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

- 6화 :그냥, 장난이었어

by 금희

현수는 사과를 질겅질겅 씹었다.
손에 사과가 들려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멀찍이서 바라봤다면, 마치 말린 오징어나 문어 다리를 씹고 있는 듯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익숙한 기억을 토대로 허상을 덧칠하기에, 외견만으로 누군가를 섣불리 단정하는 일은 미뤄두기로 하자.

현수는 아버지가 늘 못마땅했고, 아버지 역시 그런 아들을 믿지 못했다.
“아버지, 이 땡볕에 꼭 지금 해야겠어요?”
말은 걱정하는 듯했지만, 둘 다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여기 땅 팔고… 뭐, 집이야. 엄니하고 산다 치고…”
현수는 아버지의 고집스럽고 구차해 보이는 삶을 경멸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그런 시선을 못 본 체했다. 아니, 보지 않으려 했다.
작은 과수원, 마지막 남은 그 땅을 팔자는 현수의 설득은 어느 순간부터 협박으로 변했다.
그는 반쯤 베어 문 사과를 바닥에 내던지고는 돌아섰다.
그 순간 번뜩인 그의 눈빛은, 독사의 혀처럼 날카롭고 가늘었다.

현수는 제법 머리가 좋았다.
아버지가 묵묵히 일하며 학비를 댄 덕분에, 대학 졸업까지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름난 대학은 아니었지만, 서울 안의 적당한 학교, 적당한 과를 거의 놀면서 졸업을 했다며 , 그는 동창들을 만날 때마다 으스댔다.

현수를 한 번이라도 겪어본 동창들은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거리를 유지했다.
괜히 얽히지 않기 위해, 또 괜히 찍히지 않기 위해 표정도 말도 조심했다.
현수는 그게 짜릿했다.
대장이 된 듯한 공기, 그 안에서 그는 기분 내키는 대로 사람들을 휘저었다.
점점 그는 하이에나처럼, 주변 사람들의 그림자를 밟으며 어슬렁거렸다.
그 습성은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이었다.


“야, 오늘 반찬 뭐 싸왔냐?”
교실에 들어서는 현수는 언제나처럼 시끄럽다.

교실은 그에게 무력했다.
쉬는 시간엔 반 아이들의 도시락을 뒤적이며 품평했고,
수업 시간엔 또박또박 “차렷, 경례!”를 외치며 모범생의 냄새를 풍겼다.
‘빌리자’로 시작된 물건은 돌아오지 않았고, 발걸기는 그의 특기였다. 처음엔 우스깡스럽게 비틀거리며 넘어지는 모습에 아이들도 깔깔거리며 웃었다. 자신이 걸리기 전까진.
경리가 자리에 돌아가는 길, 현수는 슬쩍 발을 내밀어 그녀를 넘어뜨렸다. 우물쭈물하는 그녀를 일으키며 시치미를 뗐고,
뒤편에서 이를 지켜보던 태석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눈을 찡긋하며 소리 없이 웃었다.
어느 날, 참지 못한 한 아이가 담임선생에게 일러바쳤다.
“죄송합니다. 장난이었습니다.”
현수는 너스레를 떨었고, 담임은 그저 웃으며 말했다.
“장난도 적당히 해, 이놈아.”
그리고는 현수를 고자질한 아이의 등을 툭 치며 덧붙였다.
“남자 새끼가 소심하면 못 써. 서로 감싸줘야지.”

그렇게 모두가 , 썩은 사과를 조금씩 베어 물고 있었다.

익숙해진 그의 장난은 성인이 되어 직장에서도 통했다.
“부장님, 이거 무농약 사과예요. 사모님이랑 애들 드세요.”
“과장님, 이런 건 저희 같은 말단들 시키셔야죠~”
현수는 언제, 어디서, 누구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하는지 정확히 알았다.
강자와 약자의 냄새를 본능처럼 구분했고, 정글 같은 조직 사회의 룰을 충직하게 따랐다.
하지만 승진은 늘 그의 손을 비껴갔다.
‘만년 대리’라는 꼬리표가 붙은 뒤부터, 그는 더 비뚤어졌다.
틈이 보이면 물어뜯었고, 타인의 약점은 곧 그에게 기회였다.
어느 순간부터 상사들조차 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현수는 유년의 그때처럼, 아니 더욱 탐닉하며 즐기고 있었다.

태석은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손에 쥔 펜이, 분노로 움찔거렸다.

1988.8.15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는 선악설을 ,
현수는 그것을 증명하는 듯 보인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일기장에 옮겨 적어 나의 기억을 더럽히고 싶지는 않다.
나 자신에 대해 기록하기에도, 아직 말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기 위해, 나는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죄일지라도...


경리가 첫 번째가 아니었듯, 박태석이 마지막도 아니었다.
그저,
모든 것이 장난인 것처럼.

2016.6.3


언제부터 인가, 내 자리에는 책상이 없다.

그의 장난일까?


나는,

숨은 걸까?

아니면 , 누군가 나를 치워버린 걸까?


나는 아직 , 무너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