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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바라보는 컴퓨터

더 이상 PC가 기준이 아니다

by 그림한장이야기

애플이 바라보는 컴퓨터


WWDC라는 애플의 이벤트 행사가 최근(?)에 지나갔다. 애플 제품과 소프트웨어에 관련된 개발자들을 위해 애플의 비전을 제시하는 자리였다. 새로운 하드웨어 제품과 기대했던 소프트웨어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루머도 많았지만 그런 방향과는 좀 다른 이야기로 진행되었다.



전에 “팀 쿡, 이제 디자인을 할 생각이 없나요?”란 글에서 나는 애플에 대한 적지 않은 실망을 나타냈었다. 그 실망스러운 부분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지만, 애플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디지털 라이프에 대한 시각과 그들만이 추구할 수 있는 구조적인 장점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그들이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아주 간단한 이유에서이다.


애플은 아이폰을 기준으로 놓고 컴퓨터를 아이폰의 눈높이로 낮추는 것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는 것이다.


애플의 디바이스 간 연동성은 하루 이틀 칭찬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이폰을 정점에 놓고 다른 디바이스를 아이폰에 맞추는 모양을 보여준다. 아이패드는 태생이 아이폰에서 시작되었으니 당연하다고 보면 쉽지만, ”맥킨토시”라고 불렸던 애플의 오랜 주력 상품인 맥 컴퓨터들은 완전히 이야기가 다른 것이다. 이제 맥북, 맥미니, 아이맥은 모양만 다른 아이폰이 되었다.


이번 WWDC에서 가장 핫한 루머는 M1 아이패드에 M1 맥용(컴퓨터) 프로그램이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그런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바일의 성능이 컴퓨터를 따라잡는다고 하면 컴퓨터와 같은 모습으로 통합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M1이라는 엄청난 CPU가 모바일에 이식될 때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애플이 선택한 것은 오히려 아이폰 쪽으로의 통합이었다. 모바일 시스템으로의 대동 단결이다.


애플은 맥 OS에서 모바일 앱들의 구동을 허용했지만 모바일 OS에서 맥용 앱들을 허용하고 있지 않다. 모바일 시스템이 이미 기본이 되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디지털 라이프에서 PC라고 불리는 컴퓨터들의 특수한 지위는 사라졌다. 컴퓨터 학원을 다녔던 사람으로서 ”컴퓨터를 한다.”라는 것이 매우 전문적이고 특별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직도 컴퓨터는 어렵다. 무엇에 비해? 모바일 시스템에 비해서 말이다.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을 더 쉬운 모바일 시스템에서 가능한데 왜? 컴퓨터의 지위를 유지해야 할까? 일반적인 평범한 디지털 라이프에서 컴퓨터가 설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애플이 M1 프로세서와 함께 준비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성능위주의 특별함 보다는, 성능에 대한 고민 없이 원하는 디지털 라이프를 즐기는 편하고 행복한 캐주얼한 삶의 모습이 아닐까?


애플의 고객 중 대부분은 일반 캐주얼한 유저들 일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파이널 컷 프로”가 아이패드에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많은 모바일 앱이 모든 애플 디바이스에서 실행되는 것이다.


위젯의 자유로운 배치가 안되던 아이패드 OS의 모습은 거의 아이폰의 그것과 똑같아졌고, 맥 OS는 더욱더 모바일 시스템과 한 몸이 되었다. 애플의 맥 컴퓨터들은 이제 크고 좋은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가 달린 아이폰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런 모바일 시스템으로의 통합은 애플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시스템의 OS와 디바이스, 그리고 핵심 반도체인 프로세서까지 만드는 곳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삼성이 랩탑 컴퓨터를 발표하면서 갤럭시 스마트폰과의 연동성을 자랑하던 장면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삼성은 각기 다른 OS를 사용하면서 디바이스 간 연동성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애플은 그동안 맥 컴퓨터의 주된 사용층이 특별한 맥용 프로그램이 필요한 전문가들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일반 사용자들의 디지털 라이프를 목표로 한다. 엄청난 사용자 층을 확보한 아이폰을 무기 삼아 맥 컴퓨터를 또 다른 아이폰으로 어필하기 시작했다. 색깔도 알록달록, 성능은 어마어마하게 그리고 가성비라는 어울리지 않는 가격정책까지.


디지털 디바이스를 사용하는 모든 사용자들을 무섭게 공략하고 있는 애플의 아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이 아성에 도전할 회사가 반드시 나올 텐데.. 과연 어떤 회사 일 지도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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