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장 그리고 이야기 하나
(영화 "프렌치 키스", "노팅 힐",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 "500일의 썸머"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특별한 형식의 영화들이 있습니다. 그 영화들이 발전을 해서 “장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냅니다. 지금 우리가 즐기는 장르 영화들은 적어도 일정 수준 이상 팬들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대중의 취향이 바뀐다면 인기가 시들해지는 장르들도 생기게 마련이죠.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도 언제부터인지 개봉작을 쉽게 찾기 힘든 영화 장르가 되었습니다. 한때 로맨틱 코미디는 흥행을 보증하는 아주 인기 있는 장르였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인 “로마의 휴일”도 로맨틱 코미디죠. 그 영화가 1953년에 제작되었다고 하니 로맨틱 코미디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장르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 후 이 장르의 최고 전성기는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개봉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장르의 전성기와 함께 “로코의 여왕”이라 불리는 여인이 나타납니다. “멕 라이언!”
“멕 라이언”은 독특한 외모와 매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작품성과는 별도로 그녀의 매력이 정점을 찍었던 영화가 “프렌치 키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그녀의 대표작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이죠.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가 무너지는 모습은 매우 충격적이었고, 그녀의 퇴장과 함께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도 쇠락하게 됩니다.
“워킹 타이틀”이라는 영화사는 다시금 로맨틱 코미디의 붐을 일으킵니다. 영화 “노팅힐”은 로마의 휴일을 현대의 런던으로 끌어와서 멋지게 재해석합니다. “휴 그랜트”는 남자 배우로서 보기 드문 로코의 연인이 되죠.
로맨틱 코미디의 숨은 명작으로 추앙받고 있는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은 그 당시 파격적인(??) 사랑의 결말과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이야기로 새로운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발전을 이룹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영화 “500일의 썸머”는 비교적 최신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개봉한 해가 벌써 2009년이군요.) 사랑의 굴곡을 여과 없이 보여주면서도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발랄함이 살아 있었죠. 사랑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버리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던, 제 기억에 남아 있는 거의 마지막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가 합니다. “조셉 고든 레빗”의 본격적인 인기 몰이가 시작된 영화이죠.
로맨틱 코미디는 판타지입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거의 일어날 일이 없죠. 현실적인 로코가 점점 등장하는 추세이지만 장르의 특성상 현실과의 괴리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가요? 인기가 급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영화는 판타지입니다. 요즘 대세 중의 대세인 슈퍼 히어로 영화들의 인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반지의 제왕”같은 영화들보다 로맨틱 코미디가 100배 현실적입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사랑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니까요? 매우 슬픈 일입니다.
OTT시대에 로맨틱 코미디 같은 작은 규모의 영화들은 극장 대신 손 안의 스크린으로 옮겨오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OTT용 시즌제 드라마에 잘 어울리는 장르로 로맨틱 코미디만 한 게 없죠. 대형 극장 스크린의 흥행공식은 “어벤져스”같은 대형 블럭버스터라고 메이저 영화사들은 보는 것 같습니다. 지난 시절의 시스템과 영화 문법으로는 더 이상 로맨틱 코미디를 만나보기 힘들 것 같군요. OTT의 새로운 피를 수혈받은 로맨틱 코미디에 익숙해져야 할 때입니다.
언제부터 판타지 영화들은 어두워져만 갑니다. 동화라고 생각했던 “해리포터”의 영화들도 갈수록 어두워졌고 즐겁고 밝은 판타지 영화는 사라졌습니다. 가장 밝고 즐거운 판타지는 “사랑”아닐까요? 2022년 3월, 팬데믹은 여전하고 전쟁은 일어나고 있고, 웃을 일이 별로 없습니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행복한 판타지가 그리운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