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영국, 두 나라의 작가 공모전을 비교해봤다

by 정숙진

정숙진님께
우선 심사위윈들에게 등단 당선작으로 좋은 평점을 받은 작품은...


공모전에서 내 수필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이 도착했다. 당선 축하 메시지치고는 너무나 사무적이다. 생애 첫 공모전 도전에 덜컥 당선이라니, 기쁘면서도 석연찮았다. 한국과의 시차도 있지만 응모 4시간 반 만에 온 연락이다.


사무적이고 뜨뜻미지근한 당선 소식에는 이유가 있었다. 등단비 50만 원을 내라는 요구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예비 당선자의 입금으로 최종 당선 여부를 결정하는 모양이다. 일부 문단에 이런 관행이 있음을 전해 들었던 나는 황당해할 겨를도 없이 등단을 정중히 거절했다.


최근 신인 작가 공모전을 검색하고 있다. 나처럼 무경험자도 가능하고 인터넷으로 작품을 보낼 수 있는 곳부터 찾다 보니 이런 황당한 공모전이 걸려든 것이다.


내 이름으로 책을 냈고 곧 하나가 더 나오지만, 솔직히 아직도 작가가 되었다는 기분은 안 든다. 전업 작가로 나설 만큼 판매부수도 많지 않고 유명세를 탄 적도 없기 때문이다. 작가로 인정받고 베스트셀러를 내겠다는 야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늘 부족함을 느끼며 글쓰기 훈련에 임하는 학생으로 사는 기분이다. 번역가로 일하면서도 원 저자의 의도를 해치지 않을 매끄러운 한글 표현을 찾느라 늘 고민한다. 되도록 많이 읽고 많이 써보는 수밖에 없다. 작가든 번역가든 내 분야에서 인정받기 위한 노력에서 나를 다잡아줄 목표를 찾다 보니 글짓기 공모전이 눈에 들어왔다.


참, 나의 도전에는 조금 무모한 면이 있다. 어떤 성향인지도 모르고 아무 공모전에 나간 것 자체가 무모하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보다 더 무모한 도전은 한국과 영국의 공모전을 모두 시도한다는 점이다. 영국에서 주최하는 한국어 부문 작품이 아니라, 순수 영어로 된 작품이다.


한 가지 언어 창작에만 몰두해도 부족할 시간이다. 한국어로 쓴 작품을 영어로 번역해 두 나라 공모전에 동시 출품하는 것이 아닌 별개의 작품을 준비 중이다.


두 언어의 글쓰기 매력은 나에게 전혀 다르게 와닿는다. 언어마다 그 글을 읽는 독자의 성향은 다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그렇다. 매주 브런치에 올리는 글처럼, 나는 한글로는 주로 수필을 쓰지만 영어로는 소설을 쓴다. 논픽션과 픽션, 두 장르의 매력은 전혀 다르지 않은가.


한국어를 사용한 경력이 훨씬 긴 배경을 감안한다면, 나는 영어보다는 한글로 소설에 도전하는 편이 이치에 맞다. 하지만 순수 한글 소설을 읽는 독자가 기대하는 정서와 내가 쓰고자 하는 소설의 정서가 아직까지는 일치하지 않으리라 본다. 언제든 다른 형태의 무모한 도전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나로서는 앞으로 장르도 바뀌리라 기대한다.


짧은 기간이나마 작가 공모전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준비하면서 두 나라 공모전을 비교해보았다.



출품 제한


작가의 순수 창작물이며, 출판이나 발표한 적 없는 작품이라는 조건은 두 나라 공모전 모두에 해당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중복 투고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영국과 다르다. 한국의 많은 신춘문예가 매년 12월 전후에 열린다는 점 때문에 고민하는 작가 지망생이 많을 것이다. 원칙적으로 작품 한 편으로 같은 해 공모전 하나만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영국의 공모전은 대부분 중복 투고를 허용한다. 소설을 예로 들면, 단계별 심사를 거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도중에 다른 공모전에 출품해도 된다. 중간에 입상하면 진행 중인 공모전에 통보해 출품을 취소하면 된다. 간혹 중복 수상을 허용하는 공모전도 있다.



등단 제도


각종 신인 작가 공모전은 작가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등단의 기회다. 등단 작가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으면 출판사에서 작품을 받아줄 확률도 높고 작품을 고르는 독자의 관심을 끌기도 좋다.


그런데 작가의 등단 경력은 유독 한국과 일본에서만 통용되는 문화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등단으로 인한 혜택이 훨씬 더 많겠지만 자칫 신인 작가의 발목을 잡는 계기도 된다. 작가 공모전에는 등단 작가의 참여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돈만 내면 등단시켜 주겠다고 내게 연락한 문단도 있지 않은가. 등단비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는 문단에 내 이름을 올렸다가는 돈 주고 산 등단 작가 타이틀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면서 다른 공모전에 나가는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만다.


등단 제도가 없는 영국에서는 다른 대회 참가와 수상 경력이 있어도 공모전에 참가할 수 있다.



에이전트 제도


영국에는 등단 대신 출판 에이전트 (Literary agent) 제도가 있다. 작가를 대신해 책을 내줄 출판사를 물색하고 관계자와 협상하며 책 홍보도 한다. 이보다 앞서, 어떤 책이 잘 나가는지 시장조사와 독자층 분석도 한다. 이를 바탕으로 팔릴 만한 책을 쓰도록 집필 방향을 잡아준다. 영국의 출판사는 작가로부터 직접 원고를 받기보다는 에이전트를 통하는 걸 더 선호한다. 작품이 걸러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유명 작가 JK 롤링도 에이전트의 도움으로 해리 포터 시리즈를 세상에 내보냈다.


에이전트를 둔 작가는 영국의 신인 작가 공모전에 참가할 수 없다. 기성 작가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작품 분량


소설, 동화, 수필, 시까지 장르별 작품 분량에는 두 나라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그 분량을 표시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한국에서는 원고지 매수를 분량으로 정한다. 출판계에 오래 이어져 온 전통을 쉽게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초등학교 이후 원고지를 써본 일 없는 나로서는 불편하게 인식된다.


영국에서는 글자 수로 작품 분량을 표기한다. 단편 소설이 보통 3천 자 전후다. 대략 A4 용지 6장, 원고지 60매 전후에 해당한다. 한국도 원고지 매수가 아닌 글자 수로 분량을 표기하면 작품 준비 과정이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다.



참가비


신인 작가 공모전에 웬 참가비?


영국의 공모전은 대부분 참가비를 요구한다. 작품 길이에 비례해 금액도 커진다. 소설의 경우 대략 45,000원가량이다. 여기에다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작품에 대한 품평을 해주기도 한다. 글쓰기 훈련을 시켜주는 셈이다.


공모전 진행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작품을 읽고 심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심사위원을 위촉하고 심사 단계별 통과자들에게 안내 편지도 보내야 한다. 한 해에 수천 여 점씩 들어오는 작품을 일일이 접수하고 심사하는 수고를 금전적 가치로 매기는 셈이다.



심사 과정


영국의 공모전은 중편 이상의 작품을 낼 때, 전체 작품이 아닌 작품의 도입부와 줄거리만 제출하는 1차 심사를 진행한다. 여기에 통과된 작품만 두 번째 분량을 제출하고 2차 심사를 거친다. 마지막인 3차에 이르러야 전체 작품에 대한 심사가 진행된다.


각 단계별 작품 분량의 예다.


1차 심사: 작품 도입부 5천 자 + 줄거리

2차 심사: 작품 도입부 5만 자 (첫 5천 자 제외) + 줄거리

최종 심사: 작품 전체 + 줄거리


이렇게 세 단계를 거친다. 최종 심사까지 몇 개월씩 걸릴 수밖에 없다. 각 단계의 작품 분량은 공모전마다 조금씩 다르다.


한국의 공모전은 원고 전체를 제출하여 한 번에 심사를 거치는 한편, 중편 이상의 소설은 작품 줄거리도 첨부해야 한다.



참가 연령


참가 연령은 왜?라는 질문을 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아동, 청소년 대상 글짓기 대회가 아닌 이상, 신인 작가 공모전에 연령 제한이 없다.


영국의 신인 작가 공모전에는 대부분 만 18세 이상만 참여한다. 영국의 복잡한 미성년자 규정을 고려하면 이해가 된다. 출품 과정과 참가비 지불, 환불, 저작권에 얽힌 법적 문제 발생을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영국의 신인 작가 공모전



커버 이미지: Photo by Black ice from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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