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생각
문보다 먼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촐랑대던 강아지 꼬리처럼
어매 그림자에 달라붙던 너를
번쩍 안아 품지 못했지
먼지 묻은 날들 하루같이 저물걸
어맨 왜 몰랐을까
삐걱이는 문지방을
애꿎은 발길로 서성이다
뒤늦은 기다림에 문을 두드려 본단다
아이야
어매는 또 이렇게
다른 길만 바라보나 보다
며칠째 흐린 날씨가 이어진다.
햇빛 한 줄기 보이지 않는 회색 하늘 아래, 허리며 어깨며 손가락뼈까지 시렸다.
‘한기(寒氣)’라는 말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문득, 오래전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머리가 시리다”며 보자기로 머리를 감싸던 그때의 엄마.
그땐 어린 마음에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때의 엄마 나이쯤이 되어 있으니 이제야 알 것 같다.
그 시림이 단순한 추위가 아니었음을.
요즘은 날이 흐리고 습도가 높으면 뼈마디가 욱신거린다.
의학적으로는 골다공증 수치 때문이라지만, 그런 설명보다 더 실감 나는 건 ‘세월’이다.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몸이 마음보다 먼저 나이를 받아들인다.
나의 경우엔 특히 더 그렇다.
가끔 연락하는 몇 안 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늘 웃으며 말한다.
“지금 우리 나이가 제일 좋은 때야.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좋은 거 먹고, 즐겁게 살아.”
좋은 말이다. 옳은 말이기도 하다.
사실 젊었을 때부터 그렇게 살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겠지.
그런데 인생이란 게 참 묘하다.
쉬워 보이지만 쉽지 않고, 단순한 듯하면서도 복잡하다.
무언가가 끝날 듯, 해결될 듯하다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그 아이가 또 자라 결혼하고 손주를 낳고, 그 손주가 다시 어른이 되는 걸 지켜보면
그때쯤엔 ‘살만큼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직은 먼 이야기 같다. 아닐 수도...
잡생각을 떨쳐내려면 정리만 한 게 없다.
냉장고 안을 정리하고 바닥 가득 반찬통들을 꺼내 짝을 맞췄다.
양말이 늘 짝을 잃듯, 반찬통들도 늘 짝이 안 맞는다.
확실히 나는 살림꾼은 아니다.
그래서 이번엔 과감히 짝 잃은 놈들을 버렸다.
며칠 뒤 어딘가에서 제짝을 발견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때의 일이다.
이왕 시작한 김에 옷서랍도 정리했다.
얇은 옷을 넣고 겨울옷을 꺼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집에만 있다 보니 그럴 일도 잊고 있었다.
정리하다 보니 몸에서 열이 올라 반팔이 되었다.
한참 후에야 청소기를 끄고, 바닥을 닦고,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일주일째 내리는 비 때문인지, 매일 놀러 오던 벌새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면 남쪽, 더 따뜻한 나라로 날아갔을까.
그 생각에 괜히 마음이 따라간다.
이 생각, 저 생각이 얽히고설켜 두서도 없고, 방향도 없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내 인생과 참 많이 닮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