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밤
부다페스트 이틀차이자 귀국 전날이다. 시내에서 더 하고 싶은 게 많이 없어 근교 도시인 센텐드레에 가보기로 했다. 간단하게 요거트를 먹고 짐을 챙겨 다음 호텔에 짐을 맡기러 갔다. 시내 쪽이 관광하기는 편하지만 하루는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건너편에서 자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하루하루 지내기로 했다. 지닌 호텔이 만족스럽기도 했고, 이동하는 게 귀찮아 사실 이때까지는 후회도 조금 했다. 어찌어찌 짐을 옮겨놓고 바로 센텐드레로 출발했다. 센텐드레는 예술가들의 마을로 유명하다고 해서 기대가 되었다. 기차를 타고 40분 정도 가야 했는데. 가는 길에 초코 간식을 하나 먹으며 잠깐 멍 때리다 보니 어느새 마을에 도착했다. 이른 점심시간이라 밥부터 먹기로 했다. 헝가리 전통음식인 랑고스를 먹으려고 했는데, 관광 비수기라 그런지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골라놓은 피자집으로 갔다. 리뷰를 봤을 때 비주얼부터 맛.없.없이라 기대를 많이 했다. 우리는 바질과 모차렐라, 프로슈토 등이 올라간 대표 메뉴 한 판과 맥주, 그리고 레몬에이드를 주문했다. 가장 먼저 나온 레몬에이드는 달지 않고 과일이 듬뿍 들어간 상큼한 단맛이었다. 가이드님께서 헝가리의 레몬에이드는 진짜 레몬을 짜서 만든다고 추천해 주셔서 마셔봤는데, 진짜 레몬과 오렌지가 듬뿍 들어가고 시럽의 단맛이 없고 맛있었다. 맥주는 역시 시원하고 맛있었다. 유럽 생활 시작부터 반주를 시작했는데, 이제 습관이 되어서 한국에서도 종종 마실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온 피자는 따끈한 화덕 피자 그 자체였다. 얇고 쫄깃한 도우와 듬뿍 올라간 치즈, 부분 있는 프로슈토까지 풍미 가득하고 맛있었다.
든든하게 밥을 먹고 마을 구경을 시작했다. 이 마을은 예술가들의 마을이라 기념품도 거의 직접 만드신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가게들에 들어가면 다들 뭐를 만들고 계셨다. 그리고 가게마다 제품이 다 달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간 가게 중에 가장 신기했던 가게는 이름부터 blue가 들어가고. 외관도 파란 물건으로 가득했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인 분께서 세상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이런 저런 역사를 설명해 주셨다. 가게의 역사와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천의 역사 등을 알려주셔서 마치 박물관에 온 것 같았다. 가게마다 주인 분들의 애정이 담겨있는 것 같아 나도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구경을 하다가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센텐드레는 다뉴브 강 주변의 지역이라 강이 보이는 카페로 향했다. 강이 보이는 창가 옆에 앉아 카푸치노와 차, 그리고 라즈베리 티라미수를 주문했다. 라즈베리 티라미수는 직접 만드시는 건지 스쿱 모양으로 나왔는데 달달하고 촉촉하면서 상큼해서 맛있었고, 커피랑 차도 맛있게 마셨다. 그렇게 잠깐 쉬다가 기차를 타고 부다페스트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체크인을 했는데, 뷰를 보고 예약한 호텔인데 뷰가 별로라서 리셉션으로 가 추가금을 내고 룸 업그레이드를 했다. 업그레이드를 하고 분석해 보니 전에 우리한테 이 호텔에서 뷰가 제일 안 좋은 방을 줬었어서 기분이 잠깐 좋지 않았다. 우리가 일찍 체크인해서 다른 방도 남아있었고, 우리 다음 체크인하신 들은 같은 룸타입인데도 더 고층에 좋은 방을 배정받으셔서 뭐지? 싶었지만 마지막 날이라 그냥 룸 업그레이드를 선택했다. 결과는 대대대만족이다. 들어가자마자 눈앞에 펼쳐지는 시원한 통창과 크게 보이는 국회의사당, 그리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세체니다리까지 계속 안에 있고 싶어지는 뷰였다. 실제로 이후에 뉴욕 카페도 가려고 했는데 맛있는 거 사 와서 안에서 놀기로 계획을 바꿨다. 안에서 경치를 즐기다가 노을 시간쯤 나와 강가로 갔다. 강에서 마지막 밤의 노을과 야경을 보고 엄마 심부름을 하러 로스만에 갔다가 장을 거하게 보러 마트로 갔다. 후회 없이 다 사자라는 생각 아래 오렌지와 토마토부터 담고, 많이 봤지만 먹어보지 않은 시금치 빵도 담고 요거트 2개와 치즈 2종류, 프로슈토, 토카이 와인, 파프리카 과자 그리고 맥주까지 담아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서 야경을 바라보며 마지막 밤을 즐겼다.
마지막 밤이니 여행 결산 느낌으로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여행지나 또 오고 싶은 여행지 등 다양한 질문 중에 둘이서 또 오고 싶은 여행지라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둘 다 뮌헨에 오래 지냈는데 막상 둘이 간 적은 없어서 뮌헨이라고 대답했다. 언니는 포르투라고 답하길래 포르투가 좋아서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내가 행복해하는데 좋아서 다시 가고 싶었다고 한다. 어릴 때 본 여행 유튜브 이후로 포르투가 실제 버킷리스트여서 갔을 때도 기분이 좋고 벅찼는데 그걸 보고 다시 같이 가고 싶다고 한 게 감동이었다. 언니가 평소에 무뚝뚝한 편이라 더 감동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놀다가 둘이 심심해져서 릴스도 찍어보고 한참을 웃다가 하루를 마무리했다. 여운이 오래 남을 것 같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