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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Mar 28. 2023

지하철 추행범을 (소심하게) 혼내던 날

"하,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누군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난다. 또 어떤 이는 전화를 걸어 지하철 때문에 늦을 것 같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한다. 다른 방향에서는 칭얼대는 아기를 달래는 소리도 들린다. 모두가 지치고 힘겨운 시간이다.


늘 혼잡한 2호선 승강장이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해 평소보다 몇 배로 붐빈다. 지하철이 영영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 보다 이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두려움이 앞섰다. 피곤함과 두려움, 불확실성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1999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듣도 보도 못한 '지하철 준법 운행'을 실시한다고 했다. 요즘은 지하철과 버스 회사에서 자주 시행하는 파업 형태라고 하는데, 서울살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내게는 정말 생소한 용어요, 파업 방식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너무나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아무도 크게 화를 내거나 동요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기만 한다. 정당한 임금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직원들로 인해 불편을 겪으면서도 이들을 응원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드디어 그토록 기다리던 지하철이 도착했을 때다. 승강장에서 기다리는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피곤한 얼굴들이 차례대로 내린다. 이들의 행렬이 잦아들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승객들을 보며 나는 한 차례 더 감동했다. 얼마 만에 도착한 열차인가, 지금 서두르지 않으면 이번 열차를 타지 못하고, 그러면 또 한없이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데도 다들 여유를 보인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어느 누구도 열차가 늦게 왔다고 크게 짜증을 내거나 내부가 혼잡하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한국인의 국민의식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내 행복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한 발짝도 옮기기 힘들 정도로 꽉 차버린 열차 내부에서 간신히 손잡이를 붙들고 서 있는데, 내 뒤에서 이상한 낌새가 감지되었다. 아무리 혼잡한 공간이라도 타인의 몸과 밀착하는 일은 쉽게 벌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런 일은 벌어지고 만다. 적어도 나 자신과 내가 아는 다른 여성들까지 숱하게 겪은 일이다. 바로 지하철 추행남의 등장이다.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부딪히는 바람에 추행범으로 오인받았다며 억울해하는 남성, 그것도 여러 남성의 사연을 읽은 적 있다. 나의 경험도 그런 오해에서 발생한 건 아닌가, 의문을 가지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대중교통 속에서 추행을 당해본 이라면 공감하겠지만, 내 경우 그런 추행의 경계가 모호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의 신체 부위를 내 몸에 밀착시킨 남성이 10여 분 이상 자리를 뜨지 않았다. 아무리 혼잡한 공간이라도 이 '밀착'이 주는 곤혹감을 피할 여유는 충분히 확보되는 데도 남성은 내 등 뒤를 고수한다. 불쾌한 심정으로 내가 몸을 흔들어 남성을 떨쳐내곤 하지만 그의 동작은 여전히 반복된다. 그런데도 이게 추행인가 아닌가 오해했다고 할 수 있는가? 적어도 내 경험에서는 전혀 아니라고 본다.


왜 추행범을 신고하지 않았나?라고 또 묻는다면, 80, 90년대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성추행 신고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을 것이라고 이 글의 제목처럼 '소심하게' 변명해 본다. 그토록 자주 접하는 추행범을 다 신고할 수 있을까, 그것도 의문이다. 피해자의 진술 위주로 수사가 진행되는데 가해자와 피해자 중 누군가 거짓말을 한다면 일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처음 겪었을 때만 해도 당혹감과 수치감으로 괴로워했지만 수년간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동일한 경험을 하다 보니 단련되고 말았다. 남성을 팔꿈치로 밀쳐 내거나 고개를 돌려 쓱 위아래로 훑어봐주면 끝이다.


하지만, 이 날은 상황이 다르다. 자주 겪는 일임에도 그 어느 때보다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시민 모두가 불편을 겪으면서도 질서를 지키고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에 감동하던 내 기분에 찬물을 끼얹어버렸으니. 재해가 발생한 마을에서 주민 전체가 손발 걷어붙이고 사고 수습에 나서는데, 마을의 빈집을 터는 이가 있다고 하면 배신감마저 들지 않겠나. 범죄자는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위급한 상황에서는 누구나 한뜻이 되어 더 큰 불행을 막고자 힘을 모으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않겠나.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등 뒤에서 불쾌한 행동을 하는 남성을 어떤 방식으로 응징할까, 그 고민 말이다. 단순히 문제의 남성을 째려보는 걸로 해결할까 했는데, 빽빽이 들어선 사람들 사이에서 고개를 돌려 상대를 바라볼 틈은 없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낼 수밖에.


1년 반 가량 격투기를 배우며 알게 된 사실은 사람의 급소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내 뒤 남성은 자신의 급소 중 반 이상을 온전히 내게 노출하고 있었다. 물론, 몸이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어서 내가 익힌 가격 자세가 제대로 먹히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럴 때 어디를 공격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내가 신고 있던 구두가 떠올랐다. 인간의 급소 중 가장 바닥에 해당하는 발등을 노리기로 했다.  


추행남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불확실한 상태에서 무턱대고 발을 찍었다가 엉뚱한 사람이 피해를 볼 위험이 있지만, 당시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이러했다. 내가 점찍은 사람이 추행남일 확률은 50%다. 그가 추행남이라면 내게 밟혔다고 직접 항의를 못 하겠지. 반대로, 무고한 사람이라면 내게 항의를 할 테고. 바로 옆사람 얼굴도 보기 힘들 정도로 혼잡한 지하철에서 발을 밟았다고 큰 죄가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행여 내가 실수를 한다면 당사자에게 사과하면 되고, 그 과정에서 추행남이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린다면 시도해 볼 만하지 않겠나. 이런 계산 때문에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제발, 추행남의 발이기를...

제발, 무고한 사람의 발이 아니기를...


속으로 몇 번이나 외치며, 추행남의 발로 추정되는 위치에 오른발을 슬쩍 올려놓았다. 슬쩍이긴 하지만, 이미 내 몸무게의 3분의 1이 실렸으니 고통이 전해질 게 분명하다. 남성의 발등이 약간 움찔하는 느낌과 함께 그가 하던 불쾌한 동작도 멈추었지만, 그 이상 반응이 없다. 그제야 자신감을 얻은 나는 아껴둔 힘까지 한꺼번에 쏟아부었다. 너 오늘 잘 걸렸다, 속으로 외치며 뾰족구두 고문을 시작했다. 웬만한 남성 못지않게 키가 큰 여성이 온 힘을 다해 밟는데 그 고통이 얼마나 크겠나. 그렇게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음에도 남성에게서는 여전히 반응이 없다. 오호, 이 X이 확실하구나. 


하지만, 추행범을 제대로 찾았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당혹감도 밀려들었다. 뒷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다. 


이대로 계속 밟고 서 있어야 하나?

이 남자가 고통을 호소하다가 보복하면 어떡하지? 

남자의 정체를 밝히고 경찰서에 끌고 가야 하나?


또 다른 고민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사이, 내가 탄 지하철이 어느 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차량의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고 주변에서 부산한 움직임이 일기 시작할 무렵 밖을 내다보니 사당역이다. 환승역이라 그런지 다른 곳보다 타고 내리는 승객이 더 많은 듯하다. 하지만, 출입문 입구를 가로막다시피 빽빽이 들어선 이들 때문에 서두르지 않으면 제때 내리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앗! 바로 그때다.


내가 바깥 동정을 살피는 순간 발 밑이 허전해짐을 느꼈다. 내 구두에 짓눌려 영영 발을 못 뺄 것 같던 남성이... 또, 출입문과 멀리 떨어진 위치라 누구보다 더 많은 인파에 가로막힌 그 남성이... 그럼에도 내 발을 피해 날쌔게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뒤늦게 차창 너머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그가 어떻게 생겨먹은 X인지 알 리가 없다. 그의 인상착의를 파악할 여유가 없어서다. 출퇴근 무렵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이 다 그렇듯, 열차에서 벗어나는 순간 누구나 아무런 특징도 없는 불특정 다수가 되어 버린다. 추행남은 그렇게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Ethanon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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