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장 그리고 이야기 하나
내 그림에, 내 글에 종종 댓글이 달립니다. "작가님~.."이란 호칭을 사용해 저에게 말을 건넵니다. 그 "작가님"이란 호칭이 얼마나 어색하고 부끄러운지 아직도 적응이 잘 안 됩니다. 그림을 배운 적도 없고 책을 읽기조차 싫어하는 내가 작가라는 호칭을 들어도 되나? 나는 언제 스스로 작가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브런치 작가로 합격했을 때 오히려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을 숨기고 싶었습니다. 그냥 말장난 같았죠. "브런치가 뭔데 작가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을까?" 어디 가서 브런치 작가라고 떠들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브런치 작가에 지원했고 정말 운 좋게 합격을 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네요.
"작가"의 자격을 가질 수 있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작가라고 불릴만한 작업으로 돈을 벌었을 때입니다. 요즘 작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돈을 버는 작가들은 여전히 소수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해냈으니 작가라는 호칭을 자랑스럽게 달수 있을 겁니다.
제가 책을 팔아보겠다고 도전했다가 실패한 것 아시죠? (저의 책 출판 실패의 과정이 담긴 브런치북: 나의 그림 출판하기 -개인출판과정) 작가 활동으로 돈을 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대단한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습니다.
"작가"를 돈 버는 직업의 카테고리로서 바라보지 않는다면 작가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또 다른 기준이 있지 않을까요?
저의 개인적인 결론은 "시간의 양"입니다.
돈을 버는 것만큼 오랜 시간을 견뎌내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어쩌면 돈도 못 벌면서 그 일을 열심히 오래 하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돈이라는 기준은 남이 부여해 주는 것이고 시간이란 기준은 내가 부여해 주는 것이라서 더 난해하고 충족시키기 어려운 기준일 것입니다.
오래 꾸준히 매일 열심히 한다는 의미는 무조건 어제의 나보다 발전한다는 의미입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첫 피드를 캡처해 이글에 첨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못했습니다. 첫 피드로 가기 위해 끝없이 스크롤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포기하고 게시물(피드) 수가 나온 캡처 사진으로 대체하기로 했습니다.
인스타 그램 피드가 2,900개를 넘어가는 것에 비하면 500개가 넘는 글이 있는 브런치스토리에서 첫 글 찾기 스크롤링은 수월했습니다. 아래 캡처 사진이 저의 첫 브런치 글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즈음에 그림과 글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SNS에 남겨진 기록 이전에 연습장 첫 그림까지 포함한다면 얼추 5년 정도의 시간이 쌓였습니다. 그 시간 동안 거의 매일 그림을 그렸고 글은 한 달 이상 공백을 두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제 결심했습니다. 저 자신한테 "작가"의 호칭을 수여하기로요.
"무슨 일 하세요?"
"작가입니다."
"작품이 뭐예요?"
"세상에 나온 작품은 없어요. 돈 못 버는 무명작가이죠."
지금까지 "돈 못 버는 무명..."에 신경을 썼다면 지금부터는 "... 작가"라는 정체성에 적응해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