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여행기 <9>

9. 객지살이

by 쌀주호

공항의 경비원 때문에 바닥에 누울 수 없었다.

벽에 카트가 부딪히는 것을 방지하는 구조물이,

공항의 모든 벽면에 붙어있어 바닥에 앉아있기도 힘들었다.

공항 내부에 의자 따위는 없었다.

카트에 걸터앉아 잠을 청했다.

몸에 미세한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카트가 움직여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뒤척이고 있던 나를 공항 청소부 아주머니가 깨웠다.

공항 한가운데 있는 마루 모양의 구조물 위에서 잠을 자란다.

위즈에어 체크인 카운터 줄 한가운데 있었는데,

그 시간엔 위즈에어 항공기가 없었기 때문에,

수면을 포기한 진규에게 짐을 맡기고 그곳에 누웠다.

딱딱하고 찬 바닥이었지만 카트보다는 무척 편했기 때문에, 금세 잠에 들었다.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모른 체,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잠에서 깼다.

어디로 가는 비행기인지는 몰라도 위즈에어의 체크인이 눈앞에서 진행 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누워있던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창피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피곤했다.

우리 비행기의 체크인 시간도 두 시간 내에 시작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즈에어나 라이언에어 같은 유럽의 저가항공은 다양한 측면에서 악명 높다.

불친절한 승무원, 비싼 체크인 수수료, 분실되는 수화물, 끝없는 지연.

우리 또한 그러한 괴담을 많이 들었고,

결국 위즈에어를 탑승할 처지였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

미리 모바일 체크인을 마치고 구매한 수화불을 붙였다.

한국과 다르게 멀쩡한 게이트를 앞에 두고 굳이 걸어서 비행기 앞뒤로 타는 것이 신기했다.



IMG_7292.JPG 꽤나 편안했던 위즈에어 기내. 비행기에 동양인은 우리밖에 없었다.



IMG_7295.HEIC 유럽의 저가항공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앞뒤 양 쪽에서 타고 내린다.


걱정과 다르게 매우 무탈하게 키프로스에 도착했다.

불행하게도 키프로스는 대중교통이 구글맵에서 검색되지 않는 나라였다.

에어비엔비 호스트는 우버를 타고 오라고 했지만 유럽이기에 너무 비쌌다.

공항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숙소 위치를 보여주고 숙소로 가는 버스 정보를 얻었다.

숙소로 가는 방향으로 가다가, 버스가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당황한 우리는 우선 버스에서 내렸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낮 12시가 되도록 공복이었던 우리는 무척 배가 고팠기 때문에,

우선 버스에서 내린 길가 바로 건너편에 있던 팔라펠 집에 들어갔다.

중동 음식이 유독 입에 맞던 정현이가 특히 좋아했다.

그 팔라펠집은 조지라는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그는 우리가 그의 식당에 온 첫 동양인 손님이라며 무척 신기해했다.

장사는 뒷전으로 우리에게 키프로스에서 어디를 가면 좋은지, 무엇이 맛있는지 설명했다.

그의 식당에서 정말 맛있는 팔라펠 랩을 먹고 키프로스 가이드를 들으며 점심을 보냈다.

조지 할아버지가 키프로스에서 무슨 일이 있거나 궁금한 점이 생기면 언제든 물어보라며,

연락처를 교환했다.

(키프로스에 있을 때 그는 매일 안부를 물었고, 여행을 마치자 축하한다는 연락을 보냈다.)



IMG_7296.HEIC 정말 맛있었던 조지할아버지의 팔라펠 랩.


팔라펠을 먹고 나서, 구글맵을 보았더니 숙소까지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키프로스에서 일주일을 체류하기로 계획하였기 때문에, 에어비엔비를 예약했다.

키프로스가 마지막 여행지였던 정현이는 마지막을 쉬면서 보내고 싶어 했고,

나와 진규 또한 이집트와 그리스를 거세게 여행했고,

다음 목적지 또한 여행 난이도가 높기로 소문난 곳이었기 때문에 쉬어 가기로 했다.


에어비엔비로 미리 위치와 비밀번호를 받았기 때문에 곧바로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라르나카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인 피니쿠데스 해변 근처에 있는,

2층에 위치한 원룸이었다.

1층에는 현지인 부부가 살고 있었고, 옆집에는 키프로스 할머니가 살고 계셨다.

테라스에 담배를 피우러 나가면 매번 키프로스 할머니가 인사를 건넸다.

당시는 2월 중순이었으므로, 유럽 내 관광이 무척 비수기인 기간이라 집은 무척 저렴했다.

위치도 무척 좋았다.

키프로스 곳곳으로 향하는 시외버스는 모두 피니쿠데스 해변 앞 정류장에서 출발했는데,

숙소에서 걸어서 불과 5분 거리에 위치했다.

키프로스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 물가가 저렴한 편이라지만,

외식 물가는 어느 유럽 국가 못지않게 높았기 때문에,

우리는 일주일 동안 대부분의 식사를 해 먹기로 했다.



IMG_7302.HEIC 문 앞에서 바라본 풍경. 라르나카, 참으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집에 집기가 별로 없어 집주인에게 필요한 집기가 무엇인지 전달하고 마트로 향했다.

혹시 한식의 세계화에 힘입어 한국 라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마트에는 한국 라면이 무려 두 종류!! 나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불닭볶음면과 핵불닭볶음면이 있었다...

우리 모두 불닭의 매운맛을 먹기에는 무척 약했기 때문에,

우선 별다른 재료 없이 할 수 있는 한식을 고민했다.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중국인 여러분 덕분에 간장이 마트에 있었으므로,

콜라와 간장, 그리고 마트에 있던 쌀국수를 넣은 콜라간장찜닭을 해 먹기로 했다.

마트는 우리네 동네 마트보다 조금 작은 수준으로 공산품 만을 판매했지만,

바로 옆에 시장이 있었기에 닭과 채소류를 구매했다.



IMG_7299.HEIC 마트에 있던 유이한 한국 라면. 붉닭과 핵불닭...


장보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소파베드 하나와 퀸베드 하나가 있어 침대 뽑기를 진행하려다가,

진규와 정현이 모두 나와 한 침대에서 자버리는 리스크를 지기 싫다며...

내가 소파베드에 배정되었다.


퇴근한 집주인에게 온갖 주방 집기를 받고,

진규가 요리한 찜닭을 맥주를 곁들여 먹고서,

내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쉬기로 합의하고서,

우리 모두 아주 일찍 잠에 들었다.



IMG_7300.HEIC 작은 주방에서 진규는 참 많은 요리를 선보였다.



IMG_7301.heic 진규의 찜닭과 냄비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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