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하게 영화 보기
(영화 "아이 엠 샘", "7번 방의 선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7번 방의 선물"은 흥행 성적은 좋았지만 평론은 좋지 못했습니다. 지적 장애를 눈물을 위한 장치로만 소비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죠.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과연 지적능력 없이 사랑만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또 다른 영화 "아이 엠 샘"은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영화 "아이 엠 샘 (I Am Sam)" 역시 눈물이 핑 도는 장면들이 많은데 유독 생각나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영화 속, 여자 아이는 더 이상 똑똑해지는 것을 거부하고 학교 공부를 외면합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관객은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 속의 아이에게는 아버지가 있는데, 7살 어린아이의 지능을 가진 장애인입니다. 아이는 아버지보다 더 똑똑해지는 자신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아이는 성장하는 것을 스스로 포기하죠. 감정과다인 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펑펑 쏟고 있지만 이내 눈물을 훔치고 우리는 이성적인 질문 하나를 던져야만 합니다. "아무리 사랑을 주어도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는 부모는 좋은 부모인가?"
지금 시대의 부모들만큼 자식의 지적 성장을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붓는 부모들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현실 속의 부모들이 영화 속 지적 장애를 가진 부모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지지 것은 왜일까요? 자식들을 공부시키는 것에 모든 것을 바치지만, 정작 부모 자신들의 지적 성장은 오래전에 멈췄기 때문 아닐까요? 영화 "아이 엠 샘"속의 아이가 성장을 스스로 멈춘 이유를 다시 상기해 봅니다. 아이는 부모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학원선생의 수준이 아니라 부모의 수준이 아이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부모의 수준이 아이의 수준이라면, 부모가 미분을 하고, 적분을 할 수 있어야 자격이 되는 것일까요? 미분, 적분은 못하지만 수학이 왜 필요한지 친절히 설명해 주는 부모는 어떨까요? 영어로 외국인과 대화는 못하지만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없이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모범을 보인다면 어떨까요? 아이에게 강요하는 대신,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설득이 선행되는 부모라면 어떨까요? 아이는 그런 부모를 태산같이 위대하게 볼 것이고, 기꺼이 그 산을 올라 정상을 넘어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