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한장이야기 Feb 27. 2022

즐거운 유서 쓰기

그림 한 장 그리고 이야기 하나

“백남준” (iPad air4, Adobe Fresco)

어릴 때 비디오 아트라는 것을 한다는 한국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미국과 위성으로 생방송 연결을 해서 그 아저씨의 알 수 없는 예술을 중계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사람이 “백남준”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도 멋진 예술로 만들었죠. 장례식에 온 사람들의 넥타이를 싹둑 자르라는 유언을 남겼고 참석한 모두가 동참해 유쾌하고도 멋진 그의 마지막 퍼포먼스를 완성시켜 주었습니다.


“장례식이란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한 자리이다.”라는 말을 누군가에게서 들었을 때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지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지..” 죽음이란 살아있어야 느낄 수 있죠. 죽은 후에는 죽음을 인지할 수 없습니다. 참 모순된 진리입니다.


저는 신을 믿지 않고 종교도 없습니다. 오직 과학만을 믿습니다. 그런 저의 눈으로 바라보는 죽음의 모습과 대면하려 합니다.


톨스토이는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가르침을 그의 작품 속에 녹여서 전달하려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멘토로 삼고, 롤모델로 따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조언들 중 하나는 인생이 짧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올 수 있는 죽음을 인지할 때만 현재를 충실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 어느 동물보다 죽음을 무서워했기에 지금의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극복할 수 없는 두려움은 종종 사실을 왜곡하기도 합니다.


사후 세계를 안 믿는 저는, 저의 죽음이 발생시킬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들 마음속에 작은 파장을 만드는 것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파장인지 알 수 없다는 게 안타깝지만요. 그래서 유서를 쓰려고 합니다.


그림 한 장 그리고 이야기 하나

즐거운 유서 쓰기


지금부터 쓰는 저의 유서는 진심이며 가능하다면 법적 효력도 가지기를 희망합니다. 하지만 이글이 해킹이 되어서 변경될 위험이 있는 것이 걱정이기는 합니다. (막대한 유산을 가로채기 위해서 수많은 해킹을 시도하는 유쾌한 상상을 해 봅니다.)


저의 유서는 제가 살아있는 동안 꾸준히 버전 업이 되면서 업데이트가 될 것입니다. 아마도 매해 작성될 듯합니다. 새로 유서에 넣을 내용이 생길 정도로 변화되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유서 ver 1.0

유산

나의 모든 유산은 아내가 살아있을 경우 모두 아내에게 귀속된다. 만약 아내가 세상에 없다면 사회에 환원한다.


장례절차

나는 사후 세계를 안 믿으니 장례식을 할 필요가 없다. 돈을 아껴라. 장례비용 너무 비싸다. 단, 살아있는 사람들이 나의 장례식을 치러야지 마음이 편하다면 마음대로 하라. 난 어차피 죽었다. 혹시라도 수의나 관, 장례용품 등의 가격대를 정할 때 망설여진다면 제일 싼 것으로 하라. 걱정마라 귀신이 되어서 왜 싼 걸로 했냐며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의 바람은 장례식이 없는 것이다. 내 시신의 남은 부분이 의학적으로 유용하다면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을 허락한다. 그 후 남은 시신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가장 싼 방법으로 처리하길 바란다. 나는 사후 세계를 안 믿고 내 몸은 죽어서 아무것도 못 느낀다.


지적, 디지털 재산

내가 남긴 모든 지적, 디지털 유산도 법적으로 가능하다면 아내에게 모두 귀속된다. 만약 아내가 세상에 없거나, 지적 재산권을 행사할 주체가 불분명하게 된다면 모두 무료로 공유되고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출처를 밝힐 필요도 없다.



의외로 유서를 쓰는 것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과학자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빨간 글씨로 이름을 쓰면 죽는다는 미신을 타파해 보라고, 숫자 4를 적어도 죽지 않는다고, 빨간 글씨로 이름을 적고 그 뒤에 숫자 4를 적고 난 후 이상한 희열을 맛볼 수 있습니다. 유서를 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분 나쁜 행위가 아니라 그저 미래에 대한 계획이자, 죽음에 대해서 조금은 의연 해질 수 있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상상력의 극치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금메달보다 스토리가 중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