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공원 가던 길
1. 남산
집을 나선다. 딱히 오라는 곳이 있어서 길을 나선 것은 아니었다. 요즘 들어 부쩍 많아진 듯이 느껴지는 시간을 집에서 그냥 보내기 싫은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성북동에 있는 길상사의 주차장 옆에 있는 반찬조리장은 “맑고 향기롭게”에서 운영한다. 지난 설 명절 전에 그곳에서 음식재료를 옮기다가 반찬조리장 밖의 얼어붙은 시멘트 바닥에 넘어지면서 어깨를 다치고, 3월 20일에 수술을 한 이후부터 시간이 남아 내 주변에서 서성이기 시작했다.
일주일 중 목요일에 가던 그곳을 갈 수가 없다. 도움이 필요한 자리인데 한쪽 팔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곳에 가면, 보살님들이 돌봐야 할 대상이 되기 십상인데 그러고 싶지는 않았기에 자연스레 목요일이 남았다. 평일 오후에 가던 양재동의 자문회사에도 가지를 않는다. 회사의 사정이 어려운 것 과는 무관하게 한번 비운 사무실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이후로 회사에 가는 것이 자꾸만 낯설어져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뜸해졌다. 그 시간이 내 주변에 머문다. 오른팔을 사용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골프와 테니스와 자전거 등 야외활동도 접어야 했다. 꽤 많은 시간이 주변에 남았다. 색소폰 연습실을 옮길 생각으로 다니던 곳을 정리하고 다른 곳을 찾던 중에 수술하면서 자연스레 후속 연습장 찾기가 중단되었다. 또 시간이 떠돈다. 수술 후유증을 염려하는 주치의의 조언에 따라 술을 자제해야 했다. 사람 만나면 막걸리 한잔하며 대화를 즐겼는데 그럴 수 없는 상태가 사람을 만나기 어색하게 만들어 저녁 술자리가 거의 사라졌다. 참으로 많은 시간이 남았다. 이렇게 갈 곳을 잃은 시간이 한가한 상태로 내 주변을 가득 채웠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떠도는 시간을 새로 시작한 사실화(그림)가 많이 흡수해 주었다. 그러나 아내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질식할 것 같다. 이번 주말도 마찬가지였다. 주말에는 전화가 무성음의 깡통이 된 듯 너무나 조용하다. 답답한 시간의 쓰임새를 못 견디고 길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면서 국립박물관에 갈까를 생각해 보지만 그곳은 실내이다. 이 좋은 날씨에 특별한 관심거리도 없이 실내에 혼자 머물기 싫다. 그래 남산으로 가자. 마침 402번 버스가 온다. 차에 오른다.
2. 조용한 쓸쓸함
생각보다 조용한 남산에는 여름이 가득하다. 어제의 일이 떠오른다. 딸네 부부가 내가 사는 곳에 볼일이 있다며 집에 왔다. 딸은 몽몽이를 가진 지 7개월이 지나고 있어서 배가 많이 불렀다. 안쓰럽다. 그럼에도 나는 몽몽이의 움직임을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말없이 딸의 배에 손을 올렸는데 짧은 사이에 아이의 연약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런데 딸의 몸짓이 싫어하는 눈치이다. 섭섭했다. 내가 아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는 딸아이인데 아빠가 배를 만져 보는 게 싫을 수가 있나? 아내는 내가 딸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배에 손을 댄 것이 문제란다.
개망초가 온 산을 덮을 듯이 별처럼 피었다. 구한말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래종이라는데 하필 그 시기에 들어와 ‘나라를 망친 꽃’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단다. 나라를 망친 것은 식물이 아니라 인간들인데 개망초가 억울해 보인다. 바람에 산들거리는 흰 꽃 무리가 햇볕에 처연하다. 남산의 남쪽 사면을 걷는다. 햇볕이 잘 드는 곳이라 양지식물이 많을 것 같은데 활엽수의 수세가 만만하지 않다. 키가 큰 ‘남산 위의 저 소나무’가 드문드문 서 있고 그 아래에는 신갈나무를 중심으로 활엽수의 푸르고 큰 잎이 자라고 있다. 소나무는 매년 열심히 씨앗을 뿌릴 터이지만 넓은 잎에 덮인 땅에서 씨앗이 발아하기가 쉽지 않고, 어찌어찌하여 싹이 났다고 하더라도 자라서 제 어미나무처럼 낙낙장송이 되기는 더구나 어려워 보인다. 이런 상태로 시간이 더 지나서 활엽수의 키가 커지면 그때도 우리가 ‘남산 위의 저 소나무’를 볼 수 있을까?
남산 둘레길 중 ‘자연생태길’이라 명명된 산길을 따라 걷다 보니 길옆으로 물이 고인 곳이 있다. 물은 고여있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흐르고 있다. 남산의 중턱보다 높은 어디쯤의 땅에서 흘러나온 지하수가 물길을 만들고 그 물길을 따라 물을 좋아하는 버들과 창포류가 자라고 있다. 흐르던 물이 고인 작은 공간 옆에 이런 간판이 눈길을 끈다. ‘도롱뇽의 알을 보호해 주세요.’ 물이 고인 작은 공간을 다시 살핀다.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저런 간판이 오히려 도룡뇽의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는 거 아닌가? 간판을 보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갔을 내가 다시 물속을 들여다보듯이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한 바와 같이 동물들에게 호의적인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달맞이꽃이 햇볕 속에서 노랗게 빛난다. 낮에 저리 환한 노란색을 보면 황금낮달맞이라는 원예종인 듯하다. 요즘 도심의 좁은 터에서는 분홍색의 낮달맞이도 심심하지 않게 만날 수 있다 . “밤에 피는 것은 밤에, 낮에 피는 것은 낮에.” 이렇게 자연스러운 자연의 흐름보다 계절과 시간을 잊어버린 식물이 도심 공원에는 넘쳐나고, 과일가게에는 계절과 무관한 과일들로 또 넘쳐난다. 그래서 사람들도 밤낮없이 깨어 있어 눈빛이 붉게 충혈되어 있나 보다. 우리의 아이들이 밤 10시까지도 깨어 있는 상황조차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달맞이꽃 줄기에 기대듯이 닭의장풀(달개비)이 허리를 펴고 있다. 아직 몇 마디밖에 자라지 않았지만, 붉은빛이 감도는 줄기는 단단하고 연록의 길쭉한 잎에는 삶의 의지가 가득하다. 달개비는 사람의 보살핌과 관심이 없이도 그냥 그 자리에 있다. 조만간 노란 수술을 달고 보라색 꽃잎 두 장을 가진 멋진 꽃이 피어나 달개비다운 모습으로 별을 보고 비를 맞겠지. 자연스러움이 자랑스럽다.
이렇게 이리저리 눈길 닿는 것마다 간섭하며 남산길을 걸었다. 안개처럼 조용한 쓸쓸함이 숲에 떠돌았다.
2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