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써먹고 다시 걸어가면 돼.
참치알밥
어묵국물
잘 걸어가다 넘어졌다.
눈이 오고 나서 다소 심하게 티를 내고 싶어 하는 겨울 때문이었을까,
어제 취침에 들기 전부터 주황색 불을 켜던 컨디션은 오늘 아침 첫 스케줄을 마친 후
그 뒤 스케줄은 소화하기가 조금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을 내리면서 빨간색을 보였다.
‘그 뒤 스케줄’ 목록엔 숲의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일정도 한 자리를 차지한다.
숲에게 쉼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한 후 집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했다.
다행히 빨간색을 보이던 컨디션은 아이보리색 알약 한알과
따뜻한 이불속에서의 취침으로 다시 초록색을 보여줬다.
낯선 경험은 아니다.
온도차에 민감한 내 몸은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을 때가 되면
새 옷을 입는 그 나무들에게 샘이 나는지 이렇게 한 번씩 말썽을 부린다.
복싱 만화에서 다운을 당한 주인공에게 코치가 했던 말이다.
경기 초반이었고 그다지 큰 충격의 다운은 아니었다.
바로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의 가벼운 다운이었음에도
코치는 카운트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인 8~9까지 기다렸다가 일어나라고 말한다.
오늘 내 하루에도 가벼운 다운이 있었다.
바로 일어나서 경기를 치르려고 하지 않았고 충분히 주어진 카운트를 잘 써먹었다.
잘 써먹고 8~9에서 천천히 일어나라고 얘기해 준 코치, 숲이었다.
걸음마 뗀 지 몇십 년이 지난 성인이라고 해서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무사고 베테랑 운전자라고 해서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매일같이 걸어 다니던 길이라도 넘어질 수 있고
매일같이 운전하며 오가던 도로에서도 사고가 날 수 있다.
일상을 걸어가다 보면 오늘처럼 다운이 찾아올 때가 있다.
혼자 오지는 않고 얼마동안의 ‘카운트’와 손을 잡고 같이 온다.
당황하지 말고 손잡고 같이 온 카운트가 주는 시간을 잘 써먹고
8~9 즈음이 되면 일어나 다시 걸어가면 된다.
나 어른이라고 혼자 먹으면 된다고 씩씩하게 얘기해 줘서 고마워.
”그러게 아플 줄 알았다“라고 하지 않고
“그동안 고생 많았어”라고 말해줘서 고마워.
카운트 충분히 잘 써먹고 일어났으니 다시 천천히 걸어가 볼게.
고마워요.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