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독특한 크리스마스 문화 세 가지

by 정숙진

"크래커인데 먹을 수 없다고요?"


크리스마스 시즌을 기념하여 영국의 가정이나 학교, 회사, 식당 등에서 단체로 모여 식사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품목이 있다. 바로, 크리스마스 크래커다.


크래커는 크래커인데 우리가 아는 크래커의 철자까지 맞지만, 먹는 크래커가 아니다.


Christmas cracker

* 크리스마스 크래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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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크래커를 잡아당기는 모습이다.


사진에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않았는가?


크리스마스 크래커 사진을 검색하다 보면 대부분 이런 광경뿐이라 이 자리에 가져오긴 했는데, 엄밀히 말해, 이들이 쓰고 있는 종이 왕관은 크래커 속에 있어야 한다. 크래커를 개봉하기도 전에 왕관을 쓰다니, 이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루에 두 탕이나 뛰었단 말인가?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식사를 할 때 이처럼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과 손을 맞잡고 크리스마스 크래커를 잡아당기는 전통이 있다.


영국뿐만 아니라, 일부 영연방 국가에서도 볼 수 있는 풍습이다. 크래커를 열면 우스개 소리가 담긴 쪽지와 장난감, 종이 왕관 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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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래커에서 나온 종이쪽지를 서로에게 읽어주고 왕관을 쓴 채 식사를 한다.


크래커를 잡아당길 때 내부에 연결된 끈이 끊어지면서 약간의 굉음이 발생한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한꺼번에 터뜨리는 통에 소리가 증폭되어 갑작스러운 폭발음으로 들릴 수도 있으니 놀랄 각오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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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시기가 다가오면, 초대형 사탕 포장처럼 생긴 크래커를 곳곳에서 판매한다.


참, 크리스마스 준비 시기라고 해서 12월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믿기지 않겠지만, 영국에서는 9월 말과 10월 초부터 이 시기에 돌입한다.



"민스파이? 고기 파이인가요?"


이번에는 먹을 수 있는 내용물이다.


Mince pie

* 민스파이


저민 고기라는 뜻의 '민스'가 있어서 고기 파이라 짐작할 수 있지만, 고기가 아닌 과일이 들어간 파이다. 파이 하면 달콤한 디저트가 떠오르기 마련인데, 영국에는 이런 달콤한 파이 말고도 식사나 간식으로 먹을 만한 짭짤한 양념과 고기가 들어간 파이도 있다. 이 때문에 민스파이 또한 고기 파이로 오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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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Good Food.........Cycling Weekly


말린 과일과 요리용 사과 (신맛이 강함), 브랜디, 레몬즙, 설탕이 들어가 새콤달콤한 맛이 강한 파이다. 이 민스파이는 앞서 크리스마스 크래커를 소개하는 사진에도 나온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기간에만 한정 판매하기에 연중 다른 시기에는 시중에 유통되지 않으며, 크리스마스를 코 앞에 두고 구하려면 찾기 힘들다.


2021년에 개봉할 콜린 퍼스 주연의 영화 '민스미트 작전'에 나오는 민스미트가 바로 이 민스파이에 들어가는 내용물을 가리킨다. 2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이 실제 주도한 첩보 작전에 해당한다. 적군을 속일 수 있도록 비밀리에 진행하기 위해 다소 엉뚱한 이름을 가져오기 마련인 작전에 전형적인 영국식 이름을 붙인 셈이다.



"복싱 데이? 복싱을 하는 건가요?"


영국의 여러 공휴일 중 이름만으로는 도저히 목적을 파악하기 힘든 날이 있다.


복싱 데이가 바로 그런 날이리라.


Boxing Day

* 복싱 데이, 크리스마스 다음날


FHi8otfWQAgrFhn.jpeg twitter @ EOI Carballo


말 그대로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 26일에 해당하는 복싱 데이는 운동 종목인 '복싱'과는 무관하다.


영국의 부유한 계층이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하인이나 주변의 불우 이웃을 위해 '복스 (Box)'에 담은 선물을 주는 전통에서 생겨났다. 영국과 일부 영연방 국가에서 공휴일로 지정한다.


사회 소외 계층에게 온정을 베푸는 옛 전통이 아직도 남아 있지만 이제는 가족이나 연인, 지인에게 선물을 주는 날로 더 인식되기 마련이다.


복싱 데이에 맞춰 백화점과 유명 상점이 연중 가장 큰 폭의 할인 행사를 실시하는 건 어떻게 보면 복싱 데이의 전통이 상업적으로 변질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때까지 기다려 연말연시 선물을 장만하거나 그동안 눈여겨보던 고가의 제품을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사려는 쇼핑객들이 몰려온다. 새벽 이른 시간임에도 줄을 서 기다렸다가 상점 문이 열리자마자 우르르 들어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매년 뉴스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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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올해 대부분의 시기를 모임과 이동에 제약을 받고 있는 영국에서 예년과 같은 크리스마스 풍경은 기대하기 힘들다. 떨어져 살던 가족과 친지 혹은 친구들과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된 곳도 있고, 가능한 지역이라도 25일 하루만 허락된다. 연초까지 이어지는 긴 휴가를 보내며 즐기는 영국의 크리스마스 문화를 올해는 그리운 이들과 함께 누리지 못한다니 아쉬울 수밖에 없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Roberto Nick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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