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 in Italy, Florence. 쇼핑과 교양 쌓기의 하루
오늘 아침은 든든하게 조식으로 시작한다. 한식을 먹고 싶어서 피렌체에 머무는 4박 중 이틀만 한식 조식을 신청했다. 오늘의 아침은 불고기에 된장국, 잡채, 깻잎 장아찌 그리고 밥이었다. 오랜만에 이렇게 정갈한 한식을 먹으니 행복 그 자체였다. 자주 먹고 싶은 맛이었다. 짭쪼름했지만, 그래서 더 맛있었고 밥이랑 잘 어울렸다. 그렇게 아침 든든하게 먹고 나간 곳은 더몰이다. 유럽 여행에서 거의 유일하게 각 잡고 쇼핑을 하는 날이라 설렘도 있고 긴장도 되었다. 야무진 쇼핑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더몰까지는 셔틀을 타고 간다. 15유로에 왕복 셔틀을 예약했는데, 우리는 10시 오픈에 가려고 8시 50분 셔틀을 예약했다. 50분 정도 달려 도착했는데, 서치 조금 하고 유튜브 잠깐 보다가 잠에 들었다. 그렇게 9시 40분에 도착해 내리는데, 발 빠른 한국인들은 모두 구찌 매장 오픈런을 하고 있었다. 사실 셔틀의 90%가 한국인이라 한국의 관광버스 같기도 했다. 구찌 매장이 가장 크다고 해서 나도 구찌 매장의 줄에 동참했다. 가방을 하나 사고 싶다는 생각으로 구경을 시작했다. 구찌에는 벨트, 가방, 옷 등 물건은 많았지만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어 프라다, 발렌티노, 생로랑, 마르니, 메종 마르지엘라, 셀린느 등에 갔다. 그중에 사고 싶었던 가방은 3개가 있었다. 버버리, 셀린느 그리고 발렌티노의 가방 중에 고민을 시작했다. 원래도 결정을 잘 못하는데 비싼 가방을 사는 것이다 보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엄마한테, 언니한테, 그리고 같이 간 언니에게도 물어본 결과 셀린느의 가방을 가장 자주 들 것 같고, 잘 어울려서 골랐다. 그렇게 행복하고 후련하고 만족스러운 쇼핑을 마치고 1시 셔틀을 타고 피렌체로 돌아왔다.
짐을 민박집에 두고 길을 나서 우피치 미술관으로 향했다. 2시 30분에서 2시 45분 사이에 입장하는 티켓을 구매해서 2시 40분에 갔는데, 사람이 정말 많아 보안 검색대 줄을 꽤 기다려야 했다. 나는 미술관을 혼자 여유롭게 보고 싶은 로망이 있어 마이리얼트립에서 오디오 가이드만 구매해서 다운로드하여갔다. 그렇게 입장해 2층부터 보기 시작했다. 우피치 미술관은 메디치 가문의 소장품이라 그런지 종교화가 많이 보였다. 수태고지, 마에스타 등 하나의 종교적인 주제로 그린 여러 가지 그림들이 있어 신기했다. 그러다가 비너스의 탄생을 기점으로 종교가 아닌 신화 속 그림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술책이나 TV 프로그램에서만 보던 비너스의 탄생을 직접 보니 신기했고, 규모가 생각보다 커서 압도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오디오 가이드를 듣다 보면 화가가 그린 대상에 관한 설명도 나온다. 자기 자신과 그림을 의뢰한 사람을 작게 그려 넣은 화가부터 자기 아내와 아들의 얼굴을 각각 그려 넣은 필리포 리피, 자기 자신을 작게 그려 넣은 카라바조까지 그림을 그릴 때 본인이나 주변 인물을 그려 넣는 게 신기하고 인간미가 느껴졌다.
기억에 남는 그림 중 하나는 세 화가가 그린 마에스타이다. 들어가자마자 본 그림이라서 기억에 남는 것도 있지만 치마부에, 두초 그리고 조토까지 세 명의 화가가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그리스도라는 같은 주제를 비슷한 구도와 사이즈로 그리는데 적용한 기법이나 인물의 모습, 특징이 다른 게 놀라웠다. 이렇게 짧은 시간 사이에 그림의 변천사도 볼 수 있었고 미술관을 쭉 둘러보다 보면 미술사의 발전에 따라 변화하는 화풍도 신기했다. 한 작가의 작품 안에서도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아 시간에 따라 화풍이나 디테일이 변하는 것도 놀라웠다.
오디오 가이드를 듣다 보면 그림에 관한 설명과 더불어 하나하나에 대한 디테일도 설명해 주시는데 몰랐으면 넘어갔을 디테일이나 역사, 숨은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어 재밌게 볼 수 있었다.
가장 좋아한 그림은 라파엘로의 <황금 방울새와 성모>이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가 놀고 있고, 성모는 바위에 앉아 둘을 돌보고 있다. 방울새를 매개로 한 의미가 있는 것도 신기했다. 이 그림의 배경이 움브리아 지역인데, 움브리아 지역을 배경을 배경으로 한 그림들이 모두 평화로운 분위기와 아름다운 자연을 가지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1층은 2층과 또 다른 분위기였다. 미술관에서 하이라이트만 보려면 2층을 짧고 굵게 돌라고 적은 코스가 있을 정도로 2층에 유명한 작가의 작품들이 보이는데 1층은 그에 비해 사람도 적고 차분하고 그림의 풍경도 숙숙 변하는 게 신기했다. 2층부터 시작해 2층은 오디오 가이드를 듣다가 시간이 부족해 1층은 중요 작품들만 들었는데, 혼자만의 페이스로 미술관을 돌 수 있어서 좋았다. 오디오 가이드는 처음인데, 설명 듣는 것도 좋아하고 여유가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 코스인 기념품 가게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의 엽서와 비너스의 탄생도 엽서로 하나 사서 나왔다.
우피치 미술관은 사실 지금까지 본 미술관 중에 가장 인상 깊은 미술관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원하는 속도대로, 해설을 들으면서 본 첫 미술관이라 가장 만족스러웠던 미술관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미술관에서 나와 향한 곳은 식당이다. 점심도 못 먹어 배가 잔뜩 고픈 상태로 미리 예약해 둔 식당으로 왔다. 배가 고팠던 나머지 오는 길에 메뉴도 다 골라놔서 앉자마자 바로 주문했다. 후추소스 안심 스테이크와 감베리 파스타를 주문했다. 식전빵을 먼저 먹는데, 올리브오일과 발사믹 식초가 특이했다. 올리브오일은 올리브의 향보다 올리브 나무 잎의 향이 진하게 났다. 상상하던 맛보다 푸릇푸릇한 맛이었고, 색도 초록색에 가까웠다. 발사믹 식초는 굉장히 액체 같았다. 보통 조금의 점성은 있는데, 포도 주스 같았다. 맛도 상큼 그 자체라서 감탄을 연발하며 먹었다. 같이 주문한 와인도 마셔봤는데, 묵직함이 남달랐다. 고기와 잘 어울릴 것 같아 기대가 되었다.
드디어 메인 메뉴가 나왔다. 스테이크는 후추와 코냑 소스와 함께 나왔다. 한 입 썰어 먹어보니 정말 맛있었다. 중간에 질긴 부분이 있긴 했지만, 피해서 먹으면 부드럽고 고소하고 촉촉해 정말 맛있었다. 같이 나온 소스가 킥이었는데, 돼지고기의 냄새도 없애주고 푹 끓여서 그런지 맛있었다. 안에 들어간 후추도 전혀 맵지 않아 고기와 함께 먹으니 잘 어울렸다. 다음으로 먹은 감베리 파스타도 천국의 맛이었다. 새우의 향이 진하고, 오일이 들어갔는데도 선드라이 토마토 때문에 느끼하지 않았고, 새우살도 고소하고 맛있었다. 먹는 내내 감탄을 하면서 먹었다. 와인도 고기랑 곁들이니 행복의 맛이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저녁을 마치고 헤어졌다. 언니는 집으로, 나는 산책을 하러 떠났다.
산책이라고 해봐야 별거 없지만 Eataly라는 식료품 점에 가서 구경을 했다. 파스타면, 페스토 등등 다양한 현지의 재료를 팔아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구경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맛있어 보이는 젤라또 집이 있어 향했다. 무려 구글 리뷰 4,9점의 집이었는데, 문 닫기 5분 전에 갔는데도 세상 친절하신 사장님께서 추천도 잘해주셨다. 나는 추천받은 대로 리코타 치즈 아이스크림과 오렌지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기도 인생 젤라또집 등극이다,,, 달달하고 부드럽고 고소하고 고급스러운 치즈 맛에 오렌지 껍질이 작게 들어가 느끼함을 잡아줬고, 오렌지는 상큼해서 입가심하기 좋았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젤라또 후 진짜 집에 돌아와 체크인도 마저 하고 사장님이랑 수다도 떨고 글도 쓰고 잠에 들려고 한다.
<오늘의 지출>
식사 41유로
쇼핑 약 700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