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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Jul 26. 2021

이 시국에 코로나 봉쇄령을 해제한 영국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Five, Four, Three...


수백 명의 군중들이 모두 한 곳을 바라보며 목청껏 숫자를 외친다. 전광판에서 밤 12시 정각을 알림과 동시에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다들 환호성을 지르며 음악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든다. 


BBC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이다. 송구영신의 순간을 기념하고자 친구들과 모여 파티를 벌이는 모습 아닌가. 


하지만 이 날은 새해 첫날이 아니다. 바로 일주일 전인 7월 18일 밤이다. 그리고 곧바로 자정을 넘겼으니 7월 19일 새벽이다. 장소는 런던의 한 나이트클럽.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에도 수만 명씩 배출되는 영국에서 말이다. 



7월 19일은


영국의 코로나 봉쇄령이 해제된 날이다. 이름도 자유의 날 (Freedom Day)이라 붙여졌다. 다른 어떤 업체보다도 더 강력한 코로나 봉쇄 조치에 묶여 2020년 3월 이후 한 번도 개방된 적 없던 나이트클럽마저 운영이 재개되었다. 봉쇄령 해제라고 해서 영국인의 삶이 코로나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간 건 아니다. 아직도 지켜야 할 방역 수칙이 남아 있다. 실내 마스크 착용도 강제는 아니지만 업체에서 자체 판단하여 필요시 계속 의무화한다. 코로나 감염자와 접촉한 경우 자가격리도 여전히 실시한다. * 


* 8월 16일부터 이 수칙마저 완화된다. 코로나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은 감염자와 접촉해도 자가격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잉글랜드 외 지역은 코로나 정책이 조금씩 다르다.


영국에서 코로나 봉쇄령이 가장 엄격하게 실시되던 시절, 필수 업종을 제외한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고 학교도 휴교령이 내려졌다. 학생은 원격 수업을 받고, 상당수 근로자가 재택근무를 했다. 모임도 가질 수 없었다. 하루 1회 운동과 생필품 구매 목적에서만 외출이 허용되었다. 


지금까지 영국인들이 이 엄격한 코로나 수칙을 줄곧 준수하며 살았느냐? 그건 아니다. 이미 이전부터 봉쇄 정책이 단계별로 완화되어 술집, 미용실, 의류점 등 필수 업종에서 제외된 곳이 서서히 문을 열고 사람들과의 모임과 인원수 제한도 풀렸다.



시간을 일주일 전으로 돌려보자. 7월 11일 웸블리 경기장이다.


역사적인 유로 2020 결승전을 앞두고 있다. 8강과 4강 경기를 거치며 잉글랜드 팀의 전례 없는 맹활약에 영국인들이 한창 들떠 있다.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 우승까지 하면 임시 공휴일을 지정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런던 경찰은 입장권을 소지한 사람만 웸블리 경기장 쪽으로 오라는 경고를 냈다. 저녁 8시 경기를 앞두고 오전부터 이미 수많은 인파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경기장 주변은 물론 지하철역에서부터 경기장으로 향하는 진입로까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경찰 경고에도 불구하고 경기장 수용 인원을 훨씬 웃도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beIN SPORTS USA.....On Demand News


그 결과, 관리 직원과 경찰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입장권 없이 경기장에 난입하려는 사람, 이 과정에 기물을 파손하거나 폭력까지 행사하는 사람이 나왔다. 진정한 '훌리건'의 행동을 보여줬다. 경기장 난입과 기물 파손, 폭력 행사 등 축구팬들의 과격한 행동만 이 날 문제가 된 건 아니다.


Sky Sports......AFP                                                  


왼쪽 사진처럼 경기장이 아닌 거리와 술집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를 관람하던 이들은 코로나의 심각성을 잊은 채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등 기본 수칙을 지키지 않았다. 오른쪽 사진은 결승전이 끝나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오는 장면이다.



앞서 나온 나이트클럽으로 되돌아가자. 


1년 반 동안 굳게 닫혔던 문을 다시 열면서 감개무량해진 나이트클럽 주인의 인터뷰 내용이다.


"지난주 축구장에서 벌어진 일을 보세요. 그날 발생한 일해 비하면, 우리 같은 업체가 차별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또 한 번 장소와 시각을 옮겨 보자.


이번에는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내 휴대폰 속이다. 두어 달 전부터 단체 대화방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또래 자녀를 둔 엄마들로 구성된 대화방이다. 코로나 전에는 두세 달에 한 번 꼴로 만나던 이들이다. 같이 영화를 보기도 하고 식당과 호텔에서 모임도 가졌다.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고 생일 파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 봉쇄령과 함께 1년 넘게 모임을 가지지 못했다. 


모임 제한이 점차 완화되는 분위기에 힘입어 올 6월에 같이 모이자는 제안이 누군가에게서 나왔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시들하던 대화방 분위기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는 의사와 간호사도 있다. 몸소 코로나 전선에서 뛰고 있고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의식도 가지고 있는 이들이다. 그럼에도 지금 이 시점에 모임을 가지자는 제안에 모두 찬성하고 나왔다. 나는, 분위기에 떠밀려 내키지 않는 모임에 참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여서는 안 될 이유를 대며 내 주장을 펼칠 수도 없다. 코로나로 인해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다가 오랜만에 모임을 가진다고 해서 한창 부풀어 오른 분위기에 내가 찬물을 끼얹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지난 6월 이후 벌써 두 번이나 모임에 불참했다.  




현재 영국은


코로나 1차 백신 접종률이 성인의 90%에 육박하고 있다. 우리 부부처럼 이미 2차 접종까지 마친 사람도 전체 성인의 70%를 넘어섰다. 높은 백신 접종률 덕택에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 수는 크게 줄었다. 


반면 코로나 봉쇄 조치가 완화되면서 감염자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백신을 맞았다고 코로나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영국의 새 보건 장관도 백신을 두 번이나 맞고도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그와 접촉했던 보리스 존슨 총리는 자가격리 중이다. 코로나 봉쇄령 해제를 이틀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에 걸리지 않거나 혹은 걸리더라도 중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의 유입도 무시할 수 없다.


영국은 지난주부터 초, 중등학교가 방학을 맞이했다. 이 시기에 맞춰 직장인이 본격적으로 휴가를 낸다. 해외로 여행도 가고 멀리 떨어진 친지와 친구를 만난다. 6주간의 긴 방학을 보내고 아들이 학교에 복귀할 무렵이 걱정이지만, 당장 방학 덕택에 봉쇄령 해제의 파급 효과를 간접적이나마 피할 수 있음에 안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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