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드 드라마 한 편의 시발점
내가 무의식 중에 되뇌는 말들이 있다.
다 지나가는 일이다.
나만 힘든 건 아니다.
바닥을 쳤으니 이제 좋아질 일만 남았다.
이보다 더 나쁠 일은 없다.
그런데 이보다 진짜 나쁠 순 없었다.
나의 30대처럼.
나의 30대는 눈물과 분노의 연속이었다.
30살 10월 암 선고를 받았다.
나에겐 이름도 처음 들어본 암이었다.
유.방.암.
하필 유방암일 게 뭐람.
신이 나에게 준 몇 가지 중 하나가 그나마 남들보단 큰 가슴 아니었던가. 이제 이것마저도 가져가시네.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큰 상처를 가지게 될지 모르고 단순히 저런 생각만 했었다.
사실 막 20대를 지난 나에게 암이란 저 먼 나이에 걸리는 흔하지만 친숙하지 않은 병이었다.
원망스럽지 않았다.
아는 게 없으니 원망이든 지나간 후회든 할 게 없었다.
단지 이제 회사를 쉴 수 있겠구나. 다행이다…이 생각뿐이었다.
아프기 전 회사 앞 횡단보도에서 출근하기 싫다고 울었었다.
매일밤 이른 잠을 청하며 현실을 회피하고 싶어했다.
그만둘 수도 없는 무능력하고 부모님이 무서운 그런 나이였다.
검진 결과를 듣고 부모님과 가족들이 회사 앞으로 나를 데리러왔다.
인수인계도 없이 짐을 싸고 급하게 도망치듯 나오면서그 자랑스럽다던 사옥의 회전문을 돌면서 여길 탈출했다는 기쁨과 어떠한 안도감도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빠가 길을 헤매고 집과 반대편인 김포까지 돌고 돌아 집으로 갔다.
난 심지어 그마저도 너무 짜증 난다며, 화를 냈었다.
어렸을 적 아빠의 사고 이후, 우리 가족에겐 두 번째 시련이었다.
죽어서야 회사 문을 열고 나가는 거창한 사회생활도 아니었다. 연봉이 너무 좋고 복지가 끝내주는 대기업도 아니었다.
취업이 안돼서 안 풀리던 20대 후반의 여자가 버티고 이겨내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인정받고 싶어 야근을 하고, 주말 출근을 반복하고 말 한마디 반박하지 못하고 속을 끓어가며 일을 배웠다.
그렇게 하면 다 잘될 줄 알았다.
그런 곳에서 일한 지 약 2년 만에 난 병을 얻고 휴직을 했다.
이후 내 삶은... 그 독한 항암치료 때보다 눈물을 더 많이 흘린 새드 드라마 한 편이었다.
내 드라마의 시발점.
30살 암을 선고받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