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장 그리고 이야기 하나
(영화 "쿨 러닝"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올림픽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릴 때 스포츠 경기는 온 국민이 시청하는 이벤트였습니다. 그중에서 올림픽은 단연 최고였죠. 그 당시 내세울 것 없고 자랑할 것 없었던 우리는 잘 사는 외국인들을 이기는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지나치게 감정 이입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금메달 하나에 울고 웃고 난리가 났죠. 그런 시절의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는 가장 영향력 있었던 국제기구 중 하나였습니다.
지금 올림픽의 위상은 많이 쇠락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올림픽 정신은 온데 간데없고 다른 프로 스포츠들의 상업적 마케팅을 복제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올림픽의 시청률은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죠. 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들은 정치적 경제적 목표만이 중요해 보입니다. 숭고한 스포츠 정신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올림픽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누군가에게 감동을 받는다는 것은 그 대상의 실력 수준에 있지 않습니다. “스토리”에 있죠. 올림픽은 그 스토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영화 “쿨 러닝”은 올림픽에 담긴 스토리의 중요성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겨울이 없는 자메이카의 육상 선수들 몇 명이 불운하게 하계올림픽 육상 출전 자격 시합에서 떨어집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올림픽에 도전하죠.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팀으로 나갑니다. 사상 첫 자메이카 봅슬레이팀이 된 것이죠. 그들이 금메달을 땄냐고요? 결과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감동하는 것은 올림픽다운 스토리에 있습니다.
지금의 올림픽에도 스토리란 것이 있긴 있습니다. 우리가 혐오하는 스토리만 보이더군요. 스포츠의 스토리는 간단하고 위대합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정정당당하게 겨루어서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경쟁자들은 친구로 남는다.
저는 지난 글에서 이런 수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 정신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즉 올림픽 정신이 남아있는 올림픽의 감동에 대해 말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올림픽의 시대가 거의 저물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반박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제 마음을 안타깝고 슬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금메달 개수로 나라의 순위를 매기는 것을 묵인하고, 경기가 벌어지는 그 순간에도 스포츠 이외의 손길이 작용되는 올림픽에서 더 이상의 감동 스토리는 나오기 힘들어 보입니다.
위대한 스포츠 선수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사생활에서 비난을 받아도, 돈을 흥청망청 써도 그들에게는 마지막 보루가 있습니다. 적어도 스포츠 경기 안에서 그들은 정정 당당했다는 것입니다. 온전히 자신의 노력으로만 그것을 이루어냈죠. 그런 선수들이 경기하는 곳이 올림픽이었습니다. 지금 그 올림픽은 어디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