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D-1
오늘은 열아홉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이.. 생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빼도박도 못하는 스무살이라는게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생일에 혼자 있을까봐 걱정해준 친구가 스위스에서 와줬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데 어느새 이렇게 스무살 생일을 맞이한다는게 놀라울 따름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다보니 날짜보다는 여행 14일차라는게 익숙해졌고, 친구가 오지 않았다면 생일도 무심하게 넘어갔을 정도로 날짜 개념이 없는 요즘인데, 챙겨주는 친구가 있어서 정말 고마웠다. 사실 한국에 있었으면 세상 요란하게 사람들도 만나고 축하도 했을 것 같아서 지금 이 조용하지만 따뜻한 생일이 낯설긴 하다. 원래 남의 생일도 세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정작 내 생일에 이렇게 무심한게 낯설다.
아침에 일어나서 친구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사실 준비라고 해도 청소.. 정도...? 청소도 엊그제 다른 친구가 온다고 거의 해놓고, 어젯밤에 샤워하면서 화장실 청소도 해놔서 정말 금방 끝났다. 다음으로는 시지프 신화를 마저 읽으려고 했으나.. 많이 이해하지는 못하고 두 장을 다시 읽는데 성공했다. 쓰레기도 버리고 친구를 만나러 역으로 향했다. 역에 가서 한 10분 기다리니 친구가 나왔다. 한국에서 자주 보던 친구가 여기 있다는게 반갑기도 어색하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친구도 마찬가지였는지 점심 먹으러 가는내내 서로 신기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친구가 독일 맥주를 마셔보고 싶다고 해서 중앙역 근처에 있던 유명한 양조장인 아우구스티너 켈러로 향했다. 뮌헨 지역의 대표 맥주인 바이스비어 2잔, 소세지 그리고 슈바인학센을 주문했다. 먼저 나온 바이스비어(밀맥주)는 시원하고 깔끔했다. 보리로 만든 맥주에 비해 가벼운 맛이랄까? 전에 안덱스 수도원에서 마신 맥주가 조금 더 맛있었지만 여기 밀맥주도 맛있었다. 나보다 미식가인 친구의 말에 따르면 확실히 밀의 향이 많이 느껴진다고 하는데, 그저 대식가인 나는.. 가벼워서 좋았다. 뒤이어 나온 소세지와 슈바인학센! 여기서 브랏부어스트(구워먹는 소세지)는 처음이었는데 바이스부어스트(쪄서 먹는 하얀 소세지)보다 덜 신기했지만 확실히 맛있었다. 고기의 맛이 더 잘 느껴지고 탱글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식감이 좋았다. 밑에 나온 양배추 볶음은 짜서 맥주와는 잘 어울렸지만, 많이 먹지는 못했다. 슈바인학센!! 독일의 대표 음식인데 도착 2주만에 처음 먹어본다. 족발을 튀긴 느낌인데, 족발의 끝에 엄청 바삭한 층이 있는 느낌이다. 부드러운 족발과 바삭한 끝부분이 조화로웠고, 족발을 튀긴거라서 느끼하긴 했지만 끝에 바삭한 부분이 오히려 느끼함을 없애주는 느낌이라서 맛있었다. 옆에 감자같이 생긴 사이드는 대왕 감자 옹심이같은 맛과 식감이었다. 고기와 잘 어울려서 같이 먹어줬다.
야무지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 캐리어를 두고 가려고 들어왔는데, 오자마자 집이 따뜻해서 소파에 널부러져 한 40분을 쉬었다. 정말 나가야될 시간이 다가와서 비척비척 님펜부르크 궁전으로 향했다. 궁전까지는 50분 정도가 걸렸다. 친구의 교통권을 먼저 사서 이동을 시작했다. Uban 다음에 버스로 갈아탔는데, 버스가 정말 따뜻해서 둘 다 졸았다. 다행히 궁전에서 내려서 슬 걸으면서 감상을 시작했다. 우리의 감상은 ‘화려함과 소박함이 공존하는 궁전과 마치 오리들의 궁전인 것처럼 많았던 오리 떼’였다. 압도되는 크기와 깔끔하고 화려한 외벽이 조화를 이뤄서 산책하면서 보기 좋았다. 근데 오리가 정말 많았다. 검은 오리부터 갈색오리, 청둥오리까지 종류도 다양했는데 오리들이 물에만 있는게 아니라 물 밖 잔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에도 많았다. 크기도 거의 거위나 백조만큼 커서 날 때는 ‘부딪히면 뼈가 뿌러지겠다’싶은 파워와 크기였다.
오리 구경 겸 궁전 구경을 마치고 동네 카페로 향했다. 후보 2개 중에 케이크집으로 간 것이었는데, 분위기가 좋았다. 앤틱한 유럽의 감성이 물씬 풍기고, 환상 속의 소도시 카페 감성이라서 친구도 좋아해줬다. 커피 2잔과 케이크, 빵을 시켜서 먹고 떠들다가 슬 집으로 향했다.
집에 와서는 친구가 과제 할 동안 글을 쓰고 있었다. 이제 같이 요리를 해서 저녁을 먹으려고 한다. 스윗한 친구가 잡채를 만들어와서 계란말이도 만들고, 소세지도 굽고 미역국도 끓여서 생일상을 완성했다. 거기에 수도원에서 사온 맥주까지 생일주로 곁들였다. 해외에서 맞이하는 첫 생일인데, 생일상이 너무 풍족해서 행복하게 먹었다. 나는 원래 생일에 진심이라서 여행도 2주만 늦춰서 생일을 한국에서 사람들이랑 보내고 올까도 싶었지만 여기 와서 보내는 것도 낭만 가득했다. 철 없던(물론 아직도 없지만...) 중학교 시절부터 오래 만난 친구랑 하루를 보내니 더 따뜻한 것 같다. 이제 정리를 하고 씻고 2차전을 열려고 한다.
<오늘의 지출>
카페_14.6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