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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의 경제학

그 많던 소매치기는 어디로 갔나?

by 그림한장이야기

도둑의 경제학


예전에 인기가 있었던 드라마 중에 “네 멋대로 해라”라는 작품이 있었다. 양동근을 배우로서 꽃피게 만들어준 작품이다. 이나영, 공효진 등등 지금 보니 캐스팅이 화려하다. 그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양동근은 소매치기이다. 그가 여자 주인공 이나영의 지갑(?)을 소매치기하면서 인연이 시작되는 이야기로 기억한다. 생각해보니 예전에는 소매치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나 영화, 문학작품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요즘은 소매치기라는 단어를 아는 사람이 있는지도 궁금할 정도이다. (소매치기란 남의 물건, 주로 지갑을 몰래 꺼내서 훔치는 도둑을 말한다)


P20210525_174818812_93E82F2D-B7B6-410F-948B-497A179D87F9.JPG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양동근 드로잉 (iPad 7, Adobe Fres


어릴 때 어머니와 명동에 나갔다가 소매치기를 당해서 그냥 집으로 돌아온 기억이 있다. 그때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소매치기가 성행했고, 항상 소지품을 잘 간수해야 했다. 그런데 그 많던 소매치기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러고 보니 내가 알고 있었던 각종 수법의 좀도둑, 잡범들의 뉴스를 못 들은 지 아주 오래된 것 같다. 도둑의 대명사인 빈집털이 도둑들도 요즘은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우리나라에 처음 온 외국인들이 놀라는 것들 중에 하나가 카페에서 지갑이나 랩탑 컴퓨터를 그냥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자리를 비우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만 특별히 착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좀도둑들이 사라진 것도 신기하다.


도둑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변화한 것이다.


소매치기가 없어진 이유는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이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카드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이제는 스마트폰의 각종 페이가 현장 결제를 대신하고 있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훔치는 것도 만만한 게 아니다. 카페에서 주인 없는 물건들을 훔치는 것도 도둑의 입장에서는 매력이 없다. 지갑에는 현금이 없고, 스마트폰과 랩탑 컴퓨터는 중고로 팔아야 하는데.. 위험을 무릅쓴 노력에 비해 얻는 게 적다. 그렇다고 집안에 들어가면 훔칠 게 있느냐? 마찬가지로 없다. 집에도 도둑이 만족할 만한 금액의 현금은 없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금두꺼비 라던지 값비싼 혼수나 귀금속도 없다. 가장 많은 1인 가구들의 살림살이는 그냥 전자 제품이 전부이다.


여러 가지 직군들 중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은 어디일까? 도둑들의 세계일 것이다. 그들이야 말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얻는 게 크지 않다면 할 필요가 없는 게 도둑질이다. 그들의 기본 리스크는 감옥에 가는 것이다. 감옥에 갈 위험을 무릅쓰고 고작 전자제품 중고 팔이를 하겠는가?! 똑똑한 도둑들이 그럴 리 없다.


슬프게도 대한민국에는 사기꾼들이 많다고 한다. 통계적으로도 사기 범죄의 증가율은 어마어마하다. 사기 범죄는 피해자 스스로 사기범에게 돈을 가져다주는 형태로 진행된다. 지금 시대에 도둑들이 가장 선호하는 현금을 훔치는 방법은, 돈의 주인이 도둑에게 순순히 현금을 건네주는 것뿐이다.


이제 일상의 대부분은 도둑들의 목표가 되지 않는다. 우리 일상의 대부분에 현금이 없기 때문이다. 일상이 아닌 특별한 이벤트 상황을 찾아서 도둑들은 돌아다닌다. 그리고 기회를 잡아 사기를 친다.. 일상이 아니라는 말에서 범죄 피해액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각종 금융 거래 사기들이 판을 치고 그 피해액은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든다.


도둑놈에게 내 물건을 빼앗기고 지갑을 털리고, 집에 도둑이 들어도 우리는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아무리 도둑이 나의 모든 소유물을 훔친다고 해도 딱 거기까지만 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사기범들은 다르다. 사람들의 삶을 통째로 빼앗아간다.


사기범들은 우리의 욕심을 교묘히 파고든다. 이제 우리는 소매치기 시대의 지갑을 지키는 것과 똑같이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


오래전에 전설의 사기꾼이 책을 냈다고 한다. 세상의 온갖 사기를 치는 방법이 총망라되었다. 그 책의 끝에 이렇게 적혀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기꾼의 신으로 불리는 나조차 사기를 칠 수 없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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