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장 그리고 이야기 하나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는 지금(2022.12), 견고한 국방력이 더 요구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팬데믹 이후 공급이 부족해지자 각국은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세계적인 협력보다 자국우선주의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국가 간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이죠. 자원의 무기화는 언제든지 국가 간 충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주변 상황은 수많은 이유로 무력 충돌의 위험성이 높아진 상황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방력은 세계가 인정해주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력한 국방력이 이렇게 든든한 것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멈추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태연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이유도 우리의 국방력을 믿는다는 뜻이겠지요.
저는 대한민국의 군대가 고맙기는 하지만, 사랑하지는 못하겠더군요. 그런 게 있잖아요. 꼭 필요하고 중요한 것인데, 정이 가지 않는.. 예전에 이스라엘의 군대와 대한민국의 군대를 비교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군사적 위험이 상시 존재하고, 전 국민이 일정기간 군대에 가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이스라엘을 대한민국과 비교했던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과 이스라엘 군필자들이 모여서 군대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답니다. 대한민국 군필자들이 행군으로 발톱이 빠졌던 기억, 입에서 단내가 나는 유격, 혹한기 훈련의 과정, 영하 40도에 얼음물을 깨고 들어갔다는 등 무용담을 늘어놓았죠. 이스라엘 군필자들이 너무 놀랐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군대에서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극한의 훈련이었던 것이죠. 대한민국 군대와 군인이 얼마나 강하고 경쟁력이 있는가!로 결론이 내려졌답니다.
그런데 저는 관점을 달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죠. “왜, 이스라엘 군대에서는 그런 극한의 훈련을 하지 않는가?”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런 훈련들이 전쟁에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반론으로, 혹독한 훈련을 하는 다른 나라의 군인들도 많고 이스라엘의 그 군필자만 쉽게 군생활을 한 것 일수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도 안 되는 혹독한 훈련을 하는 경우는 대부분 직업 군인들이죠. 일반 징집병들에게까지 요구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직업군인이 되기 위해 체력을 단련해 왔고, 마음의 준비까지 마친 사람들과는 달리, 징집된 일반 병사들의 체력은 천차만별입니다. 행군과 유격, 혹한기 훈련 등등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훈련의 강도를 물리적으로 견디기 힘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국방의 신성한 의무를 내세운다고 극복되는 것이 아니죠. 오히려 합리적이고 전쟁에 꼭 필요한 스킬을 익히게 하는 것이 더 이득이 있을 겁니다. 지난 시대의 유물인 주판을 고수하는 것보다 계산기를 활용하는 것이 더 나은 것처럼요.
오래된 일이지만 저의 군생활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훈련소 처음 들어갔을 때입니다. 식당에서 30초 만에 밥을 먹여놓고는 아무 이유 없이 얼차려를 가하더군요. 당연히 먹은 밥은 모두 토하고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육체적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합당한 이유가 없이 당했다는 것이죠. 가하는 쪽이 내세우는 이유가 정신력 강화입니다. 또는 사고를 못 치게 처음부터 기를 죽이겠다는 것이었죠. 저의 군생활은 비효율의 극치였습니다. 땅을 파라고 삽질을 시키면 절대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루 일과가 끝날 때까지 삽질만 할 수 있게 시간 배분을 절묘하게 할 것인가가 관건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을 열심히 해서 일찍 끝내면 또 다른 일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군생활의 일 대부분의 목적은 군인들이 잡생각 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시간의 여유는 사건 사고로 이어진다는 고정관념 덕분이죠. 왜 삽질을 하는지 이해도 안 되었고, 삽질이 끝나면 또 다른 삽질이 기다리고 있음을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군대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지된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전쟁을 겪었고 아직도 휴전 중인 대한민국에서 군대의 권력은 막강하고, 신성한 존재로 추앙받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군대도 많이 개혁이 되었다고 합니다. 결정적으로 군대는 그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출생률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군대가 징집할 젊은이가 없어지는 겁니다. 비약이 심할 수도 있지만, 군대의 힘은 징집제도가 유효할 때 나옵니다.
군인을 징집할 수 없다면 당연히 모병제로 가야 합니다. 직업군인의 확대입니다. 그런데 누가 자발적으로 행군, 유격, 혹한기 등등 극한의 고통 속으로 뛰어들까요? 더군다나 그 조직이 합리적인 것과 멀다면 쳐다보지도 않을 겁니다.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군대에 갔더니 미래의 전쟁을 대비해서 코딩과, AI를 배우고 과학적 사고를 훈련할 수 있었다. 제대하고도 습득한 그 능력은 고스란히 내 생업에 도움을 주더라! 연금까지 빵빵한 군대는 최고의 공무원이다.” 이렇다면 군대는 지원자로 넘쳐날 것이고 지금보다도 더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을 겁니다.
지난 시절 제가 가지고 있는 군대에 대한 인식은 별로 안 좋았습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많은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자원입대를 했는데, 군대는 그런 나를 고마워하기는 커녕 정신 개조를 해야 하는 발밑의 사람으로 취급했습니다. 국가가 없으면 군대도 없습니다. 국가는 국민입니다. 지난 시절 군대의 머릿속에는 군대 없이는 국가도 없다는 생각을 가진 것 같았죠. 세월은 흘러 군대에 갈 사람이 없어지는 진풍경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잘 못 들은 것이 분명하겠지만 어느 군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모자란 징집병을 채우기 위해 "여자도 군대를 보내야 한다." "신체검사 등급을 조절해 아픈 사람도 징집해야 한다." 등등의 징병제를 유지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군대의 살길은 완전한 변화뿐입니다. 인구감소는 다른 해답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