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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대학생의 유럽 여행 114일 차

Northern Lights Dancing_하늘을 가득 채운 오로라

by 빈카 BeanCa

극지방 트롬쇠에서 보내는 첫날이다. 오늘 일정은 아주 여유로워서 8시 반쯤 일어나 밍기적거리다가 9시에 준비를 시작했다. 호다닥 준비를 하고 요거트와 방울토마토를 먹고 집을 나섰다.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고,

오늘의 첫 일정은 북극 대성당이었다. 지구 최북단 성당으로, 감각적이고 특이한 외관으로 유명한 성당이다. 확실히 성당 같지 않고 전시관이나 작품 같은 감각적인 외관이었다. 가서 사진을 찍고 앞쪽으로 걸어갔더니 장례식 중이라 관광객은 입장 불가하다는 안내가 있었다. 아주 조금은 아쉬웠지만 고인을 잘 보내드리는 게 중요하기에 그냥 돌아갔다. 트롬쇠 메인 시내에서 다리를 건너 건너편에서 보는 시내는 아름다웠다. 동화에 나올 것 같은 아기자기한 풍경과 눈이었다. 반대쪽으로는 설산이 펼쳐졌는데, 북유럽 정말 좋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다음 코스는 극지방 박물관이다. 트롬쇠까지 와서 박물관?이라는 생각이 어제 들었는데, 찾아보니 리뷰가 좋아서 우리도 가보기로 했다. 가서 티켓을 예매하니 정이 책자를 주셨다. 책자라고 하기 살짝 애매한 A4용지 뭉치였다. 이렇게 아날로그 식으로 안내해 주는 박물관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한국어 안네는 없어 어쩌다 보니 영어 읽기 평가가 되었다. 극지방 박물관은 주로 극지방 사람들의 삶에 관한 박물관이었다. 첫 관은 생활 모습을 그대로 나타낸 관이었는데,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놀랐다. 사람도 동물도 진짜 같아서 그때의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극지방의 동물에 관한 설명이 많았고, 각 동물이 어떻게 사냥되었는지 사냥 방식의 변화, 개체수의 변화 그리고 규제의 변화까지 다양하게 설명했다. 유명한 탐험가들에 관한 얘기도 같이 나와있었는데, 예전에 북극곰의 왕으로 불린 사냥꾼과 최초의 여성 사냥꾼까지 극지방을 빛낸 위인들 느낌으로 인물 소개가 꽤 자세하게 있어서 재밌었다. 박물관이 작으면서도 커서 1시간 정도 구경하고 기념품 가게도 갔다가 나왔다.

다음 일정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바이다. 한국에서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유명해진 바인데,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지 오픈 시간인 12시쯤 갔는데도 줄이 있었다. 한 10분 정도 기다리니 우리 차례가 되어 가장 유명한 beef and rain deer 핫도그와 코코아를 주문했다. 핫도그 위에 다양한 토핑이 올라가 기대가 되었고, 코코아도 위에 마시멜로랑 휘핑크림을 가득 얹어주셔 기대가 되었다. 핫도그부터 한 입 먹어보니 재료들이 조화롭고 각각의 맛이 느껴지면서 조화로워서 정말 맛있었다. 코코아도 예술의 맛이었는데, 위에 올라간 휘핑크림은 부드럽고, 마시멜로가 달달한데 초코 맛이 진해서 너무 달지 않은 완벽한 코코아였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바라는 소문을 듣고 맛에 대한 기대는 없었는데, 이렇게 맛있어서 행복했다.

발걸음을 옮겨 트롬쇠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은 3층 규모로 컸는데, 외관도 감각적이었다. 트롬쇠의 건물들을 보며 다음 북유럽 여행지들에 관한 기대가 커져만 갔다. 안에도 들어가 봤는데, 자리가 많고 다양해서 좋았다. 이런 도서관이 집 주변에 있으면 매일 오고 싶을 정도로 아늑한 자리도, 공부하기 좋은 자리도 많았다. 우리도 잠깐 앉아서 전자책을 읽었다. 잠깐 앉아있다가 트롬쇠의 짧은 낮시간을 보내기 아쉬워 밖으로 향했다. 트롬쇠의 해는 10시 반쯤 떠서 1시 반쯤 지는데. 나중에 가이드님께 들은 바로는 하루하루 낮시간이 8분씩 늘어나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는다고 한다. 해가 뜨지 않거나 지지 않는 극단적인 하늘 아래의 생활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 기념품 가게도 조금 구경하다가 트롬쇠 성당도 보고 시내에 있는 큰 마트인 키위에도 갔다. 어제 못 산 생연어도 사고, 맛있었던 초콜릿우유와 과자들도 사서 양손 무겁게 귀가했다.

집으로 돌아와 생연어오 회부터 먹어봤다. 회는 처음 떠보는데, 생각보다 잘 뜬 것 같아 뿌듯했다. 간장과 고추냉이는 없었지만, 에어비앤비에 있던 소금+로즈마리 조합으로 먹고 느끼할 때쯤 볶음고추장과 먹으니 찰떡이었다. 4 덩이를 사서 2 덩이는 회로 먹고 남은 2 덩이는 버터 조금에 굽기 시작했다. 연어도 굽고 사골라면도 하나 끓이고 햇반도 돌리고 진수성찬이었다. 오징어채에 김까지 완벽한 한상이었다. 언니랑 행복하게 먹고 잠깐 쉬다가 준비를 하고 투어 장소로 향했다.

이동한 지 25분쯤 되었을 때 화면 아래쪽에 초록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원래 20분 정도 더 가서 캠프파이어를 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간단한 포토슛을 위해 잠깐 멈췄다 간다고 하셨다. 그전까지는 졸려서 졸고 있었는데, 눈이 번쩍 떠지면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첫 오로라라니 기대도 많이 되고 긴장도 되었다. 눈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하셔서 큰 기대는 안 하고 내렸는데, 내리자마자 오로라가 지평선을 타고 쭉 이어져 있는 게 보였다. 내 눈으로 오로라를 담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참이 있었다. 가이드님이 계속 이건 에피타이저리고 하셔서 본 캠프 장소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졌다.

그렇게 20분 정도 더 달려 본 장소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가운데는 캠프파이어를, 캠프파이어를 둘러싸고는 의자를 쭉 놔주셨다. 내리자마자 지평선 가까이 쭉 이어진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 오로라는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였다. 지평선 근처에 하나, 지면에서 대기로 쭉 이어지는 오로라 그리고 지면에서 나와 지평선 근처로 뻗는 오로라까지 모양과 형태가 다양했다. 그렇게 사진도 신나게 찍고 있었더니 가이드님이 저녁을 먹으라고 불러주셨다. 저녁은 핫도그였는데, 치킨, 비건 그리고 치즈비프 중에 하나씩 꼬치로 찍어 모닥불에 구워 먹는 방식이었다. 빵도 있었는데 거의 소세지만 먹었다. 나는 치킨이랑 치즈비프를 먹었는데, 바로 구워서인지 둘 다 맛있었다. 그러고는 핫초코도 마시고 사진도 찍고 기다리고 있었더니 오로라가 점점 많아지고 세지기 시작했다. 절정에 다다랐을 때, 머리 위에 있는 모든 하늘이 오로라로 가득해 어디를 봐도 오로라가 있었다. 그러다 한 3분이 지나니 한쪽에서 오로라가 미친 듯이 춤추기 시작했다. 이게 댄싱 오로라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화려하고 아름답고 경이롭고 황홀했다. 심지어 춤추는 오로라의 윗부분은 초록색, 아래는 붉은색이라 더 아름답고 꿈같았다. 오로라는 모든 조건이 맞아야 볼 수 있고, 댄싱 오로라는 오로라 중에서도 드물다고 그래서 오로라를 카메라가 아닌 두 눈으로 조금이라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온 트롬쇠라서 기적처럼 행복했다. 오로라가 살아있는 것처럼 이리저리 움직여 환상적이었다. 처음에는 담으려다가 눈으로 담는 게 더 행복할 것 같아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 보니 오로라가 잠잠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조금씩 움직이고 생겼다 없어지고를 반복했다. 없어져도 별들이 하늘을 가득 채워 행복 Max 상태였다. 가이드님께서 화성과 목성도 알려주셔서 행성도 처음으로 보고, 과학시간에 배운 별자리들도 두 눈으로 생생하게 보여 신기했다. 모닥불 주변에 모여 앉아 마시멜로도 구워 먹고, 사람들이랑 얘기도 하고 별이랑 오로라도 보면서 여유롭고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원래 오로라를 보지 못하면 자정 넘어서까지 진행되는데, 우리는 너무나 선명한 최고의 오로라를 봐서 9시 반쯤 다시 트롬쇠로 향했다. 조금은 아쉬웠지만, 오로라를 봤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 그렇게 트롬쇠 시내로 돌아와 집에 도착했다. 이 여운을 살리기 위해 맥주를 한 잔씩 마시고 싶었지만, 여기는 술을 8시까지만 판매한다고 해서 사 오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내일 하루를 그냥 보내기 아쉬워 투어를 조금 찾아보고 글도 쓰고 쉬다가 이제 씻고 자려고 한다. 인생 첫 오로라, 인생에서 가장 많은 별들과 함께한 황홀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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