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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에그리는기도 Apr 02. 2023

소원을 이루는 연못

한 번쯤 꿈꿔보는 가드닝 로망





우리 정원에서 최고 난이도를 자랑하는 작은 연못이야기 시작해보려 한다.  우리 5명 가족이 함께 만들어낸 이 작은 연못의 메이킹 스토리는 몇 날 며칠 밤새도록 이야기해도 끝이 없을 이야기지만 하나하나 기억나는 순서대로 써나가보려 한다.





마당에 매년 빛이 잘 안 들어 유난히 잔디가 못 자라는 구역이 있었다. 우리 집의 데드스페이스인 이 공간이 항상 우리에겐 숙제였고 2년 전에 들인 정원돔으로도 좀처럼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또 업소주방용품점에서 수많은 사이즈의 빨간 대야를 보게 되면서 연못생각이 번뜩이며 떠올랐고 우리들의 작은 연못 이야기가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이쯤 되니 업소주방용품점이 우리에겐 아이디어뱅크인 셈이다. 눈으로 직접 대보고 시뮬레이션을 해보기 위해 일단 사이즈 별로 대야를 샀고 하루종일 빨간 대야들을 이리 놨다 저리 놨다 위치를 잡아가며 우리만의 연못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설렘 가득했다. 그다음 여정이 삽질의 블랙홀일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땅을 파고 빨간 대야들을 묻어 위치를 잡고 나니 이제 본격적으로 주위를 꾸밀 돌들이 필요했다. 예전 축대 공사하며 나왔던 엄청난 돌들을 뒷마당 저 멀리 포크레인으로 버려둔 게 기억나 뒷마당 저편에 가보니 그대로 각자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다. 예전에 엄마가 집터에서 나온 돌들을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결국엔 엄마 말처럼 바위들을 우리 집안으로 다시 데려오기로 했다. 그래 까짓 껏 한번 해보자! 모조리 다 옮기리! 우리 집 요술 아저씨와 의지를 불태우며 우리에게 있는 수레와 빠루 그리고 버릴 이불들을 챙겨 나왔다. 아저씨가 빠루로 바위를 힘겹게 들면 밑에 작은 돌로 받쳐가며 밀고 굴리고 끌고 생쇼를 하며 바위를 굴려 나가기 시작했다. 둘이서 이 엄청난 바위들을 옮긴다는 건 모험이라기보다 이거야 말로 모자라다고 해야 하나? 우리 초록이 수레는 아작이 나버렸고 정말이지 다리부터 발끝까지 몇 번이나 깔려 골로 갈 뻔했다. 이걸 왜 시작했냐는 원초적인 질문을 던져가며 서로 웃다 울다 눈물 콧물 쏟아내며 결국 가져왔다. 그 큰 바위들을 말이다. 사실 눈으로 보면 이거 뭐 요리조리하면 금방 옮기는 거 아냐?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꿈적도 안 하는 바위덩어리를 말로 설명할 길이 딱히 없어서 아쉽다. 엄마가 이걸 보면 엄청 좋아하시며 엄마 특유의 감탄사를 남발하셨을 텐데... 정신 나간 소리 같지만 그때는 실제로 정신이 나가서 그런 건지 엄마의 ‘어머! 어머!’ 하며 놀라 웃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었다.


훌륭한 우리집 꼬마 일꾼들의 쉬는 시간





말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이 일들을 증거영상으로 남겨놓을 걸 후회가 되지만 어쩌면 영상이나 사진을 안 찍어서 안 다치고 안전하게 옮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뭐 그럴 시간도 없었을 게 분명하지만...

그렇게 연못 주위로 큼직한 바위들이 자리를 잡아줬고 이제 대망의 연못 바닥 방수의 블랙홀로 빠져들게 된다. 사실 처음에 이 연못은 가볍게 해 보자 했던 터라 방수를 대단하게 생각했던 게 아니었다.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바로 걷어버리자 하는 마음이 컸기에 철물점에서 추천해 준 두꺼운 방수 비닐로 잡힌 틀 위로 살포지 자리 잡아 두고 작은 돌들 하나하나 마당 주변에서 주어와 꾸미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방수 테스트를 시작하는데 이상하다. 물을 분명 채워 두었는데 다음날 물이 준다. 다시 주변에 꾸민 돌들을 싹 걷어내고 방수포를 확인하고 이번엔 겹을 더 쌓아 틀을 잘 잡아 다시 물을 채웠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가니 다시 물이 줄어드네.. 이 짓을 몇 번 반복했는지는 생각하기도 싫다. 반복되는 이 고난과 역경의 과정을 거쳐 결국 우리는 아스팔트 방수시트를 만나게 된다. 연못 길이에 맞게 자른 뒤 폭만큼 잘 겹쳐서 토치로 열을 가하여 주니까 그대로 붙어버린다. ‘제발… 새지 마라. 새지 마라. 새지 마라’ 마음속으로 이 주문을 얼마나 외쳐댔는지 모른다. 우리의 간절한 주문이 통했나?







성공적 이였다. 며칠이 지나도 물이 줄지 않았고 그제야 연못 제일 깊은 부분에 수중모터를 심고 긴 호스로 연결하고 물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도록 돌로 각도를 조절하고 비닐을 이용해 물 떨어지는 소리까지 미세하게 조절했다. 시냇물 흐르듯이 졸졸졸 잘도 흘러갔다. 소리가 어찌나 좋은 지 눈을 감으면 잠시 다른 곳에 와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한동안은 이 물소리에 매료되어 밤마다 앞에 걸터앉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땐 우리 가족에겐 이 물소리가 우리들 마음을 토닥여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하나 정리가 되어가고 마음속에 그려 두었던 꽃과 식물을 식재하였다. 연못에 이끼도 한 땀 한 땀 수놓았다. 사이사이 바크로 덮어 정리해 주고 바위틈은 마사토로 채웠다. 빈티지 샵에서 어렵게 구해온 조명도 드디어 설치하고 또 다른 빈티지 샵에서 발견한 마음에 쏙 드는 캐나다 구스 한 마리도 꽃사이로 빼꼼히 두었다. 마지막으로 물고기 요정들도 연못에 풀어두었는데 연못관리를 위해서는 물고기 도움이 꼭 필요하다. 자칫하다 연못이 모기 부스터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 5명 모두가 함께 정성 들여 만들어간 연못이 드디어 눈앞에 펼쳐졌다.


연못에 사는 우리 집 캐나다 구스
한 땀 한 땀 수놓은 이끼들
연못 청소를 위해 잠시 풀어놓은 애플스네일 (물달팽이)


우리 가족의 염원을 담아
하나하나 정성을 쏟은 이 연못을
우리는 <소원연못>이라 부르기로 했다.





   아쉽지만 소원연못에서는 동전은 던질  없습니다.



<정원에 그리는 기도>는 2021년 5월 17일 뇌출혈로 쓰러져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타샤를 꿈꾸던 엄마를 위해 정원에 간절한 마음을 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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