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카 BeanCa Nov 30. 2024

스무 살 대학생의 혼자 유럽 여행 52일 차

엄마랑 돌아온 뮌헨, 어리광엄마랑 돌아온 뮌헨. 어리광쟁이가 되다.

 오스트리아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 뮌헨으로 이동을 해야 되는데, 언제 뮌헨으로 출발할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오전에 할슈타트 투어에 갔다가 오후에 출발하기로 했다. 6시 반에 일어나 준비하고 짐을 싸서 호텔에 맡겨놓고 출발을 했다. 나는 잠이 많아 평소에도 누가 깨우지 않으면 하루를 꼬박 잘 수 있는데, 이렇게 며칠씩 잠을 덜 자니까 피곤했다.

 그래도 엄마가 할슈타트를 가고 싶어 해서 투어를 신청했다. 버스를 타고 왕복으로 할슈타트까지 데려다주시고, 할슈타트에서는 자유시간을 주시는 형식이었다. 가는데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는데, 졸려서 기절을 하고 할슈타트에 도착을 했다. 평소보다 두껍게 입었는데도 물가라 그런지 추웠다. 눈과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돌아다녔다. 호수에도 안개가 자욱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운치 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하다가 성모 마리아 승천 성당이라는 곳에 갔다. 언덕 위에 있어 전경도 아름다웠고, 이름 때문인지 분위기가 신비로웠다. 뷰포인트도 가고 한 시간 반 정도를 돌아다니다가 찾아놓은 호수 뷰 카페로 갔다.

 코코아 한 잔과 따뜻한 라떼를 주문하고 몸을 녹였다. 30분 정도 되는 시간이었는데, 옆 자리에 계시던 중국인 부부가 말을 걸어서 대화도 나눴다. 이 분들은 어제 도착해서 하룻밤 자고 오늘 잘츠부르크로 출발한다고 하셨는데, 어제 찍으신 사진들을 보여주시면서 설명을 해주셨다. 어제는 날씨가 좋았는지 어제 찍힌 사진들은 오늘 풍경과는 또 달랐다. 얘기를 조금 하다가 버스를 타러 갔다. 다시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 잘츠부르크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짐을 찾아 뮌헨으로 가는 기차에 탔다.

 기차를 타고 뮌헨으로 넘어가는 길게 빵이랑 샌드위치를 사서 기차에서 먹었다. 나는 기차표를 사느라고 엄마가 샌드위치를 골라왔는데, 파프리카와 토마토,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였다. 처음 보는 조합에 당황했지만, 생각보다 치즈와 파프리카가 조화로워서 잘 어울렸다. 가는 길에 창 밖으로 푸른 초원이 펼쳐졌는데, 엄마가 보고 좋아했다. 엄마랑 같이 여행을 다닌다는 게 실감도 나고, 왠지 모르게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뮌헨 중앙역에 도착해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려고 열쇠를 넣는 순간, 열쇠가 들어가지 않았다. 열쇠를 돌렸는데 문을 못 연 적은 있어도 열쇠조차 안 들어가는 건 처음이고, 게다가 엄마도 있는데 열쇠조차 안 들어가니 당황을 했다. 한 5분 돌려보다가 지나가는 사람한테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돌아온 대답이 청천벽력 같았다. 열쇠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나는 집주인한테 전해 들은 게 없는데 열쇠가 바뀌었다니..! 집주인한테 연락을 해놓고, 지나가는 다른 사람에게도 열쇠가 바뀌었는지 물어봤더니 어제 바뀌어서 관리자에게 받아가야 된다고 했다. 집주인도 이메일을 바꿔서 그런지 전해 들은 게 없다고 했다. 관리실이 문을 닫을 5시가 넘은 시간이라 집주인과 연락하며 주변 호텔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걸어서 10분 거리에 호텔이 있어서 결제 직전까지 해놓고 집주인의 연락을 기다렸다. 집주인이 관리실로 갔는데 다행히 열쇠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전 열쇠를 들고 와달라고 해서 열쇠를 들고 그쪽으로 갔다. 무사히 새 열쇠를 전해 받고는 엄마가 기다리는 집 앞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한바탕의 소동을 마치고 무사히 집에 들어왔다. 짐만 넣어놓고 바로 5분 거리에 있는 마트에 가서 고기랑 샐러드용 채소, 계란 등등을 샀다. 집에 와서 엄마가 캐리어 정리를 하는 동안 나는 샐러드도 만들고 고기도 굽고 계란국도 만들었다. (물론 엄마가 많이 도와줬지만..) 그렇게 저녁도 배부르게 먹고 캐리어도 마저 정리하고 씻고 엄마랑 사이좋게 침대에 앉고 누워서 글을 쓰고 있다.

 엄마랑 여행을 다닐 때는 느끼지 못했던 묘한 기분이 든다. 얼마 안 되긴 했지만 내가 사는 집에 같이 와서 있으니까 괜히 한국도 그립고, 어리광도 피우고 싶어 진다. 분명 여기서의 생활도 즐겁고 잘 지내고 있었지만 엄마랑 요리도 하고 밥도 먹으니 한국 같아서 그런지 귀국하고 싶어 졌다. 이제 절반 정도 지났고 아직 두 달이 남았는데 큰일이다. 그리고 이제 두 달도 되지 않았다는 게 놀랍다. 적어도 1년을 이렇게 산 것 같은데, 막상 이 집에 산 기간은 한 달쯤 된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내년에 돌아가면 여기서의 생활도 조금씩 흐릿해지고 한국에서의 생활에도 적응을 더 잘하겠지? 여기를 떠난다는 게 벌써 섭섭해진다. 내년의 일상은 올해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올해 훌쩍 떠난 가장 큰 이유가 뭐라도 하고 싶어서였는데, 내년에도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뭐라도 하겠지? 내년의 일상이 궁금하기도 두렵기도 하다. 역시 엄마가 있으니 어리광쟁이가 되는 것 같다.

 뮌헨에 돌아오니 다시 안정감이 들었다. 여행의 빡빡한 부분은 끝이 나고 이제 쉬엄쉬엄 지내는 시간이다. 뮌헨은 큰 일정을 잡지 않았는데, 엄마는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 약간 걱정도 된다. 이제 뮌헨에서 지내는 날도 한 달 정도가 남았는데, 정이 많이 들어서 벌써 아쉽다. 남은 기간도 여행을 다니느라 뮌헨에 오래 있지는 않을 텐데, 여기 지내는 동안은 야무지게 즐기고 쉬어야겠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체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잠은 수면 패턴 때문인지 12시에 자고, 일어나는 걸 평소보다 2시간씩 일찍 일어났더니 비엔나 일정부터는 피곤함이 몰려왔다. 확실히 피곤하니까 경치도 덜 아름다워 보이고, 여행을 다닐 때에도 감흥이 덜한 것 같다. 밤에 글을 쓸 때에도 비몽사몽 쓰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결국 마무리하지 못한 날들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엄마랑 얘기를 할 때 지친 상태면 리액션도 평소보다 덜 나오고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오늘처럼 일과 시간에 잠을 많이 자고 나니까 확실히 생기가 생긴다. 독일로 돌아가서는 쉬엄쉬엄 다니면서 에너지를 충전해서 다녀야겠다.

 여행을 떠나기 전 목표 중 하나가 부끄럽지만 나에 대해 잘 아는 것이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특징은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어서 좋다. 요즘 알게 된 것은 더위를 잘 느끼지 않고 추위를 많이 탄다는 것이다. 이런 간단한 것을 평소에는 왜 느끼지 못했을까 생각하면 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옷을 대충 입고 나가서 같이 있는 상대, 그리고 주변에 대해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내가 더위를 타는지 추위를 타는지에 관해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또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하나씩 알아가는 게 뿌듯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