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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May 12. 2022

영국에서 6월이 기대되는 이유

영국의 여왕과 2022년 6월

"오, 올해 공휴일이 하나 더 늘었군!"


2022년 6월 영국의 달력이 눈에 띄었다.


calendarena.com


예년 같으면 달력에 하나도 없을 공휴일이 이틀이나 주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1년에 통틀어 여덟 개 밖에 없던 공휴일이 올해는 아홉 개가 된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기준).


Spring Bank Holiday (봄 공휴일)

Queen's Platinum Jubilee (여왕 재위 70주년 기념일)



Bank holiday

* 공휴일 (영국 영어)

* 애초에 은행과 금융 기관이 문을 닫는 날이라 이렇게 이름 지어졌다. '은행 문 닫는 날'.



봄의 끝자락인 5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 있던 '봄 공휴일'이,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올해는 6월로 옮겨졌다. 영국에서 날씨가 가장 좋은 달에 나흘간 황금연휴를 만들기 위해서다.



Platinum jubilee

* 70주년 기념일



바로,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재위 70주년을 기념하는 날이다. 엄밀히 70주년에 해당하는 날짜는 2월 6일이다. 주요 공식 일정을 날씨와 연관 지어 정하는 영국인답게 여왕의 재위 기념일도 2월보다는 날씨가 더 좋은 6월로 정했다. 여왕의 공식 생일마저 실제 날짜와 다르다.


Queen's Platinum Jubilee를 '즉위 70주년 기념일'이라 표현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즉위'가 아니라 '재위' 기념일이다.


즉위 (卽位)  
임금이 될 사람이 예식을 치른 뒤 임금의 자리에 오름 (네이버 사전).
재위 (在位)  
임금의 자리에 있음. 또는 그런 동안 (네이버 사전).


70년 전인 1952년은 영국의 선대왕인 조지 6세가 서거한 해다. 후임자가 곧바로 왕위를 물려받고 재위가 시작되지만, 선대왕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간에는 즉위식을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엘리자베스 여왕도 한 해 뒤인 1953년에야 즉위식을 가졌다.


그래서 영국의 여왕과 관련한 기념일은 항상 2년에 걸쳐 이어진다. 재위 (Reign) 기념일과 바로 다음 해 즉위 (Coronation) 기념일.


올해 기념일은 여러모로 영국인에게 의미가 있다. 공휴일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는 점에서만은 아니다. 영국 왕실의 큰 행사에는 늘 공휴일이 추가된다. 


2011년 4월 29일 

윌리엄 왕세손 결혼일 (Royal Wedding)


2012년 6월 5일  

여왕 재위 60주년 기념일 (Queen's Diamond Jubilee)


70주년이라고 하면 현존하는 세계 최장 재위 군주가 되는 셈이다. 그럼, 이미 서거한 역대 왕까지 포함한 최장 재위 기록은?


1위 - 프랑스 왕, 루이 14세 (72년 110일)

2위 - 태국 왕, 푸미폰 아둔야뎃 (70년 126일)

3위 -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70년 116일) * 2022년 6월 3일 기준


1, 2위 왕이 모두 서거하였으므로, 엘리자베스 여왕이 2년만 더 버티면 세계 기록을 달성하는 셈이다. 



"무슨 소리야, 고구려 태조왕만 해도 90년 넘게 재위했는데!"


맞는 말이다. 위 기록은 재위 날짜가 공식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왕에 해당하며 또한 독립 국가의 군주에 한한다. 공식 날짜가 남아 있지 않은 경우와 속국의 군주는 이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위키피디아 사이트 참조).



이날 무슨 행사가 펼쳐질까?


10년 전인 60주년 기념일 사진을 보자.



여왕의 재위 6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각종 공식 행사와 공연이 열렸다. 왕실의 일거수일투족에 늘 관심을 가지는 영국인이 공휴일까지 지정된 이런 날에 가만있을 리 없다. 지역 주민들이 어우러져 동네마다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당시 아파트에 살던 우리 가족은 이런 풍경을 직접 맞이하지 못해 옆 동네로 원정 구경을 가야 했다. 아들이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도 파티가 열리고 이날을 기념하여 글짓기 행사도 가졌다.  



그럼 올해 70주년 기념행사는?


10년 전과 유사한 형태의 행사가 주말까지 4일 동안 연달아 개최된다.  


여왕 생일 기념 퍼레이드 (여왕의 공식 생일도 6월에 해당)

70주년 기념 봉화

세인트 폴 대성당 기념 예배

엡섬 다운스 경마 축제


물론 코로나로 인해 움츠러든 분위기로 실제 풍경은 이전과 다를 수 있다. 또한 올해로 96세를 맞이하는 여왕의 건강도 염려된다. 이미 2015년 이후 해외 방문은 중단한 상태이며, 얼마 전부터 국내에서의 활동마저 자제하고 있다. 건강한 사람도 힘겨워하는 나흘 연속 공식 행사를 고령의 여왕이 예전처럼 소화해낼 것 같지는 않다.


왕실 내부 풍경도 예전과 다르다. 우선, 여왕의 재위 시작부터 최근까지 옆자리를 묵묵히 지켜주던 남편 필립공이 작년에 타계했다. 여왕은 올해 처음으로 필립공이 없는 재위 기념일을 맞이하는 셈이다. 또한 미성년자 성매매 때문에 국내외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급기야 군 계급과 왕자 칭호까지 박탈당한 둘째 아들 앤드류 왕자의 문제도 있다.



그럼 우리 집은?


"엄마요, 나 시험 치거든요."


요즘 심심하면 아들이 하는 말이다. 아들은 5월 중순부터 6월 말까지 치러지는 영국의 수능 시험을 앞두고 있다. 부모가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편도 아니다. 가족끼리 당일치기 여행이라도 가려면 아들은 이렇게 말하며 바쁘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영국에 공휴일이 하나 더 추가되건 말건 시험이 끝나는 6월 말까지 조용히 산책이나 하고 지내야 한다.  


물론 TV로 축하 공연을 보고 동네에 파티가 열린다면 참석하겠지만.

그런데 아무도 나서지를 않네.

시청에 길거리 파티 허가도 받아야 하고 주민들끼리 추렴도 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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