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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기술의 차이

과학을 생각하다

by 그림한장이야기

과학과 기술의 차이


우리는 팬데믹 상황을 잘 극복하고 있다. 우리의 방역기술은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선진국들 조차 이해할 수 없는 반응으로 팬데믹 방역에 실패하였다. 하지만 결국 팬데믹 상황의 종결은 백신과 치료제이다. 실망스러운 방역시스템을 보여주었던 나라가 백신 공급을 잘해주기만을 바라는 상황이다.


철학자 최진석은 말한다. 동양은 왜 서구에게 완벽하게 굴복당했는가? 우리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문화유산을 배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 기술 등등을 가졌고, 중국도 화약이라든지, 최초의 기술들이 제법 많았다. 하지만 서구는 그 당시 벌써 과학을 가지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무슨 무슨 국제 기술 대회에서 몇 년 연속 우승을 했다고 뉴스에 크게 보도되던 시절이 있었다. 기술하면 대한민국, 손재주 하면 대한민국 이라며 우리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기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아직 노벨 과학분야 상을 타본 적이 없다.


이름도 모르는 작은 나라의 오지에 버스기사가 있다. 그 버스기사는 운전뿐만 아니라 엔진이 고장 나면 엔진도 뚝딱 고치고 타이어가 펑크 나면 펑크 난 곳도 막는다. 그것도 드라이버와 몇 개의 도구들로 말이다. 내비게이션이 없어도 위험한 산악길을 자연스럽게 운전도 잘한다. 그 사람의 눈에는 뉴욕의 버스 기사들은 한심하다. 간단한 고장이 나도 고칠 생각도 안 하고 운행을 중단한다. 이거 안된다 저거 안된다. 불평만 하고 파업을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런 버스기사들이 넘쳐나는 뉴욕, 미국은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다.


과학과 기술의 차이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그 격차는 어마어마하다. 모든 것을 척척해내는 기술을 가진 버스기사들이 있어도 제대로 된 버스를 만들 과학이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과학이란 기존의 불편을 감수하는 성실함만으로는 얻을 수 없다.



P20210615_192907564_AA6746DB-E44D-4086-8C52-AB332E387DB7.JPG 별을 보는 소녀 (iPad 7, Adobe Fresco)


과학의 진가는 위기상황에서 더 빛이 난다. 한심하고 어이없는 팬데믹 대처를 보여준 선진국들을 다시 보게 되고, 그들보다 우리가 더 나은 것 같다는 자긍심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뼈저리게 후회해야 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과학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등한시했던 것이다. 백신이 과학의 힘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과학 이외의 여건이 갖추어졌다고 해도 우리의 과학에 대한 인식 수준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기술은 누군가 만들어놓은 것을 연마하는 것이다. 철학자 최진석은 그것을 대한민국이 그 누구보다 잘 해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잘할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다.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드는 단계로 접어들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과학과 철학이 필요한 이유라고 그는 말한다.


수학 포기자, 수포자.. 과학 포기자, 과포자라는 용어를 만들어내며 농담의 소재로 말한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당연히 포기해야 하는 과목으로 치부한다. 반면 영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수해야 하는 과목이고 평생 정복의 대상으로 여긴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이 과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 수준이다.


범위를 좁혀서 과학의 언어인 수학을 예로 들어보자. 수학보다 영어에 목숨을 걸었던 이유는 취직, 즉 돈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IT회사의 직원 연봉이 엄청나다. 4차 혁명, AI, 디지털화 등등으로 기존의 일자리는 없어지고 연봉도 오를 기미가 안 보인다. 그래서 요즘 열풍이 코딩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코딩의 기본은 수학이다. IT업계의 기본 자질은 수학적 사고 체계이다. 이제 과학이 돈이 안된다는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렇게 목숨을 걸었던 영어에 대한 장벽이 인공지능 번역으로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동시통역사 등 완전한 전문 언어분야의 진출이 아닌 이상 영어는 목숨 걸고 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과학은 어렵다. 하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이 알아야 할 수준이 따로 있다. 그 정도만 알아도 과학에 대한 새로운 면이 보인다.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상대성 이론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 정도이다.


상대성 이론은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나뉜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빛의 속도에 관한 것이다.

빛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속도가 변하지 않는다.

일반 상대성이론은 중력에 관한 것이다.

중력은 시공간을 휘며 빛도 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일반인이 상대성 이론을 여기까지만 알면 된다고 본다. 나도 이 수준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과학적 이론을 알고 이해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과학적인 태도를 몸에 익히는 것이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과학적 근거에 기초를 두고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 같은 팬데믹 시기에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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