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히지 않는 끈

- 시간을 밟고 20화

by 금희

사십 인의 도둑은
훔친 보물들을 동굴 깊숙이 감춰두었다.
그리고 “열려라 참깨”를 외친 알리바바는,
그들의 보물을 또다시 훔쳐
마치 자신이 주인인 양 동굴에 명령했다.
“닫혀라 참깨.”

도둑은 누구인가?
먼저 훔친 자인가,
다시 훔친 자인가,
아니면 그 보물 속에서
욕망을 발견한 자인가.




어쩌다 엉겁결에 받게 된 찝찝한 팁.
수잔은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카지노 입구 앞을 어슬렁거렸다.

맥주 박스의 무게로 늘어지던 팔.
냉장창고 속 얼어붙던 손가락.
여전히 암호처럼 들리는 술 취한 영어.
그 모든 것들이 등 뒤에서 날마다 자신을 밀어냈다.

카지노는 입을 벌린 동굴 같았다.
자신이 “닫혀라”라고 소리치기 전까진
꼼짝도 하지 않는 고래의 뱃속.

그 안에선 거짓말처럼 자라는 욕망들이
기계음과 함께 소리 없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누군가의 외침, 누군가의 탄식,
그리고 잭팟을 향한 눈빛.

그날, 수잔은 다시 동굴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새 수잔은, 그 동굴 속에 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작은 마을엔 눈이 많았다.
등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기척.
그래서 주말이면 수잔은 도시로 향했다.
낯선 군중 속에선 누구도 묻지 않았고,
그곳에선 모든 게 허용되는 듯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정을 만났다.
아이 둘을 둔, 60대 초반의 한국인.
“게임은 잘 안 해요. 그냥 공기 좀 마시러 나오는 거죠.”
한때 도박으로 많은 걸 잃었다는 그녀의 고백에는
묘한 체념과, 지울 수 없는 중독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정의 남편은 그녀의 위치를 확인하듯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다.
그럴 때면 정은 떠듬거리며 ‘지금 슈퍼야’라고 말했고,
가끔은 수잔에게 전화를 넘기며 눈을 끔벅거렸다.

정의 전화를 대신 받아 거짓말을 덮어주던 어느 날, 수잔은 문득 생각했다.
‘결혼 안 한 게 다행일지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게 오히려 묘한 안도감을 줬고,
그 안도는 그녀를 더 깊이 그곳에 머물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정의 전화는 뚝 끊겼다.
그녀는 조용히 사라졌고,
그 순간부터 수잔에게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예전엔 이기면 멈췄다.
‘오늘은 운이 좋았어.’ 그렇게 돌아섰다.
하지만 이제는 멈출 수 없었다.

처음엔 5달러를 넣었다.
그다음 날엔 20달러.
그리고 곧 50달러, 100달러…
수잔은 곧 잭팟이 터질 거라고 믿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 짧은 기대감 하나로 스핀을 놓지 않았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
그다음은 이틀에 한 번,
그리고 어느 날은 밤샘까지.

이긴 날엔 더 이기고 싶었고,
잃은 날엔 되찾고 싶었다.


못 먹어도 고.
언젠가 들었던 그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을 외치던 감춰진 탐욕의 늪,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몇 번이고 밤을 새웠고, 감각은 점점 무뎌졌다.
새벽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수잔의 눈동자엔 더 이상 기쁨도, 후회도 없었다.
그저, 잃어버린 시간 위를 걷는 사람의 공허함만이 남아 있었다.

주말마다 그녀가 보이지 않자, 리아와 마리아가 슬쩍 물었다.
“요즘 어디 가? 데이트라도 해?”
“남자 생긴 거야?”

“아니야, 그런 거 아냐.”
수잔은 얼버무리듯 웃었다.
그들의 시선이 어쩐지 간질거렸다.
말할 수 없었다. 아니,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수잔은 다짐했다.
‘이제는 끊어야 해. 정말, 그만 가야 해.’
하지만 그 밤에도, 그녀는 슬롯머신 앞에 앉아 웃고 있었다.

꿈조차도 그녀의 의지를 비켜갔다.


누구나 손에 쥐었다고 믿는 무언가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때때로
쥐는 순간부터, 흘러내리는 끈일지도 모른다.

수잔은 그 끈을 따라 동굴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래도록, 나오지 못했다.


"It’s not a game when you can’t stop playing."
“멈출 수 없다면, 그건 더 이상 게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