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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대학생의 유럽 여행 109일 차

리스본에서의 알찬 하루

by 빈카 BeanCa

오늘은 리스본을 즐기는 하루이다. 리스본의 관광지는 대기줄이 길다고 해서 오픈런을 위해 일찍 준비를 마쳤다. 브런치 카페에서 야무진 아침을 먹으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늦어져 근처 카페에서 샌드위치 하나만 사 먹었다. 닭고기 샌드위치였는데, 닭고기가 많이 들어있어서 맛있었다. 배부르게 먹고 역으로 가서 리스보아 카드부터 구매했다. 리스본의 대중교통과 일부 관광지 입장이 가능한 카드라서 미리 구매를 했다. 그러고는 버스를 타고 첫 목적지인 제로니무스 수도원으로 향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오픈런을 해야 된다고 해서 빨리 갔는데, 예상과 달리 대기줄이 하나도 없어 금방 들어갈 수 있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벨렘 지구에 있는 수도원으로, 마누엘 왕의 이름을 따라 만든 Manueline Style의 수도원이다. 이는 포르투갈 고딕 양식인데, 항해와 탐험으로 유명하고 바다 근처에 있는 포르투갈의 특성을 반영해 고딕 양식에 바다에서 영감을 얻은 화려한 장식이 더해졌다고 한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안에 중정이 있고, 그 주변을 사각형의 건물이 둘러싼 구조라서 예뻤다. 수도원이라서 종교적인 공간이 많을 줄 알았는데, 수도원 건물 밖에 따로 있는 성당 이외에는 딱히 종교적인 색채가 느껴지지 않아 신기했다.

그렇게 수도원 구경을 마치고 옆 성당으로 넘어갔는데, 성당에 포르투갈의 대표 시인의 무덤과 대표 탐험가의 무덤이 있어 신기했다. 성당은 일반적인 성당이었지만, 인상 깊었던 것은 한 창문이었다. 성당 한쪽 벽에 동그란 창문이 있었는데, 그 빛으로 들어오는 빛이 성당 전체를 환하게 만들고, 눈이 부셔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밝아서 놀랐고 신기했다.

성당 구경까지 마치고 에그타르트의 원조라는 집으로 갔다. 포르투 에그타르트를 찾아볼 때도 이 집보다 못하다는 말이 많아 얼마나 맛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다행히 여기도 대기가 없어 2개를 사 테이블에서 먹어봤다. 한 입 먹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었다. 언니랑 눈이 마주치며 진실의 미소가 새어 나왔다. 맛을 표현하자면, 이게 에그타르트구나 싶은 맛이었다. 계란 맛이 다른 집에 비해 강한데 부담스럽거나 과하지 않고, 부드럽고 달달하고 고사한 밸런스가 완벽했다. 그리고 다른 집의 타르트는 패스츄리 느낌으로 파사삭한 식감이라면, 여기는 바사삭한 식감으로 결이 조금 달랐다. 가장 맛있는 에그타르트였다.

그러고는 벨렘 탑으로 향했는데, 줄이 긴데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포기하고 아주다 궁전으로 향했다. 포르투갈 왕실의 거처로도 사용된 신고전주의와 바로크 스타일의 궁전이라고 한다. 궁전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리스보아 카드로 갈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리뷰도 좋고 새로워서 가보기로 결정했다. 아주다 언덕 위에 있어 버스를 타고 갔는데, 들어가자마자 화려함이 눈을 사로잡았다. 이런 화려함과 사치를 누리기 위해 과거 사람들이 왕이 되고 싶었던 건가 싶을 정도로 화려함의 끝이었다. 각장의 장식과 컨셉이 다 다른데 전체적으로 통일된 느낌이 있어 보는 재미가 있었다. 정말 사치스럽다고 느낀 부분은 방의 이름이었는데, 왕과 왕비의 침실 이외에 몇몇 방들은 색을 컨셉으로 만든 방이었다. pink room, red room, blue room, green room 등 색깔별로 방을 만들다니 사치의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규모도 크고 화려하고 다채롭게 꾸며진 방들에서 디테일을 하나씩 보는 게 재밌었다.

그렇게 보고 나서는 시간이 애매해서 어제 간 빵집에 와인 크로와상을 사러 갔다. 언덕에 있어 버스를 타고 갔는데, 버스가 좁은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롤러코스터 느낌으로 스릴 가득했다. 품절일까 봐 걱정했는데 4개 정도 남아있어 하나를 사서 예약해 둔 식당으로 갔다. 포르투갈 가정식을 코스로 파는 집인데, 오늘의 메뉴가 있어 그걸로 주문했다. 나는 갈릭 수프에 허니 머스터드 돼지고기 그리고 레드 와인을 주문했고, 언니는 양배추수프에 대구 튀김, 그리고 화이트 와인을 주문했다. 수프부터 나왔는데, 갈릭 수프는 어니언 수프 맛도 나면서 안에 빵이랑 계란이 들어있어 맛있었고 양배추 수프도 뜨끈하게 맛있었다. 빠ᆞ강이랑 초리조도 같이 나왔는데, 빵이랑 같이 주신 올리브오일을 뿌려 먹으니 풍미 가득하게 맛있었다. 그렇게 기대함을 안고 메인 요리가 나왔는데, 앞에서 기대를 올려놔서인지 살짝 실망스러웠다. 고기가 얇고 대구는 가시가 많아 아쉬웠지만, 분위기가 좋고 와인이랑 어울려 맛있게 먹었다. 무엇보다 주인분이 친절하셔서 정말 포르투갈의 가정집에 초대받아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디저트로 케이크도 나왔는데, 에스프레소와 함께 달다구리로 마무리하니 기분이 좋았다. 여유롭고 따수운 식사였다.

배부르게 먹고 잠시 정비하러 호텔에 가서 30분 정도 쉬다가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상 조르주 성으로 향했다. 일몰을 보러 갔는데, 포르투갈의 시내가 쭉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였다. 일몰도 보고 성도 구경했는데, 우리가 호다닥 봐서인지 성보다는 요새에 가까워 보였다. 그래도 돌 사이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아름다워서 행복했다. 여기 성에는 특이하게 공작새가 많았는데, 공작새가 우는 소리를 처음 들었는데 성량이 크고 우렁차고 앙칼진 고양이 울음소리 같아서 신기했다. 공작새가 나는 것도 처음 보고 우는 것도 처음 들어 신기했다.

마지막 일정까지 마치고 마트에 가서 오렌지 주스와 물, 그리고 우유를 사서 귀가했다. 저녁은 라면 1개와 과일, 와인 크로와상으로 간단하게 먹고 내일부터 시작되는 파리의 계획을 세웠다. 이제 한국에서 해야 될 일들을 조금 하고 잠에 들려고 한다.

리스본에 짧게 있어서 그런지, 포르투만큼 기대가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포르투에서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내서인지 포르투만큼의 감동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리스본만의 복잡하면서 여유로운 분위기와 화려함과 깔끔함이 공존하는 관광지들을 봐서 행복했다. 벌써 2개의 도시가 끝났다는 게 아쉽지만, 내일부터 시작되는 파리에서의 하루하루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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