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장, 영화 이야기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저는 낭만적인 영화들을 좋아합니다. 낭만적이란 것이 정확히 무엇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로맨틱하다는 말과 비슷하게 애매모호합니다. 지난 글, "그 영화, 로맨틱하다"에서 는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로맨틱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얼마 전의 글, "세계일주 그까짓 거.. 80일이면 충분하지!"에서는 영화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참 낭만적이라고 말했었죠. 그렇다면, 가장 낭만적인 애니메이션은 무엇이 있을까요? 저의 선택은 지브리의 "붉은 돼지 (Porco Rosso)"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비행기를 좋아하는 것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의 비행에 대한 애정을 가장 기분 좋게 표현한 영화로 저는 "붉은 돼지"를 꼽고 싶습니다.
영화 "붉은 돼지"의 배경은 이탈리아의 아드리아해이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로 보입니다. 벌써 낭만이 촤르르 깔립니다. 거친 하늘의 사나이들, 그러나 사랑에는 한없이 부드러워지는 그들, 변하는 세상 속에 적응하기를 거부하며 기꺼이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전쟁 영웅인 비행사가 스스로 돼지가 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을 참기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도 조금만 참고 영화를 감상해 보세요. 돼지가 주인공이라는 거부감은 곧 기억도 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주인공이 돼지라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위의 장면은 거의 마지막쯤에 주인공 붉은 돼지와 그의 라이벌이 맨주먹으로 싸우는 장면입니다. 굳이 비행기에서 내려 바닷가 한 복판에서 저렇게 주먹다짐을 합니다. 이것이 낭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악당들이 나오지만 그저 개구쟁이들 같습니다. 하야오의 작품들 중에는 잔인한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초등생들이 싸움박질하는 것 같습니다.
붉은색 멋진 비행기를 타고 아드리아해를 주름잡는 돼지의 이야기. 하야오의 최고 작품은 아닐 수 있지만 최고의 낭만을 선사해 줍니다. 낭만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인 음악도 "붉은 돼지"에서는 구비되어 있습니다. 아련한 향수와 사라져 가는 낭만의 시대를 떠올리게 해 주는 음악입니다.
https://youtu.be/7wX02j1LvXk?si=8YiIctZ3Du1xiD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