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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대학생의 혼자 유럽 여행 84일 차

집콕데이

by 빈카 BeanCa

집콕 데이이다. 원래는 이런저런 계획이 있었지만, 집에서 뒹굴거리고 싶어 집콕데이로 정했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 계란찜을 먹고 싶어서 코인 육수를 넣고 계란찜을 만들었다.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맛있어서 행복하게 먹었다. 다음으로는 여행 계획을 조금 짰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아서 조금은 자세하게 짜봤다. 스페인 계획을 요일별로 세워놓고 간식을 준비했다.

오늘의 간식은 아주 풍성하다. 어제 사놓은 파파야랑 배, 귤과 방울토마토 그리고 어제 슈투트가르트에서 사 온 쿠키이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특이한 과일이 먹고 싶어서 이것저것 사 왔는데, 파파야는 그냥 그랬다. 달지도 상큼하지도 않은 애매한 맛이었는데, 과일을 좋아해 맛있게 먹었다. 배는 모영은 특이했지만 맛은 비슷했다. 어제 사 온 쿠키는 정말 천상의 맛이었다. 괜히 이틀 연속으로 가서 산 게 아니었고, 괜히 사람들이 박스채 사가는 게 아니었다. 처음에 산 라즈베리 크림치즈도 상큼하게 맛있었는데, 오늘 먹은 화이트 초콜릿 티라미수도 적당히 달달하면서 고소하고 부드럽고 커피 풍미가 좋아서 맛있었다. 적당히 달달했지만, 커피랑 잘 어울려서 2잔이나 마셨다.

놀기도 놀고 한국에서 할 일도 다 해치웠다. 이제 쭉 친구랑 그리고 가족들이랑 여행을 해야 하고, 집에 있는 시간 없이 계속 여행이라 미리미리 할 일을 처리했다. 좋아하는 유튜브 보면서 할 일을 하니 세상 여유롭고 행복했다.

그러다 저녁 시간이 되어 거한 저녁을 준비했다. 오늘의 메뉴는 까르보불닭에 목살! 오늘 역대급으로 목살도 맛있게 굽고 불닭볶음면도 맛있게 만들어서 뿌듯했다. 유튜브 중독 같지만.. 옆에 틀어놓고 친구랑 연락도 하면서 저녁을 먹으니 이게 자취의 행복이지 싶었다. 원래는 2차전으로 과일까지 먹을 계획이 있었지만, 배가 불러 과일은 포기하고 물만 마셨다. 오늘 하루종일 집에 있었더니 물을 3리터 넘게 마신 것 같다. 여행을 다닐 때 많이 못 마시니 집에 있을 때 많이 많이 마시는 게 습관이 된 것 같다. 물을 이렇게 많이 마시는지 자각을 잘 못하다가 오늘 집에만 있으면서 물을 3통째 까는 나 자신을 보고 알게 되었다.

언니와의 여행 계획도 쭉쭉 세웠다. 포르투갈부터 파리 이렇게 쭉쭉 세우면서 알게 된 점은, 나는 도시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평생을 시끌벅적하고 사람 많은 도시에 살아서 여행으로 도시를 좋아하는지 자연을 좋아하는지 궁금했는데, 나는 런던이나 파리 이런 도시가 좋은 것 같다. 아니면 휴양과 함께 하는 호캉스도 좋은 것 같다. 이렇게 또 여행 취향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 뿌듯하다. 그렇게 쭉쭉 계획을 세우다가 마지막 도시인 헝가리의 계획을 세우니 기분이 이상했다. 마지막 도시라서 기념품도 사고 Last Night 즐기기라는 말을 적으니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후련함도 있지만 아쉬움이 아직은 더 큰 것 같다. 내년 한국에서의 삶이 궁금하기도 하고,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도 있는 것 같다. 분명 여행을 오기 전에도 행복하게 잘 살았는데 전의 삶과 단절된..? 동떨어진 삶을 몇 달 살아보니 돌아가기 싫다. 한국에서의 생활도 행복하겠지만, 지금의 이 행복한 꿈에서도 깨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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