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여행기 <10>

10. 어느 국경의 골목길

by 쌀주호

우리는 어릴 적부터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는 우리나라라고 배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정부가 분단된 미승인국가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세계에는 수많은 분단국가와 미승인국가가 존재한다.

대만과 중국의 관계가 대표적이고, 내가 다녀온 키프로스와 북키프로스의 관계도 그러하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에 함부로 넘어갈 수 없지만,

키프로스의 상황은 다르다.



IMG_7343.HEIC 피니쿠데스 해변 앞의 정류장. 키프로스 곳곳으로 향하는 버스가 있다.


숙소 근처 피니쿠데스 해변 앞 정류장에서는 키프로스 곳곳으로 향하는 시외버스가 있다.

당시는 키프로스 이틀차에 접어든 날이었으므로,

우리는 전날 노숙의 상흔으로 느지막이 일어나 오늘과 내일의 콘텐츠를 궁리하고 있었다.

팔라펠집의 조지 할아버지는 당신이 유일하게 먹어본 아시아 음식점을 추천했다.

처음엔 그냥 동네 초밥집으로 알고서,

가격이 너무 비쌀 것 같아 이런 나라에도 초밥집이 있구나~ 하며 넘어갔는데,

알고 보니 매주 수, 금, 일마다 롤초밥과 기타 메뉴를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식당이었다.

알렉산드리아 이후로 해산물을 못 먹은 지 오래였고,

우리 모두 무한리필이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 안 갈 수 없었다.

심지어 23유로라는 꽤나 합리적인 가격이었기에(쿠우쿠우 주말 가격과 비슷하다.),

심지어 당장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저녁에 곧장 초밥을 먹으러 향했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밥이 잘 나왔다.

단순히 초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갖 샐러드와 요리와 볶음면 또한 제공되었다.

음료 주문이 필수로 요구되었으나 가격이 합리적이었기에,

나는 콜라, 진규는 맥주, 정현이는 위스키를 주문하여 정말 배부른 식사를 했다.

그렇게 식사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모두 다 같이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치던,

오래간만에 풍요롭던 어느 저녁이었다.



IMG_7308.HEIC 맛있게 먹었던 롤초밥.


현지에 도착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는데,

비록 우리네와 같은 키프로스가 분단국가이지만,

이곳은 국경을 넘는데 비자나 허가서 같은 별다른 제약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집 바로 앞에 국경으로 갈 수 있는 터미널도 있겠다,

우리는 다음날 곧장 국경으로 향하기로 했다.


키프로스의 수도는 니코시아라는 곳으로,

키프로스와 북키프로스의 국경이 그곳을 반으로 가르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니코시아 터미널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명동과 비슷하게 생긴 구역이 있다.

그 명동 같은 동네 한복판에 키프로스섬을 반으로 가르는 국경이 있다.

주변에 사람 사는 활기가 돌다가, 여권 검사를 받고서 완충지대를 통과하는데,

갑자기 주변의 소음이, 상가가, 사람이 증발한다.

언젠가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닐었을 거리가 국경이 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국경을 보았지만,

도시 한복판, 어느 골목이 삼엄한 경비 속 국경이 되어버린 모습은 처음이었고 유일했다.



IMG_7315.HEIC 국경 골목에 남아있는 총알 자국.



IMG_7329.HEIC 어느 집 바로 옆에 있던 국경.


사실 나는 터키에 입국해 본 적이 없다.

여행 중 터키 공항에서 환승을 해본 적은 있었지만,

공항 바닥에서 5시간을 버텼을 뿐이다.

하지만 국경 건너 그곳은 터키와 진배없었다.

카드 결제를 하면 터키 리라로 결제되었고,

이스탄불의 택시 사기를 조심하라는 외교부의 안내 문자를 받았으며,

무엇보다 온갖 터키 음식점이 산재되었었다.

그 유명한 이스켄데르 케밥에 터키산 에페스 맥주를 곁들이고,

뜨거운 모래로 끓인 터키시 커피를 마시고,

벽에 총알자국이 가득한 골목을 지나 마침내 어느 모스크 앞에 서서 아잔을 들었을 때,

터키에 온 기분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곳은 터키가 아니었다.



IMG_7313.HEIC 이스켄데르 케밥과 에페스 맥주.



IMG_7318.HEIC 북키프로스의 국기와 터키의 국기가 함께 걸려있다.


다시 국경의 골목을 지나 키프로스에 돌아왔다.

총알자국 가득했던 골목 끝 광장에는 관광객들 상대로 돈벌이를 위한 앵무새가 있었다.

앵무새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며,

전쟁의 흔적과 분단의 아픔을 체험했던 약간의 울적함을 털어내고 라르나카의 집에 돌아왔다.

다음날 또다시 북키프로스로 투어를 떠날 예정이었는데,

그 투어 때문에 키프로스 섬에 왔으니, 기대감에 잠을 설쳤다.

IMG_7339.HEIC 키프로스 쪽 국경. 분단국가라도 경비가 그리 삼엄하지는 않았다.



IMG_7335.HEIC 국경 바로 앞에 뜬금없이 있던 앵무새.


지금은 북키프로스의 지역이 되어버린 곳에 바로샤라는 휴향도시가 있었다.

본래 유럽인들이 가득한 휴양지였지만 키프로스와 북키프로스의 분단 이후,

두 국가 사이의 경계가 되어 유령도시가 되었다.

1974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그곳이 키프로스에 간 이유였다.

금방 무너질 것 같은 건물들 사이로,

무언가 알 것 같은 디자인의 오래된 로고가 가득하고,

거대한 건물들 사이에서 새소리만 가득했다.

인류가 멸망하면 세계가 어찌 될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IMG_7376.HEIC 바로샤의 버려진 안경원. 아직 간판과 다이너스티 클럽 카드 로고가 남아있다.


1974년으로의 여행을 마치고 현재로 돌아와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날은 정현이의 여행 마지막 날이었으므로 전날 밤을 설쳤으므로 피곤했지만,

한 달여의 지난 여행 이야기를 하면서 밤을 보냈다.

정현이는 한국에 돌아가 구체적으로 어떤 한식을 어떻게 먹을 거라며,

한식이 조금 그리웠던 나와 진규를 약 올리는 재미에 푹 빠졌었다.

그런 자리에 술이 빠질 수 없음으로 나는 꽤나 얼큰하게 취했는데,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진규와 정현이가 같이 자던 침대로 다이빙을 했다.

침대 바닥이 무너져 집주인이 한밤중에 침대를 수리하러 오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IMG_7445.JPG 무너진 침대...


이른 아침 피니쿠데스 앞 버스 정류장에서 정현이를 공항으로 보내는 버스에 태웠다.

나와 진규 둘만 남았다.

우리는 정현이를 보내고 해변 앞 맥도날드에서 아침을 먹었는데,

사람이 줄어 무언가 울적한 기분으로 밥을 먹으며 한마디도 말을 나누지 않았다.

그날 하루 종일 별 말이 없었다.

라르나카의 집에서 하루를 아무 말 아무 일 없이 보내고 요르단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라르나카 공항에서 요르단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다.

진규가 나보다 먼저 출국을 했는데,

나는 갑자기 보안요원에게 끌려가 보약 검사를 받았다.

검사가 끝나고 나오자 진규는 당황한 눈치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기에 당황스러웠지만,

무탈하게 나왔으니 비행기를 기다리며 요르단 여행을 더 생각하기로 했다.



IMG_7452.JPG 공항으로 떠나던 정현.


암만으로 가는 비행기는 2-2 배열로 내가 타본 가장 작은 민항기였다.

1시간 반 정도를 날아 금방 요르단 암만에 도착했다.

요르단은 입국 심사를 팀별로 받아서, 진규와 함께 입국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둘 다 성이 Lee였기 때문에, 가족으로 오해받으면 뭐라고 해명해야 하냐며,

너스레를 떨고 있을 때 우리 차례가 되었다.

우리 둘의 여권과 미리 구매한 요르단 패스를 심사관에게 건넸다.

입국 심사관은 우리 여권을 보더니,

나의 여권을 다른 심사관에게 넘기고 진규의 여권에 도장을 찍었다.

진규가 바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와중에, 심문이 시작되었다.



IMG_7469.HEIC 요르단으로 가는 비행기는 무척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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