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의 인식이 바뀌다.
그림을 그리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환상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림은 종이 위에 펜으로 (붓으로) 쓱쓱 그려야 제맛이지..”
그런데 곧 종이와 펜(붓)이 사라지는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면 어떨까?
나는 지금 세상의 표준은 디지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의 대다수는 아직도 아날로그적인 표준을 고집하고 있다. 적어도 그들의 머릿속에는 아날로그를 고수하려는 무의식적 사고가 깔려있다. 나 역시 그런 무의식의 지배를 받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세상은 디지털에 의해 굴러가고 있지만 디지털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부정적이다. 나쁜 것, 세상을 결국 망칠 것으로 우리는 디지털을 바라보고 있다. 그에 반해 아날로그는 착하고 선한 것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아직도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쓰는 문학가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그를 뭔가 대단한 경지에 오른 대가로 생각하고 인정하려 할 것이다. 그로 인해 산업 표준인 디지털로 변환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비효율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글의 질적인 차이도 안 난다는 사실조차 외면한다.
그림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펜과 종이로 아날로그적인 그림 그리기 과정이 제대로 된 그림 그리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의식적으로 디지털 그림을 그리려고 많이 노력한다.
그밖에도 우리는 곳곳에 아날로그의 환상을 심어놓고 있다. 기억도 안나는 예전 어린이들 놀이에 환상을 심어놓고 디지털 게임을 죄악시하고 있고, 곧 올 4차 산업 혁명 앞에서 디지털 서비스를 반대하는 몸부림이 세상에 번지고 있다.
이런 인식을 단번에 바꿔놓는 사건이 코로나 19 사태이다. 아직도 진형 중인 이 비극적인 아날로그적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을 더욱 디지털화시키는 가속제가 되었다. 그리고 세상을 구하는 디지털에 대한 인식은 당연히 급 상승했다. 아날로그만 알았던 노인층까지 생존을 위해서는 디지털 세상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다.
그동안 모바일 앱으로 이루어지는 간편 결제 시스템의 도입이 완만한 그래프를 그렸다면, 서울시등의 긴급 재난 지원금 등이 제로 페이 형태로 지원됨으로써 간편 결제 시스템은 급속도로 넓게 퍼질 것이다.
디지털은 이제 제대로 된 평가와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표준은 디지털이 된 지 오랜 세월이 지났다. 삶의 표준 역시 디지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의 환상에 우리는 디지털을 천시했다.
“디지털”이라 함은 아날로그 세상의 직업을 빼앗는 악당으로 누명을 써왔다. 하지만 지금 디지털이 없었다면 우리는 살기 위해 바이러스로 가득한 아날로그 정글에 음식을 구하기 위해 맨몸으로 나가야만 했다.
이제 동등한 입장이 된 디지털과 아날로그 세상은 조화롭게 살아갈 것이다. 아니 어쩌면 디지털의 역전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