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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그리기(3)

연꽃의 한살이에 얽힌 시간을 보다

by 구자훈


채색을 위해 가장 유사한 색연필의 끝을 가급적 날카롭게 하여

연필로 그린 외곽선을 따라 조심스레 표시해 나간다.

그러나 단번에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어색하다 싶으면 다시 색연필의 외곽선을 수정한다.


유화와 달리 색연필은 연필처럼 지울 수 있다는 장한 면이 있다.

내게는 그렇다. 이것이 내가 그림을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다시 지우고 그리고를 반복하는 지루한 과정이 계속된다.


스케치북에 들어갈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는 시간이 멈춘 듯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손전등도 없이 걷고 있는 듯하기도 하고, 실망스러움에 연필을 내팽개치듯 잠자리에 들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서재의 불을 켜고 책상 위의 그림을 힐끗 쳐다본다.

연애할 때 금방 헤어진 연인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는가.

연꽃잎이 사진과 매우 흡사해졌다고 놀라며 또 색연필을 든다.

연꽃의 시간이 내 시간 속으로 스며 들어온다.


이제 나의 연꽃이 되어 간다.

곧 이름을 불러 줄 때가 오겠지.

가장 옅은 색의 기본 채색을 짧은 피치로 칠한다.

연꽃잎사진.png

저 꽃잎의 부드럽게 연한 노랑을 가진 순백색을 무슨 수로 표현할까.

연꽃밥확대.png

노랗게 도톰한 꽃술은 또 어쩔까.

연잎 확대.png

이슬이 내린 저 연꽃잎을 어떻게 나타낼까


기본 채색하고 나서도 몇 일째, 그냥 지나치듯 쳐다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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