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장 그리고 이야기 하나
저는 어릴 때 잔머리를 잘 굴렸습니다. 그 머리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뭐가 되었어도 되었겠다고 어른들은 항상 말씀하셨죠. 저의 인생 중 가장 혁신적인 잔머리 두 개를 어린 시절에 선보입니다. 어떤 잔머리였을 까요?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한(?) 발상이었네요.
잔머리 1)
학교에서 수학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매일 문제집을 풀어서 일주일마다 선생님에게 검사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한 가지 조건을 더 붙이셨죠. 채점까지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문제집을 풀지 않았고 검사받을 날이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거의 대부분 객관식 문제였기에 일단 아무 번호나 답을 적었습니다. 문제는 채점이었죠. 여기서 놀라운 잔머리가 발현됩니다. 채점도 내 마음대로 막 하는 것이었죠. 빨간 색연필로 랜덤 하게 동그라미와 체크표시를 섞었습니다. 30분 정도에 일주일치 숙제가 완료되었습니다. 숙제 검사에서 선생님에게 걸리겠다고요? 천만에요. 그 당시 한 반의 학생수는 50명이 훌쩍 넘었습니다. 문제 하나하나 읽고 제대로 풀었는지, 잘 채점했는지 확인할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어린 저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죠.
잔머리 2)
옛날에는 1년에 한 번에서 두 번은 사생대회를 열었습니다. 경치 좋은 곳에 가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저 같은 대부분 학생들은 사생대회는 안중에도 없고 하루 노는 날이었습니다. 친구들은 대부분 산문(긴 글)을 썼습니다. 정해진 주제로 글을 쓰는데 원고지 10매 내외로 정해진 장수를 채워야 했죠. 원고지 장수를 채우기 위해 별의별 방법이 나왔었습니다. 띄어쓰기에 관심도 없는 아이가 필요 없는 곳에서도 띄어쓰기를 하고, 누군가의 글을 무한 복사하기도 했죠. 그때 저는 "시"를 썼습니다. 글쓰기 종목에는 시와 산문이 있었는데 아무도 시를 선택 안 하더군요. 어차피 엉망진창인 글인데 시를 선택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죠. 시는 원고지 분량 제한이 없거나 현저히 적었습니다. 대충 몇 장 적고 남는 시간 신나게 놀았죠.
지금 생각해 보면 수학 문제집 비용을 낭비한 것이 죄송스럽고, 사생대회 때라도 제대로 글을 썼더라면 지금 이 글을 쓰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잔머리와 창의력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어린 시절 저는 창의적인 아이였던 것일까요?
창의력은 기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입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간단하고 쉬운 방법을 찾기도 하지만 반대로 누구도 싫어하는 귀찮고 어려운 길로 뛰어들기도 합니다. 반면 잔머리는 그 태생이 하기 싫은 일을 안 하기 위함이죠. 과정을 극단적으로 줄이거나 귀찮은 과정을 싹둑 잘라냅니다. 상대를 속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잔머리의 목적은 그렇게 얻은 시간을 그저 낭비하는 것에 있습니다.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며 잔머리로 인생을 쉽게 사는 사람에게 우리는 그 비법을 배우려 기웃거립니다. 정직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손가락질하며 답답해합니다. 잔머리 영재의 삶을 살아온 제가 결국 깨달은 것은 정직한 과정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 수학 문제 잘 풀고, 글을 열심히 써야 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