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세컨더리, 요르단에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요르단 입국 심사관은 나에게 궁금한 점이 무척이나 많았다.
어디서 왔느냐 -> 키프로스에서 왔다
키프로스 사람이냐 -> 한국사람이다. 여권이 한국여권 아니냐
키프로스에 살고 있냐 -> 세계일주를 하고 있다
돈은 있냐 -> 겨우 여행할 정도로 있다
돈은 어떻게 벌었냐 -> 일을 해서 벌었다
무슨 일을 했냐 -> 영화 일을 했다
키프로스 영화를 알고 있냐 -> 모른다
너 키프로스에서 온 거 아니냐 -> 거기서 비행기만 탔다. 나는 한국사람이다.
그러면 왜 키프로스에서 왔냐 -> 세계일주를 하고 있다.
돈은 있냐 -> 있다니까...
이런 식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10분 정도 취조를 받고 나오자, 기다리던 진규에게 대강의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진작에 여권에 도장을 받고서 나온 진규는 심사대 바로 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심사관들이 진규에게 왜 짐을 찾으러 가지 않냐고 물었다더라.
그래서 진규는 내가 취조받던 곳을 가리켰다는데,
심사관들이 내가 한국인이냐고 물어봤다더라.
한국인이 맞다고 하자 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를 떴다는 말을 들었다.
(키프로스에서 타고 온 비행기는 무척이나 작았고,
그 시간대 도착한 비행기는 우리가 탄 비행기 밖에 없었으며,
안 그래도 우리는 거의 맨 뒤에서 심사를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심사대에 사람이 없었다.)
아마도 나를 한국 여권을 위조 사용한 중국 혹은 어느 후진국 사람으로 보았던 모양이다.
짐을 찾고 나와 공항 atm에서 요르단 디나르를 인출했다.
(1디나르는 약 1,900원 정도로 단위가 무척 크다.)
수수로도 무척 비쌌기 때문에 필요한 정도만 계산해서 수수료 뿜빠이해서 뽑았다.
atm에서 돈을 뽑았으니, 당장 잔돈이 없었는데,
공항버스 매표소에서 잔돈을 주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심지어 그 버스는 암만 시내로 들어가지 않기에 이후 택시비가 추가될 예정이었는데,
잔돈이라기에는 한화 6,000원에 달하는 돈이었기에 돈을 내놓으라며, 직원과 싸우고 있었다.
매표소 직원은 처음에는 잘하던 영어를 두고서, 아랍어로 대응했기에 점점 언성이 높아졌다.
공항에 있던 유나이티드 항공 지상직 직원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아랍어로 직원에게 항의했고, 잔돈을 받아주었다.
고맙다고 인사하며 그를 보내고 담배를 피우려는데, 그가 다시 다가왔다.
당연히 담배 한 대 달라는 줄 알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고 있었는데,
정작 그는 라이터만 빌려갔다.
본인 담배에 불을 붙이며 요르단에는 사기꾼이 많다며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우리가 암만 시내에 간다고 하자, 버스 기사는 고속도로 어딘가에 우리를 내려주고 떠났다.
시내로 가는 여행자를 이곳에 내려주는 것이 흔한 일인지,
갓길에 차를 대고 있던 택시 기사들이 우리에게 접근했다.
내가 우버를 부른다고 하자, 이곳에 우버는 오지 않는다며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금세 우버는 잡혔고, 그들은 아랍어로 화를 냈지만 상대하지 않았다.
우버 기사가 도착하자 그들은 기사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는데,
기사도 이런 일이 익숙한 듯 트렁크에 우리의 짐을 싣고 시내로 향했다.
암만은 무척이나 오래된 도시다.
그만큼 수많은 골목길 사이에 수많은 무언가가 있는데,
우리가 예약한 숙소도 그런 골목길 사이에 있었는데,
기사는 우리를 큰길에 내려주었기 때문에, 앞으로 찾아가는 것은 우리의 일이었다.
36키로 배낭을 메고 골목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어느 상가에 들어가 3층까지 올라갔다가,
숙소가 아니라며 다시 내려오고 구글맵에서는 분명 숙소 건물인데,
들어가 보니 식당이고 이곳은 숙소가 아니라며 우리를 쫓아내고,
숙소에 아무리 전화를 해보아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잔뜩 짜증이 난 상태로 건물 앞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어느 서양인이 우리가 나온 식당 건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를 따라 식당 안에 숨어있는 또 다른 계단을 오르자 숙소가 나왔다.
숨을 헐떡이던 우리에게 숙소 주인은 커피를 내줄 테니,
짐을 풀고 테라스에서 잠시 쉬라며 문을 열어주었다.
테라스에 나가니 사실 이곳이 빠니보틀 유튜브에 나왔던 곳임을 직감했다.
길 건너에 빠니보틀이 갔던 팔라펠 식당이 그대로 있었고,
풍경 또한 유튜브에서 보았던 그대로였다.
호텔스닷컴에 나오는 암만 시내 숙소 중 가장 저렴한 곳을 찾아왔으니, 그럴 만했다.
(카이로에서 머물렀던 프리덤 호스텔도 빠니보틀이 묵었던 곳이었다.)
팔라펠 식당에서 간단한 저녁을 먹고서 요르단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사실 요르단은 비자가 필요한 나라다.
요르단 패스라는 관광 패스를 구매하면 비자가 면제되는데,
요르단에 무조건 5일 이상 체류해야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
요르단 도착비자값+페트라 1일 입장권만 구매한다면 패스보다 저렴하지만 차이가 미미하고,
어느 국가 운영 관광지를 한 곳이라도 추가하면 무척이나 가성비 있는 패스였다.
나와 진규는 암만에서 하루를 추가로 체류할 예정이라,
어디든 가겠지 하는 심정으로 요르단 패스를 구매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숙소 근처의 암만 시타델을 가기로 했는데,
하루 종일 할 일이 없기에 관광지는 나중에 가고 우선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석유가 없는 중동국가임에도 요르단의 물가는 그리 저렴하지는 않다.
스타벅스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한국보다 300원 정도 더 비쌌다.
당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 때문에 중동에서 유대계 회사 불매운동이 한참이었는데,
때문에 스타벅스에는 우리와 서양 관광객 3명 총 5명의 손님과,
10명에 가까운 직원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고요한 스타벅스에서 카페인과 와이파이를 극한까지 빨았다.
점심으로는 건너편 로컬 치킨집에 갔는데, 치킨 값이 한국과 비교도 못 할 정도로 저렴했다.
요르단 물가는 중간이 없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찾아간 암만 시타델은,
우리가 이미 알렉산드리아, 그리스, 키프로스에서 너무 많은 로마 유적을 보았기 때문에,
유적의 신기함보다는 도시 전경 위주로 보며 관광했다.
숙소 주인에게 저녁 식당을 추천받고 갔는데, 또 빠니보틀이 갔던 식당이었다.
진규는 빠니보틀이 먹었던 양 뇌를 먹어보지 못했다며 아쉬워했지만,
나는 품절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길을 나오니 또 빠니보틀이 갔던 퀴나페집이 있었다...
디저트를 먹고 페트라에 가져갈 간식거리를 대강 사서 일찍 잠에 들었다.
요르단 시외버스는 정해진 시간 없이 승객이 차면 운행하고,
외국인에게는 엄청난 바가지를 씌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jett버스를 타면 그럴 일이 없지만,
암만에서 와디무사(페트라)로 가는 노선은 인기가 많아 예매가 치열하고,
이른 새벽 하루에 단 한대만 운영한다.
(물론 가격이 로컬 시외버스보다 비싸다는 단점도 있지만 외국인에게는 더 저렴할 수도...)
처음에 예매에 실패하여 로컬버스를 타야 하나 좌절하던 와중,
갑자기 예매 사이트에 임시 배차가 추가되어 급하게 예매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요르단 첫날 저녁에 먹었던 팔라펠 집에서 아침을 먹고(24시간 운영!),
우버를 불러 버스 터미널로 출발했다.
우버 기사가 갑자기 짐값을 요구하여 당황했지만,
우버에 신고한다고 협박하자 그는 순순히 트렁크를 열었다.
출발 30분 전에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버스 사무실에 불은 꺼져있고 추위에 떠는 외국인들만이 인도에 가득했다.
곧 사무실 불이 켜지고 원래 예정된 하루에 한 대 있는 버스는 20분 늦게 도착했다.
그 버스에 사람들이 모두 탔지만 버스는 출발하지 않았다.
우리가 탈 버스는 출발 시간이 30분이 지났지만 도착하지 않았다.
몇몇 서양인들이 사무실 안에서 항의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