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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미reme Apr 21. 2024

더 깊이 얽매이는

좋아하는 노래는 벨소리로 해 놓으면 안 된다. 

나중에는 그 노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반복해서 많이 들어 질리게 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 노래 너머로 받기 싫은 사람이 버티고 있는 기억이 쌓여서 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해가 중천이겠지만 나에게는 좀 이른, 내가 하루를 맞을 준비가 되기도 전에 나를 깨우는 벨소리는 보나 마나 엄마다.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서 과일주스를 갈아주고 오늘 만든 반찬이 있는 따뜻하고 충분히 풍성한 아침밥을 차려줬었다. 

짜증이 잔뜩인 날카로운 잔소리와 함께하는 달콤한 주스와 맛있는 아침밥은 입이 짧은 동생에게는 고역이었고, 결국 못 먹어내는 동생과 안 그래도 언제나 날이 서있는 엄마사이에서 나는 긴장으로 심장이 굳는 느낌이었다. 


굳은 심장으로 영혼까지 얼어붙은 나는 맛있다는 말이나 감사하다는 말 따위는 말 수 없었다.

그저 나에게 화살이 번지지 않길 바라며 빨리 아침을 먹고 이 폭풍을 피해 학교로 도망칠 마음으로 조급한 손놀림과는 달리 속은 계속 얹혀서 숨 고르기를 반복해야 했다. 

부디 동생도 나처럼 거뜬히 먹어치워 주길 바라며 동생의 온몸에 힘겨움이 역력하다는 것도 외면한 채 엄마를 자극하는 것을 원망스러워했다. 


잘 못 먹는 아이와 별다른 반응 없이 먹기만 하는 아이는 사랑과 정성으로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했을 엄마에게는 남편과 똑같이 나쁜 놈들이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때 나에게는 그게 최선이었다.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과 결혼한 나는 결혼 후 그렇게 멀리 떨어져 살지 못했고, 엄마는 주부가 된 딸에게도 아직 줄 것도 많고 받을 것도 많았다.


일찍 일어나서 아이의 아침은 먹였는지, 아직도 자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며 아이를 굶어 죽이려냐며, 어서 깨워서 밥을 먹이고 산책을 나가라고 했다. 날이 너무 좋다며.


남편이 퇴근할 시간이 되면 청소는 해놨는지, 남편이 힘들게 일하고 퇴근하는데 집에 오자마자 바로 먹을 수 있게 따뜻한 식사도 마련하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서 하는 일이 뭐냐며 시어머니도 하지 않는 비난과 간섭이 하루 걸러 아물지 않은 나를 다시 헤집어버리곤 했다. 


무던하기로 세상 누구보다 제일인 남편은 엄마의 무례하고 폭력적인 말들을 어른이라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휴대폰 발신자를 확인하는 순간부터 아니 정황상 지금 울리는 벨소리는 당연히 엄마일 것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는 순간부터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열이 통화를 하는 동안 온 얼굴을 뒤덮고 온몸을 저리게 만들었다.



나의 싫은 소리에 서운해서 한 달을 연락이 없다가도 제철김치를 담가주느라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연락을 해 올 때면 나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내 맘을 추스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엄마는 마뜩잖은 딸은 시집을 가고 애를 낳아도 철이 없고 싹수가 없다며 어린애 바지춤을 추슬러주듯 수시로 냉장고를 뒤집고 반찬을 채우고 때가 되면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체크하면서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잘 안 듣는 태도에 구제불능 학생을 보는 선생처럼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 엄마의 모습들은 남편의 말처럼 그다지 문제 될 게 없다는 듯이 드라마나 영화에도 많이 보였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아이가 맞는 장면을 티비에서 볼 때처럼 가슴속에서 뜨거운 분노를 느꼈다. 

엄마라는 권위로 자녀에게 폭력적이고 무례한 언행을 일삼으며 비난과 월권을 헌신인 양 가장하고 자녀를 못나고 부덕한 죄인으로 만들면서 엄마라는 자신의 고생을 자족하는 모습들. 


그 병리적이고 폭력적인 모습들. 


극속으로 쫓아가서 그 모든 엄마들의 따귀를 날리고 싶었다.  

그들이 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신랄하게 알려주고 후회의 통곡을 흘리게 해주고 싶었다.


당신을 빼놓고 먹은 외식에도, 당신 없이 떠난 나들이에도, 당신이 챙기지 못한 휴일들도 다 서운함을 내비쳤다. 

평생 자식만 보고 애지중지(?) 기르고 봉사했는데 보람도 보상도 없는 인생이 한심스럽고 서럽다는 거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구역질이 올라왔다. 


나는 언제 고통스럽게 버티기만 하던 시간들 동안 그 많은 부채들을 쌓았던가...



어찌 되었든 내가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살아남기까지 당연한 줄 알고, 또 당연하다고 여기는 만큼 못 받고 자란 줄 알았던 시간들이 전부 공짜는 아니었던 것이다. 

부모님의 고생과 고통에 공감하며 그들이 이제 자녀들에게 정당한 보답으로 감사의 돌봄과 애정을 돌려받기를 응원하는 주변 어른들의 흐뭇한 얼굴에 따귀를 날리고 싶었다. 


도망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는 도망가면 은혜를 갚지 않는 파렴치한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린아이는 약자이기에 그들의 마음을 존중받지 못하고, 어른이 되었을 땐 약자가 된 어른들에게  보은을 해야 하는 책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도 모르는 새 주고받은 채무관계가 계산이 정확하지 않다고 느꼈지만 무자비한 사채처럼 내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계약은 나도 모르게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애써 외면한다고 한들 입을 모아 비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마음속에서도 쫓아낼 수 있을까? 

여기저기 마음으로 따귀를 날려본다고 한들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언제 그렇게 많은 부모의 꿈을 먹고 자라서 그 꿈을 다시 토해내어야 하는 존재가 된 걸까?


그렇게 나를 사용하려고 나를 낳았던가?


나는 기꺼이 사용되고 싶을 만큼 그렇게 온전히 자라지 못했는데, 시간이 흘렀고 키가 자랐고 얼굴이 늙어지고 있다고 해서 이제 상환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이자는커녕 원금을 회수할 수도 없을 만큼 나는 지금 절뚝거리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그게 당신이 여태껏 해 온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할 것이다. 


너무나 선명하게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달나라에서 바베큐를 먹다가 여고생이 되어 친구랑 놀고 있는 데 있지도 않은 아들의 전화가 왔다며 집에 와서 연예인 남편과 웃고 있어도 그게 꿈인지 모르는 내가 울부짖으며 엄마아빠 앞에서 절규할 때 가만히 듣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에는 꿈인 줄을 자각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일 것이다.


시공간을 초월하고 가족이 바뀌는 것보다 부모님이 내 얘기를 그냥 들어준다는 것이 더 비현실적이고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이다. 


그렇게나 쓴웃음이 나오는 일이라니...



나이도 찼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으니 더 이상 애가 아니라며 이제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하며 함께 부모의 행복을 견인하라는 노골적인 압력은 철저한 거부도 완전한 순종도 아닌 상태에서 분리가 아닌 더 깊은 연결로 진행되는 것 같은 두려움으로 곤두서게 했다.



아직도 나는 순진하고 어리석은 고등학생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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