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네순 도르마 on the floor
카이로 공항에서의 긴 밤이 끝났다.
카이로에서 그리스 아테네로 향하는 에게안 항공 비행기에 탔다.
감사하게도 기내식을 받았지만, 가지(eggplant) 샌드위치는 정말 미친 듯이 맛이 없었다.
새벽 6시경 아테네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 숙소는 신타그마 광장 근처에 위치한 곳으로,
아고다에서 찾아본 숙소 중 오모니아를 제외한 아테네 전체에서 가장 저렴했다.
(오모니아는 아테네 국립 박물관이 위치한 곳으로, 치안이 매우 불안정한 동네이다.)
공항과 신타그마 광장을 잇는 시내버스가 24시간 운행 중이었기에,
우리는 우선 예약한 호텔로 향했다.
숙소에는 아침 7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도착했는데,
그 시간에는 당연히 체크인이 불가능했기에 우리는 짐을 우선 맡겼다.
정현이가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로비에 앉아있던 진규가 잠에 들었다.
여행 중 처음으로 공항 노숙을 마친 직후였기 때문에, 로비에서 한 시간 정도 휴식을 취했다.
로비에서의 휴식으로 다시 충전된 우리는 아크로폴리스로 향했다.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지만, 우산이 없었기 때문에 잠바의 모자를 덮어썼다.
아크로폴리스의 입장료는 5만 원에 육박했는데, 국제학생증이 있더라도 할인이 불가능했다.
하루 만에 급변한 물가에 처음으로 당황한 순간이었다.
아크로폴리스를 관람하고 내려오며 점심 메뉴를 결정하고 있었다.
우리 세명 모두 다 돼지고기를 갈망하고 있었는데, 숙소 바로 앞에 한식당을 발견했다.
한식당에서 오랜만에 먹는 돼지고기(제육!!!)의 맛에 감탄하고서,
여전히 체크인까지 시간이 남았기에 카다이프를 먹고 시간에 맞추어 체크인을 했다.
3인실 1박에 10만 원에 가까운 금액이었기에, 1박만 예약했다.
방에 들어가 오랫동안 못한 샤워를 하고(후루가다를 출발한 후 30시간 넘게 샤워를 못했다.),
곧바로 잠에 들었다.
눈을 뜨자 이미 저녁이었고, 점심에 한식당에서 큰 지출을 했기 때문에,
숙소 옆 마트에서 빵과 우유로 저녁을 때웠다.
호텔의 옥상에는 루프탑이 있었는데,
날은 선선하고 옥상에서 보이는 아테네 시내의 전경이 무척 멋있었기 때문에,
맥주를 마시며 이집트와 다른 고요를 느끼며 오랜만에 보는 도시의 야경을 관조하며,
그리고 지난 이집트 여행을 진웅이 없이 셋이서 추억하며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조식을 먹으러 향했다.
그리스는 이슬람 국가가 아니므로, 조식에 베이컨이 나왔다.
비록 전날 점심에 제육을 먹었음에도, 돼지고기에 대한 갈망은 여전했기에 푸지게 먹었다.
체크아웃시간까지 방에서 쉬다가 짐을 맡기고 호텔을 나섰다.
우선 아테네 국립 박물관에 가기로 했는데, 그곳은 앞전에 언급했던 오모니아에 있기에,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소매치기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 향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 모두 잔뜩 긴장한 상태로 길을 나섰는데,
우리의 꼴이 너무나 처량했는지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무런 위기 없이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와 길거리의 케밥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직원들은 시리아 사람들이었는데 무척 친절했다.
이집트에서 수없이 많은 샤와르마를 먹었기 때문에 케밥 대신 버거를 시켰다.
이날은 더 이상 어디 쉴 곳이 없었기에 우리는 무작정 시내를 걷기 시작했다.
무작정 걷다가 구글맵을 보니 유명한 도넛집이 있었다.
루크마테스라는 음식인데 우리네 찹쌀도넛과 매우 비슷하다.
1923년부터 영업을 했다는 Kpivos라는 카페 2층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은 뜨거운 커피를, 나는 물을 곁들여 마시며 최대한 오래 뻐기기로 했다.
(나는 뜨거운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심지어 정수기가 있어 유럽! 에서 물! 이 무료였다!!!)
하지만 20대 남자 셋이서 카페를 가서 뻐겨봤자 얼마나 뻐기겠는가.
루쿠마테쓰를 너무 빨리 해치워버렸기에, 여기 앉아 무슨 소용이 더 있겠나 싶었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오래 걷다 보면 앉고 싶고, 또 앉아있으면 지루하다.
결국 길을 다시 나섰다.
저녁 6시가 조금 못되어 가게를 나왔는데,
당시는 2월이라 이미 하늘은 꽤나 어둑했다.
한 시간여를 걸어 제1회 아테네 올림픽 계최장소와 양궁경기장(자피온)에 도착했다.
이미 밤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는 입장료를 애초에 지불할 생각이 없었기에,
밖에서만 건물을 둘러봤다.
조명이 잘 되어있고 건물은 웅장하여 먼 길을 걸어온 보람이 있었다.
잠실 올림픽 공원처럼 그곳도 하나의 큰 공원 안에 있었는데, 공원 안은 암흑에 잠겨있었다.
그런 공원을 헤매다가 작은 놀이터를 발견했는데,
예약해 둔 식당에 가기까지 시간이 어느 정도 남아있었으므로, 놀이터에서 놀았다.
그네를 타고, 유격 비슷한 것을 하고, 목마를 탔다.
그리스의 밤은 치안이 꽤나 나쁘지만,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덩치 큰 동양인 3명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그리스 할아버지와 손자가 있었으므로 우리는 안심하고 동심을 즐겼다.
그릭 요거트와 샐러드로 대표되는 그리스의 식문화는 꽤나 유명하다.
그리스 땅을 밟은 지 36시간이 돼 감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그리스식을 아직 못 먹었다.
(이때까지 그리스에서 제육볶음, 카다이프, 빵, 맥주, 호텔 조식, 햄버거, 도넛을 먹었다.)
그리스에서의 마지막 저녁이었기에 제대로 된 그리스식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리스 인들은 전형적인 유럽인들의 그것처럼 저녁을 매우 늦게 그리고 느리게 먹기에,
대부분의 식당이 저녁 장사를 늦은 시간에 시작한다.
트립 어드바이저에서 평이 좋은 자피온 근처 식당을 미리 찾아두어 예약했다.
와인에 수블라키, 그릭 샐러드 등을 곁들이며 곧 노숙하러 가는 사람의 식단이 이게 맞냐며,
우리는 자조했다.
그리스 여러분처럼 천천히 저녁을 먹자는 각오로 식사에 임했으나,
대한민국 성인 남성 셋이서 오래 먹어봤자 얼마나 오래가겠는가.
우리는 30분 만에 3코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왔다.
숙소까지 다시 먼 길을 걸어가, 맡겨둔 짐을 찾아 공항으로 향했다.
아테네 공항 카트는 유료인데(1유로 동전을 넣어야 함),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 운 좋게 남들이 방치한 카트 3개를 루팅 할 수 있었다.
여느 유럽 공항이 그렇듯이 체크인 구역에 편히 쉴만한 의자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처지의 많은 이들이 바닥에 앉아있었다.
왜 바닥에 눕지 않는지 의아해하며,
실내에서도 신발을 신는 문화 때문에 바닥에 눕지 않는 건가 추측하며,
문 닫은 티켓 오피스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잠을 청하고 있는데,
경비원이 우리를 깨웠다.
그는 번역기에 무슨 말을 하더니 중국어로 번역된 글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중국인 취급에 화가 났지만, 영어로 다시 번역한 후 글을 읽었다.
아테네 공항에는 바닥에 누우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다더라.
Nessun dorma! Nessun dorma!
(아무도 잠들지 말라! 아무도 잠들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