히 공부에 흥미가 있던 때에
하루 종일 책상에서 살고 자고 먹으며
몸을 혹사하던 시기가 있었다
누운 채 휴식을 취해야 하는 인간의 몸인데
엎드려서 자봤자
얼마나 고운 자세로 잠들 수 있을까
학교를 가려 나가는 것 외에는
바깥출입이 어색할 정도로
집, 학교, 집, 집.. 을 반복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예상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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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내 병을 알게 된 건
엄마가게의 고객 한분이 알려주신
일명 ‘척추측만 진단법’ 때문이었다
두발을 모아 서있는 자세로
허리만 숙여 발 쪽으로 손을 뻗는 자세,
굽힌 등 양쪽이 수평을 이루지 않으면
척추측만임을 알 수 있었다
온갖 테스트와 시험에 몰두해 있던 나는
그 테스트에서 처음으로 탈락하고 말았다
육안으로 확인되는 확실한 차이,
부모님은 수차례 다시 확인해 보고선
그동안 가장 가까이에 있던 딸을 보고도
이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큰 죄책감을 느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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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내 나이 14살,
뼈도 유연한 편인 그렇게 늦지 않은 나이에
그렇게 늦지 않은 발견이었다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향한 건
병원에 가서 상세한 설명을 듣고
도수치료를 받아보는 것이었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
지금 대학병원을 가는 게 좋겠다
더 늦으면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어쩌면 첫 번째 기회일 수 있었던
그 ‘상세한 설명’을 듣고서
어린 부모와, 보다 더 어린 딸은
지레 겁을 먹고 대학병원에 앞서
치료를 시작해 보겠다는 오만으로
눈과 귀를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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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수치료를 시작하고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나를 드러내는 것에 상처가 많은 내가
누군가에게 내 몸을 보여주는 걸 넘어
제일 감추고 싶은 나의 ‘오점’만을
집중해서 쳐다보는 곳에
내 두 발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많이 어렸고
사춘기를 겪고 있는 예민한 여자사람이었기에
남자 선생님께 몸을 보여드려야만 하는,
그런 부분이 더 큰 스트레스로 내면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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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이 썩 내키지 않게 기억되는 건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도수치료를 시작하고서
나의 일상은 학교- 집- 병원으로 바뀌었고
치료는 길어야 한 시간 반에서 두어 시간이었기에
부모님은 나를 마주하기만 해도,
쳐다보는 순간순간마다 나에게 말했다
.. 허리 좀 펴라
가슴 좀 쭉 내밀고!!
너 등짝 좀 봐봐
운동 안 하니?
너 그러면 큰일 나
너 진짜 심각하다 알고 있니?
병원 갔다 와서는 운동만 하라니까?
어쩌면 ‘대학병원’이라는 언급을 들은
어린 부모의 초조한 압박감이었을지 모른다
물론 그때도 이해를 못 했던 건 아니지만
95% 이상이 상처,
그저 상처로 남았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상처는 곧 반항심으로,
반항심은 곧 상태 악화로,
내게 자꾸만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