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 경리의 이브
10층에서 1층까지 , 오래된 엘리베이터가 '쿠덩, 쿠덩'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다행이었다. 나의 심장소리를 묻어줘서.
'스르르' 문이 열리고 중년의 남녀가 좁은 문 틈으로 밀고 들어온다. 여자는 털이 북실한 조그만 강아지를 안고 있었다. 여자는 연신 강아지의 목덜미를 손으로 훑으며, "추추추, 우리 아기"를 연발하고, 남자의 박스를 든 어깨가 움찔 거리며 경리의 팔을 스쳤다. 경리는 벽에 기대어 온정신을 슬리퍼에 집중하며 버티는 중이었다. 강아지가 돌아보며 연신 코를 벌렁거리자, 경리는 손에 쥔 음식물 쓰레기를 등뒤로 숨겼다. 하지만, 악취는 숨겨지지 않았다.
10층, 1003호 , 나는 집 앞에 다시 우두커니 섰다. 좁은 복도 사이로 퀴퀴한 냄새가 손끝을 타고 들숨 날숨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집안으로 들어가던 , 다시 쓰레기 처리를 하던 , 결단을 내려야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집으로 들고 가자니 엄마의 역정이 싫고 , 엘리베이터를 다시 타자니 사람들의 눈이 무섭다.
공황장애, 사회 부적응, 대인 공포와 우울... 5년 동안 나에게 하나씩 더해진 병명.
A에서 Z까지 체크리스트 안에서 나의 소리는 반항을 멈추고 질문은 어머니의 자궁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의사의 진단 보다, 가족의 지쳐가는 눈빛 보다, 더욱더, 나를 옭아매는 것은 내 안에 숨쉬는 두려움이었다.
경리는 낮과 친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증오했는지도 모른다.
햇살 아래에서 눈부시게 태어나는 생명들을 보며, 태양의 웃음소리를 들을 때면,
외따로 어둠 속에 숨은 자신의 방은 보이지 않는 늪의 무덤 같았다. 아니, 절망의 무덤이었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조금 더 안전한 길을 택하는 것.
그게 생존이라는 걸, 경리는 알고 있다.본능은 그렇게 스스로 가야 할 길을 학습했다.
쓰레기를 들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서자,
식탁 앞에 앉아 있던 가족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향했다.
나는 애써 모른 체 쓰레기를 현관 앞에 내려놓고 경직된 팔과 다리를 로봇처럼 움직이며 나의 은신처로 숨어들었다.빨리 그리고 천천히.
“경리야, 방문 열어. 어이구...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야? 문 열어!”
노기와 안타까움이 섞인 엄마의 목소리를 피해 경리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침대 구석에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오늘은 파도가 보이지 않았다.
섬을 소환해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너무 꼬박, 잘 챙겨 먹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경리는 슬그머니 약봉지를 침대 밑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잊기 위해서.
"망각은 기억의 또 다른 이름이다."
– 조르주 페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