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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Mar 22. 2021

영국에서 삼식이들과 집콕 생활 1년째

올해 3월 23일은 우리 가족이 영국에서 집콕 생활을 한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1년이라는 숫자는 우리 가족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2020년 3월 23일, 영국 전역에 코로나 봉쇄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식료품과 생필품, 필수 서비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상점과 식당, 학교까지 문을 닫아야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외출 제한도 생겼다. 한 집에 사는 가족 말고는 거의 아무도 만날 수 없다. 말 그대로 강제 집콕이다. 


당시 뉴스에서는 한국에서도 집콕 생활을 강조하고 외부 활동을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하지만, 온라인에 공유되는 사진을 보면 여행도 가고, 공연도 보고, 식당에도 가고, 친구도 만나고, 심지어 술집, 나이트클럽도 가더라. 총선과 공무원 시험, 수능 시험도 치르지 않았는가. 예전보다 덜 가고, 덜 하고, 더 조심할 뿐이다. 영국에서는 모두 금지, 중단된 것들이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사람, 정부 정책에 의해 하루아침에 사업체 문을 닫은 자영업자, 학생과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도 집콕 생활을 했다.


The Guardian


봉쇄령이 내려진 지 하루만인 2020년 3월 24일, 영국의 각종 신문 1면 (위 사진)은 암울하고 부정적인 헤드라인으로 가득했다. 이후에도, 갑작스러운 봉쇄 조치에 적응하지 못해 규정을 어긴 시민과 이를 단속하는 경찰 사이에 벌어진 실랑이가 연일 뉴스로 등장했다.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봉쇄령을 피하려다 적발된 사람, 전무후무한 고립 사태를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 코로나에 희생된 안타까운 이들의 사연이 전해졌다. 


길어야 서너 달이면 끝나겠지 하던 봉쇄령이 어느덧 1년간 지속되었다. 중간에 완화되기도 하고 지역마다 차별적으로 시행된 적도 있지만,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불만을 잠재우는 역할만 할 뿐이다. 전국적인 봉쇄 조치가 아니고서는 하루 수만 명까지 치솟던 코로나 확산세를 감당할 방법은 없다. 영국의 학교는 첫 휴교령이 내린 지 6개월 여 만에 재개방을 했다가 겨울 방학과 함께 문을 닫고, 3월 초에 또다시 문을 여는 등 혼란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지난해 12월 8일에 시작된 영국의 코로나 백신 접종으로 지금껏 영국 전체 인구의 42%가 최소 한 차례 백신을 맞았다. 현재까지는 50대 이상의 연령에게만 접종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40대인 우리 부부는 몇 개월 더 기다려야 하지만, 하루 접종자가 50만 명을 넘는 등 상황이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봉쇄 조치 완화, 백신 접종 속도와 상관없이 우리 가족의 생활에는 큰 변화가 없다. 다만, 남편과 아들까지 온 가족이 하루 종일 한 공간에 머무는 상황이 길어지니, 교통정리는 필요했다. 코로나 전에는, 아침마다 남편과 아들이 직장과 학교로 가고 나면, 집은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었다. 혼자 조용하게 번역 일을 하고 집안일, 운동, 공부를 하던 평화로운 일상이 1년 전에 깨진 것이다. 남자들이라고 불만이 없었던 건 아니겠지. 


그래서 코로나 봉쇄 기간 동안 지켜야 할 가족 수칙을 내놓았다.


- 규칙적인 생활 유지하기

- 집안일 분담하기

- 운동 꾸준히 하기  



- 규칙적인 생활 유지하기


가족 모두 집콕 생활에 돌입하면서 내가 가장 강조한 부분이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에 변화가 생겼지만 언젠가는 코로나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회사와 학교를 가지 않을 뿐이지, 하던 일은 집에서 계속 이어가야 한다. 따라서, 이전과 다름없는 효율을 위해 규칙적인 생활 태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리 집은 남편과 나의 사무실, 아들의 교실이기도 하다. 이런 공간에 삼식이 3명이 24시간 들어와 지내는데, 누군가 늦잠을 자거나 식사 시간이 달라서 다른 이의 일상을 방해하거나 뒷정리를 게을리한다면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침 기상과 식사만큼은 시간을 지키기로 합의했다.  



- 집안일 분담하기


이 수칙이 가장 합의하기 힘들었다. 남자들은, 단순히 집안일을 안 하겠다, 가 아니라, 너무 많다, 는 주장이었다. 청소와 집안 정리, 정원 관리 등은 이미 주말마다 하던 일이므로 모두 적극 참여하는데, 엉뚱하게도 식사 준비에서 부딪혔다. 남자들 입장에서는 없던 일이 생겨난 것이요, 나에게는 늘어난 가사 부담이라, 누구에게나 불편하다.


남자들에게 내가 요구한 것은 하루 30분간 요리 재료를 다듬는 일이다. 양파와 당근, 셀러리 등 식사에 필요한 야채의 껍질을 벗기고 자르는 것이다. 두 남자가 힘을 합쳐 30분 동안 준비를 하면 점심과 저녁까지 해결된다. 손질된 재료를 중간에 씻고 요리를 하는 건 내 몫이다. 그런데 이 남자들은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재료가 너무 많다는 트집이었다. 왜 그렇게 많이 필요하냐고? 당신들이 많이 먹으니 많이 필요하지.


코로나 이전, 남자들은 주말마다 요리 재료 다듬기를 해왔다.



우리 집은 야채를 많이 먹는 편이다. 세 사람이 다 야채를 좋아한다. 생으로 먹거나 요리에 넣는 야채, 김치 재료, 그리고 과일까지 합치면 1인당 하루 1kg가량을 소비하는 셈이다. 억지로 먹이는 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소비하는 양을 분석해서, 매주 동일한 분량의 과일과 야채를 주문한다. 그래서 식재료가 남아서, 다 쓰지 못해 버리는 일은 거의 없다. 집에서 배출되는 음식 쓰레기는 야채 껍질과 과일 찌꺼기, 티백이 전부다. 이 단순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무턱대고 재료가 많으니 줄이자고? 


도저히 합의점이 나올 것 같지 않아서, 그 정도 요구도 받아주기 싫으면, 각자 알아서 밥해먹자고 했다. 또한 내가 어렵게 주문해서 배달시킨 식재료는 건드리지 말라고 강조했다. 봉쇄령이 내려진 초기,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배달에 의존하느라 주문 자체가 치열한 경쟁이 된 적이 있다. 밤 12시 정각, 업체 웹사이트에서 식료품 배달 기회가 새롭게 추가되는 걸 간파하고 매주 같은 시간에 잠을 설쳐가며 어렵게 주문했다. 나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양만큼 준비해달라는 내 요청에 응하지 않겠다면, 나도 치사하지만, 내꺼 건드리지마, 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마트 앞에서 직접 길게 줄 서서 장을 보고 조리해 먹든, 배달앱으로 음식을 시켜 먹든 알아서들 하라고. 


길고 지루한 논쟁이 오갔지만, 다행히 강력한 내 최후통첩에 남자들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식당마저 운영을 하지 않는 시기에, 온 가족이 힘을 합쳐 집밥이라도 만들어 먹어야 하지 않겠나.


남자들아 솔직해지자. 우리 많이 먹잖아. 그리고 이게 다가 아니잖아.



- 운동 꾸준히 하기


이건 의외로 가족 모두 순순히 받아들였고, 1년 동안 거의 매일 실시하고 있다. 덕분에 코로나 이전보다 운동량이 늘었다. 다만, 실행의 어려움은 간혹 겪고 있다. 남녀 구성원 모두 177cm 전후의 키에 헤비급까지 포함된 거대 가족이라, 한 곳에 모여 운동하기가 쉽지는 않다. 운동 스타일도 다르고, 운동을 스스로 꾸준히 해본 적 없는 남자들을 구슬려야 했다. 굳이 왜 다 모여서 운동을 하느냐부터, 자기는 헤비급이 아니라고 우기는 등 불평이 없진 않았다.


그래서 가족 모두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에 초점을 두었다. 비타민 D도 흡수하고 정신 건강을 위해 산책과 야외 운동도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영국의 날씨를 고려해, 실내에서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이 필요했다. 체급과 운동 능력도 고려했다. 특히 헤비급 멤버를 위해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을 찾았다. 각자의 운동 능력을 고려해 30분간 집중 운동을 하고 나면 공식적으로 가족 운동은 끝이다. 웰터급과 헤비급 두 체급을 한꺼번에 보내고 나면, 넓고 조용해진 거실에서 나 혼자 30분간 요가를 즐긴다.


꾸준히 실내 운동을 하지만, 날씨가 좋을 땐 무조건 야외로 나간다.


정원 관리도 운동 삼아 하기 좋다.




1년간 집콕 생활로 지내다 보니 예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해지고, 다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려 적응하는 일도 약간 두렵긴 하다. 아무쪼록 다들 안전하게 일상으로 복귀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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