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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미reme Apr 28. 2024

엄마가 된 딸

"너도 자식 낳아서 길러봐~"

"지랑 똑같은 자식 낳아봐야 알지!!"


우리나라 사람 중에 이 레퍼토리 한 번도 안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티브이에서도 정말 숱하게 들었고, 나는 내 엄마에게서도 정말 많이 들었다. 


이런 멘트가 나올 때면 엄마의 옆에 있는 주변 엄마들이나, 이미 오래된 엄마인 할머니들이 고개를 리드미컬하게 끄덕이며 어리고 어리석은 눈망울에 신뢰를 굳히려는 단합을 한다.


우리는 모르는 엄마들만이 아는 세상, 엄마들은 다 공감하는 그런 심오한 세상이 있는 것일까?

엄마들의 눈에는 그렇게 자식들이 나쁜가?

항상 자식들만 나쁜가?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그럴 거면 왜 낳았지? 누가 낳아달라고 사정했나?'

였다.


앙다문 입으로 나의 언짢은 불만을 드러냈지만 사실 어린애의 그런 굳어진 입술쯤은 가볍게 무시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안심하고 삐죽거릴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둘러 조심스러워지는 스스로를 느낄 때면 괜히 비굴하게 느껴지고 말았었다.


아직 엄마라는 역할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명백하고 합리적인 근거 앞에서 어른에게 대적할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반격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슬며시 그녀들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날이 두려워지기도 했다. 

나는 정말 나의 어린 시절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부모님에게 못할 짓을 했던 자신의 과오를 떠올리며 죄책감으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하는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나의 자식은 나를 닮으라는 저주에 따라 나를 괴롭히는 평생의 족쇄이자 벌칙이 될 것인가?



그런데, 

내가 얼마나 그렇게도 나쁘길래 나에게 그런 저주를 내리는가?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은 어리석고 나쁜 아이이고, 나는 결국 벌을 받아야만 하는 운명인 것일까?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엄마라면서 그녀들의 사랑도 거두게 만들 만큼 


그렇게 나는 나쁜가?


이런 생각은 활자가 아니라 감정의 덩어리로 나를 감싸곤 했다. 


그런 부끄럽고 차갑고 쓸쓸하면서 후텁한 감정의 뭉텅이는 정수리부터 발가락까지 저릿하게 나를 괴롭혔다.

정체도 모를 것이 단단하게 나를 온몸을 면면히 묶은 듯한 그 답답하고 강력한 힘은 나의 무력함을 자각하기에는 차고 넘치는 것이었다. 

이미 무력한 존재가 느끼는 치욕과 분노는 그렇게 하찮을 수가 없었다.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은 가련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희망이 스민 두려움을 갖게 됐다. 


아이를 낳고 나 같은 자식을 길러보니 정말로 내가 그렇게도 나빴어서, 그런 나를 기르는 엄마의 고통이 그렇게도 깊었어서 그 사랑의 애씀이 절절히 느껴지고 한없이 죄송해지면 그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했다.


'정말 힘드셨구나~, 그럼에도 이렇게 사랑으로 나를 키워주셨구나~, 나는 정말 엄마를 괴롭히는 엄마의 삶의 덫이었구나...'

이렇게 수긍이 되면 더 치유적일 것 같았다.


어그러진 사랑으로 고통받았다는 것보다 내가 그럴 만큼 나쁘다는 것이, 그땐 몰랐던 내가 어리석었을 뿐 사랑받았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더 만족스럽고 안심되는 결론일 것 같았다.

결과가 궁금했다.




첫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이 무력하고 신기하고 이쁜 것을 보고 있으면서, 그 하찮은 것이 제 목을 스스로 가눌 수 있게 되고, 몸을 지탱할 수 있게 되면서 혼자 원하는 곳으로 제 몸을 이동시킬 수 있게 되고, 온전히 나에게 생존을 맡긴 채 성장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아이가 하나가 되고 둘이 되고 셋이 되면서, 

내 가슴속의 설움과 울분은 더 폭발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지?"



그게 내 결론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미친 듯이 화를 낼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렇게까지 비난과 조롱으로 일관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렇게 무시하고 폭력적이었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렇게 미워하고 원망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렇게 어릴 때부터 그럴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렇게 끝까지 계속 그럴 수 있었을까....


트라우마적 기억을 잊어버린 PTSD환자처럼 나는 많은 것들이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써 내려간 일기장을 버리기로 결정했을 때즈음 기억도 함께 사라졌다. 

내 가슴속에서 계속 나를 피 흘리게 했던 칼날같이 아프고 선명한 말들이 거짓말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끄집어낼 수 있는 기억이 별로 없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토해내던 뜨거운 한숨은 여전히 흑백사진처럼 기억이 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외치던 마음속 덥고 무겁고 답답하고 축축한 그 슬픔. 


그렇게 '네가 엄마가 돼 보면 알' 그 신화는 산산이 깨졌다.


엄마가 되어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빴고, 더 너무했다.

도대체가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이제 내가 엄마의 마음을 몰라서라고 핀잔주며 무시할 사람도 없다.

요즘시대에 적지 않은 세 아이의 엄마인 나에게.


처절하게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을 가지게 된 것이 엄마가 내게 준 몇 안 되는 좋은 유산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 아이들은 나처럼 크게 하지 않겠다는 목숨 같은 나의 약속.


그녀들의 저주를 들으며 자라서 엄마가 된 딸은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해야만 진짜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녀들 같은 엄마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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