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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한장이야기 Feb 13. 2022

마케팅 천재 이0숙

그림 한 장 그리고 이야기 하나


“이0숙”은 우리 동네 붕어빵 파는 아주머니입니다. 정확히는 계좌 이체할 때 확인 가능한 계좌 주인 명입니다.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요즘 길거리에서 파는 붕어빵을 사 먹기 위해 이0숙님에게 계좌이체를 하고 있습니다. 천 원에 4개의 맛있는 붕어빵을 먹을 수 있습니다. 원래는 천 원에 5개였는데 가격이 오른 게 좀 아쉽지만 그래도 다른 동네는 천 원에 3개 2개 하는 곳도 많으니 위안이 됩니다.


그림 한 장 그리고 이야기 하나

마케팅 천재 이0숙


계좌명 이0숙님의 붕어빵 장사는 호황입니다. 자세한 순이익은 알 수 없지만 갈 때마다 줄을 서고 기다려서 붕어빵을 사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단팥 붕어빵이 천 원에 4개라는 가격대가 경쟁력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개인 장사 같기도 하고, 프랜차이즈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0숙님의 붕어빵 경쟁력은 가격뿐만이 아닙니다.


이0숙님 붕어빵 판매 프로세스는 이렇습니다. 현금 구매는 손님이 직접 돈통에 현금을 넣거나 계좌이체로 돈을 보냅니다. 그러면 반가운 인사와 함께 붕어빵을 종이봉투에 넣어서 건네줍니다. 아주 평범하고 익숙한 광경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포인트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0숙님은 한 번도 천원이 내손에서 떠나 돈통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본 적이 없습니다. 계좌이체가 된 천 원을 확인하는 제스처를 취하지 않습니다.


동네장사, 즉 단골 장사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신뢰일 겁니다.


누군가는 현금 천원이 아닌 다른 금액을 돈통에 넣을 수도 있습니다. 손님들이 붐비는 퇴근시간대에 이체했다고 속이고 붕어빵을 받아갈 수도 있습니다. 동네장사는, 단골 장사는 그런 것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확률적으로 적은 것에 집착하지 않고 큰 그림을 보는 것이죠.


붕어빵 가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잘 다니던 국수 가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선불제로 바뀌었습니다. 선불제 첫날 자리에 앉았는데 주인은 가격을 먼저 계산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정당한 판매 방식이고 문제가 하나도 없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 국수가게에 가지 않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역 근처나 유동인구가 많은 여의도나 광화문 같은 상권 등에서는 지극히 보편적인 방식입니다. 평범한 동네장사에서는 무의식적으로 반감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단골을 기반으로 하는 동네장사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고 말합니다. 어제까지 단골가게에서 구입하던 것을 당일 배송이 가능해진 온라인 쇼핑으로 지금 구매하고 있죠. 걸어서 바로 앞에 단골가게가 있는데도 스마트폰 속의 가게를 선호합니다.


그렇다면 동네 장사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요? 방법이 없는 것일까요?


AI시대에 그 가치가 더욱 드러나는 것은 “친절함”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기계는 친절하기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개인적으로 믿는다는 느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절대 비대면 디지털 상거래에서 맛볼 수 없는 경험이죠.


“마케팅 천재 이0숙”님은 귀찮게 하는 택시 기사처럼 불필요한 말을 걸지도 않고 친절한 한 두 마디 인사가 전부입니다. 그리고 천 원의 얄팍한 이익보다 신뢰의 성을 쌓아 올려서 단골이라는 재구매의 선순환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지만 결국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이0숙님의 붕어빵을 바라보게 됩니다. 제가 추운 겨울 동안 가깝지 않은 거리를 걸어서 붕어빵 천 원어치를 사 오는 이유는 아마도 사라질지 모르는 지난 시절 추억에 대한 마지막 인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욕심이 있다면 이0숙님의 붕어빵에 카카오 페이나 제로 페이 등 스마트폰 간편 결제 시스템을 내년에는 장착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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