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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한장이야기 Feb 26. 2024

서부 영화 - Part 1. 낭만의 시대

그림 한 장, 영화 이야기

(영화 "셰인", "내 이름은 튜니티"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가장 많이 봤던 영화 장르는 아마도 서부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 저에게 영화는 TV속에 존재하고 있는 세계였습니다. 그 세계의 주인공이 서부 영화였던 것이죠. 영화관에 가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습니다. 기껏해야 "로봇 태권브이" "똘이장군"등을 보기 위한 어린이날 행사였죠.


그림 한 장, 영화 이야기

서부 영화 - Part 1. 낭만의 시대


아직도 저에게 서부영화란 "존 웨인"의 영화입니다. 그의 존재는 어마어마해서 미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저의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TV에서 방영해 주던 서부영화의 반 이상은 그가 주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스토리가 기억나는 영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까스로 스토리가 기억나는 그의 영화로는.. "알라모" 그리고 "진정한 용기" 정도입니다.

"존 웨인"을 너무 안 닮게 그렸네요.

위의 그림은 존 웨인을 너무 다르게 그려서 창피하지만, 저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그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존 웨인의 서부영화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스토리가 기억에서 사라진 것도 있지만, 그의 서부영화는 모두 천편일률적이었죠. 백인 보안관이 인디언을 물리치고 무법자들을 처단합니다. 그의 모든 영화가 다 똑같아서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스토리가 기억에 남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천편일률적인 그 시절의 서부영화들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낭만"이라는 단어가 생각납니다. 왜곡된 역사를 주입하는 영화의 고질적 폐해가 여실히 드러나지만 그 반대편에는 낭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영화 "셰인"은 그 낭만이 최고조에 이른 서부 영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 "셰인"은 히어로 영화의 교과서로 볼만합니다. 어두운 과거를 가진 영웅이 세상을 등지고 은둔합니다. 다행히 그를 받아준 선량한 농부 가족이 있어서 평화를 되찾죠. 그러나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자신을 받아준 농부 가족이 악당들에게 위험을 당하자 셰인은 참고 참았던 총을 듭니다. 어릴 때, 이 전형적인 영웅 스토리에 푹 빠져서 영화를 봤습니다. 지금 보면 영화 속 모든 것이 예상되어서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딱 한 장면, 그 장면은 언제나 저의 마음을 울리게 할 것 같네요.

영화 "셰인"의 마지막 장면

영화의 마지막에 셰인은 농부 가족을 떠납니다. 자신이 그들과 같이 할 수 없는 부류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그를 좋아했던 꼬마 아이의 만류에도 셰인은 떠나갑니다. 말을 타고 떠나가는 셰인을 바라보며 꼬마 아이가 외칩니다. "Shane! Come Back!" 아이의 목소리는 세상을 울리듯 퍼집니다.


영화 셰인이 전통적인 진중한 영웅 서사를 그리고 있다면, 서부 영화를 조롱하는 듯한 발칙한 영화가 있었습니다. 영화 "내 이름은 튜니티"를 처음 봤을 때, "이렇게 재미있는 서부 영화도 있구나!"하고 놀랐었죠. 그때의 흥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튜니티"시리즈는 그 후로도 계속 나왔고 언제나 재미있게 봤었던 기억이 납니다.


튜니티 시리즈가 기존의 서부극과 달랐던 이유는 아마도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만든 서부 영화였기 때문일 겁니다. "마카로니 웨스턴"이라고 불렸던 이탈리아산 서부극들이 지금에서야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가, "클린트 이스트우드" 배우 등등으로 회자되지만 저에게 마카로니 웨스턴의 기억은 "튜니티"라는 이름으로 시작됩니다.

영화 "내 이름은 튜니티"의 한 장면


저의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서부 영화는 그 당시에도 TV에서나 방영해 주던 한물 간 장르였습니다. 그냥 한물간 정도가 아닌, 비판의 대상이 되는 골칫거리였습니다. 인디언이라고 불린 아메리칸 원주민에 대한 역사적 왜곡, 백인 우월주의 등등 피할 수 없는 심판을 받게 되었죠. 그 후 서부 시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한 영화들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그 영화들을 "수정주의 서부극"이라고 부르죠. 다음 기회에는 수정주의 서부극을 포함해서 비교적 최근의 서부 영화들을 다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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