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장 그리고 이야기 하나
가수 "자이언티"의 노래 "양화대교"는 들을 때마다 울컥하게 만듭니다. 노래의 가사에는 양화대교를 지나고 있다고 말하는 택시기사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택시기사라는 직업은 참 여러 가지 감정을 유발합니다. 하루 종일 운전만 하고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대해야 하며 엄청난 노동강도를 견뎌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택시기사가 된다는 것은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는 것이었죠. 특히 개인택시를 운행할 수 있다면 그 당시 최고로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택시는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야 하는 서민들의 직업인 동시에 높은 고소득을 보장해 상류층으로 도약할 수 있는 꿈의 직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택시"라는 것에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정도로 싫어하게 된 것일까요? 좀 더 구체적으로 택시 기사들에 대한 인상이 너무 안 좋게 각인이 되어있다는 겁니다. 택시 기사들의 선행도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가는 사람을 택시 기사들이 따라가서 잡았다는 뉴스도 들리고, 집 보증금을 택시에 놓고 내렸는데 그 택시 기사가 돌려주었다는 기사도 봤습니다. 그 이외에도 정말 좋은 택시 기사들이 많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저의 기억 속에 택시에 대한 어떤 것들이 자리 잡고 있기에 택시에 대한 반감이 이토록 심한지 살펴봐야 할 것 같네요.
1. 잔돈을 거슬러주지 않았다.
잔돈푼에 연연하는 것이 너무 찌찔해 보이나요? 안 좋은 기억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기 마련이죠. 예전의 택시는 현금으로 만 결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요금이 천 원 단위로 딱 떨어질 리가 없죠. 잔돈이 필요합니다. 승객이 잔돈이 없을 경우 큰돈을 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몇백 원, 몇십 원의 잔돈을 택시기사가 주지 않는 겁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잔돈이 없다는 것이었지만 잔돈을 줄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성인이 갓 되었을 때, 택시를 탄 적이 있습니다. 돈이 없던 매우 가난한 시절이었죠. 내릴 때 잔돈이 없어 큰돈을 건넨 후 조마조마하게 눈치를 보며 기다렸습니다. 몇백 원, 몇십 원이 정말 아쉬운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 택시 기사들은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겁이 많았죠. 그렇게 잠시, 잔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기다렸습니다. 택시 기사는 역시나, 왜 빨리 안 내리냐며 나를 쏘아보았고 그렇게 내 잔돈은 돌아오지 않았죠. 운 없게도 저에게는 이런 일들이 자주 생겼습니다. 택시 요금을 카드로 결제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물론 카드 결제 초창기, 택시 기사에게 카드 결제되냐고 물어보고 허락을 구걸해야 했던 기억도 좋은 기억은 아닙니다.
2. 요금을 더 받기 위해 먼길을 돌아갔다.
택시를 탈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이 택시가 가까운 길을 두고 멀리 돌아가는지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저처럼 자주 가는 길도 잘 모르는 길치이거나, 모르는 길을 처음 가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옵니다. 경우에 따라서 가격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벌어지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왜 먼길을 돌아가냐고 화도 잘 못 냅니다. 제가 위에서 말했었죠. 그 당시에는 택시 기사들이 많이 무서웠습니다. "그 길은 지금 많이 막혀요!", "이 길이 더 빨라요!"라고 언성을 높이면 딱히 할 말도 없었죠. 그래서 그때는 지방에 갈 때 방문객처럼 보이지 않게 택시를 타는 것이 중요한 팁이었습니다.
3. 손님을 가려 받았다.
승차거부는 그 때나 지금이나 문제였습니다. 그 당시 택시 조수석의 열린 창문으로 "어디 어디요!"라고 행선지를 소리 지르며 묻는 것이 국 룰이었습니다. 택시 기사들의 간택이 있어야 택시를 탈 수 있었죠. 특히 밤에는 행선지와 더불어 "따블!" "따따블!"을 외치며 웃돈을 얹어주어야 집에 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버스나 전철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런 택시를 잡기 위해 정글 속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어디 어디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 집까지 몇 시간 만에 갔다는 무용담들이 많이 떠돌았죠.
4. 택시 안은 항상 너무 더러웠다.
저는 깨끗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 방을 잘 치우지 않는 지저분한 편에 속합니다. 결벽증이 있어서, 너무 예민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제가 겪은 택시의 내부는 정말 너무 더러웠습니다. 특히 담배 찌든 악취는 숨을 쉴 수 없어서 질식할 수준이었습니다. 그 당시 담배 피우며 운전하는 택시 기사의 모습은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너무 냄새가 심해서 눈이 시린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5. 듣고 싶지 않은 택시기사의 연설.
택시 기사들이 승객에게 하는 말이 쓸데없이 너무 과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느니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너무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저의 지방 여행 때 일화를 소개하죠. 호텔까지 가기 위해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 기사는 어김없이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정치 이야기로 흐르더니 흥분을 했습니다. 얼마나 과했냐면, 제가 잘못 추임새를 넣었다가는 그가 저를 죽일 것 같았습니다. 정말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네.."만 연발하고 발발 떨며 겨우 호텔에 내렸습니다. 그 두려움은 택시에서 내리면서도 이어졌죠. 그 택시 기사에게 90도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으니까요.
6. 택시기사가 길을 더 모른다.
위에서 말한 저의 일화도 그렇게 먼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요즘 택시를 타면 의외로 많은 택시 기사들이 길을 모릅니다. 그렇게 끔찍했던 과거의 택시 기사들이지만 그래도 길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비교적 최근의 기억인데, 택시 기사가 내가 가려는 목적지도 모르고 근처 유명한 곳으로 가는 길도 모르더군요. 100% 내비게이션에 의존했습니다. 택시 기사가 저의 관념에는 전문 직종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비게이션이 없어도 어느 정도 비슷하게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택시 기사들을 전문 직종으로 바라보는 제 시선을 바꿔야 하는 걸까요?
제가 겪었던 택시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의 정체는 그들로부터 내가 대우를 받고 있지 않다는 불쾌감이었습니다. 택시 기사들, 택시 사업 시스템이 보여주는 승객들에 대한 서비스 마인드는 아예 없었다고 보입니다. 비교하고 싶지는 않지만 일본의 택시 시스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사가 내려서 직접 승객의 문을 열어주는 장면이 기억에 선명합니다. 적어도 택시의 문이 승객을 위해 자동으로 열린다는 점은 그들이 승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택시 요금이 얼마나 비싼지 아냐고요? 지난 시절 불운한 "타다" 서비스가 비싼 요금에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유가 비싼 만큼 대우받는 서비스의 힘일 것입니다.
내 기억 속에 각인된 그 오래된 문제들이 지금 고쳐졌을 까요? 택시 앱으로 대부분 호출이 되고 결제도 이루어지니까 잔돈 걱정이나 목적지를 소리 질러 외쳐야 했던 불편함은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택시라는 시스템이 우리를 대우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왜 택시 안의 담배 찌든 냄새는 없어지지 않을까요? 그 시절 "타다"를 죽이면서 (타다 서비스는 아직 살아있더군요) 택시는 기득권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벌써 택시 시스템의 변화가 강제되고 있습니다. 심야 시간 택시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택시 기사들의 고령화는 운행에 차질을 주고 있고 택시 자격증의 제한은 신규 기사의 진입을 막고 있죠. 인금이 무섭게 오른 배달 시장이 기사들을 흡수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결국 택시 시스템의 대대적인 변화밖에 살 길이 없어 보입니다. 결국 타다로 대변되는 새로운 흐름의 승리인 셈이죠.
요즘 새로 나오는 자동차들은 직접 운전하기 매우 편하게 되어 있더군요. 각종 센서와 카메라 기술들은 주차와 차선 변경을 참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자율주행이 기술과 법적인 문제로 먼 미래의 일이라고 치부하더라도, "주차" 하나만이라도 자동으로 가능하다면 어떨까요? 자동이 아니라도 상대 차량에 충격을 가할 일이 거의 없어진다면 어떻겠습니까? 자가용을 사지 않을 이유 중 큰 부분이 사라지는 겁니다. 택시 대신 자가용을 택하겠죠. 자율 주차 시스템에 준하는 기능은 곧 가능해 보입니다. 차선 변경까지 시스템이 개선된다면 택시를 선택할 이유가 없습니다. 개인 운송 수단은 버스, 전철 같은 집단 대중 운송 수단과 자가용 차로 나뉠 겁니다. 오히려 기존의 택시 시스템보다 우버나 예전 타다 같은 서비스가 살아남을 확률이 커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