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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Mar 14. 2023

아들의 학교에 괴한이 침입했다

"빨리 교실로 들어가, 얼른."


교실 입구에서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났다.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내던 학생들더러 교실로 들어가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오후 2시 20분경이니 나처럼 다음 수업을 기다리는 학생도 있고 빈 시간을 이용해 시내에 나갔다 오기도 하고 운동장을 배회하거나 숙제를 하는 이도 있었다. 내가 앉아 있던 2층 라운지는 컴퓨터와 책상, 의자가 곳곳에 놓여 있고, 한쪽 벽이 아파트 베란다처럼 뚫려 있는 구조다. 


처음에는 수업이 시작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왜 벌써 교실로 들어가라는 건지 의아했다. 더군다나, 각자 수업도 다른데 왜 아무 교실에나 들어가라는 건가 하다가, '록다운'이라는 말에 다들 정신을 차렸다. 


컴퓨터 혹은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친구와 수다를 떨던 학생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선생님의 지시를 따랐다. 교실로 들어서자 선생님은 문을 걸어 잠그고 커튼도 닫았다. 


다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영문을 몰라 당황해하면서도 사태가 심각한 듯하니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제야 바깥에서 누군가 고함치는 소리, 무전기로 연락하는 소리, 다급하게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뒤 사이렌이 울리고 경찰이 출동한 듯 하지만, 이후 일이 잘 마무리되었는지 점차 잠잠해졌다. 40여 분이 지나고 드디어 록다운이 해제되자 커튼을 다시 열어젖히고 교실 문도 열었다. 록다운 규정을 엄격하게 지켜 실내조명까지 껐다고 하는 다른 교실에서는 불도 들어왔다. 수업이 있는 학생들은 각자의 교실로 가도 된다는 지시가 내려졌다. 


마지막 수업을 끝내고 밖으로 나와 보니 총으로 무장한 경찰이 교문 주변을 돌고 있고 기자들까지 도착해 있었다. TV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에 응하는 학생도 보였다. 버스를 타기 위해 정문으로 향하면서 이곳저곳에서 오늘 록다운에 대해 전해 들었다. 소동이 벌어질 무렵 교문 근처에 있던 S는 빨리 실내로 들어가라는 경비 아저씨의 말을 듣고 급하게 뛰다가 귀에 꽂힌 이어폰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오늘 오후, 학교 후문 쪽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록다운을 실시하였습니다."


교장에게서 온 이메일이다.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교실로 뛰어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던 시점에서 약 한 시간 지날 무렵 도착한 글이다. 즉, 사건이 일단락되고 수업이 재게 된 후 학부모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낸 이메일이다. 이 모든 상황을 사건 발생 순간부터 내가 전해 들은 건 아니다. 교장이 보낸 이메일과 아들이 집에 와서 들려준 이야기, 다음 날 신문에서 전하는 보도까지 종합하면서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대학 준비반까지 십 수년간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소방 훈련과 록다운 훈련에 정기적으로 참여했지만, 아들이 실제 상황을 맞이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위험에 대비한 훈련이지만 실제 위험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말이니까. 적어도 이날까지는 말이다.


소방 훈련 (Fire drill)은 진행 방식과 목적이 무엇인지,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나도, 막연하게나마 떠올릴 수 있지만, 록다운의 의미는 내게 모호했다. '록다운 (Lockdown)'이라는 말은 영국이 코로나 19 영향권에 접어들면서 누구나 흔하게 쓰던 단어였다. 자유로이 외출하던 일상이 모두 중단되고 실내에서만 시간을 보내던 시기다. 하지만, 코로나 이전 시대부터 아들을 학교에 보낸 나로서는 팬데믹과 무관한 시대의 록다운은 무언인가 궁금했다. '오늘 학교에서 록다운 훈련했어요.'라고 말하는 아들에게 물어봐도 그걸 왜 하는지 정확히 모르겠다고만 했다. 테러, 지진...뭐 이런 말을 했던 것 같긴 하다. 화재와는 다른 차원의 위험을 다루는 것이라고만 짐작했을 뿐이다. 


다수의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훈련의 특성상 참가자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잘 깨닫지 못한다. 간혹, 훈련 도중 실제 사고라도 난 건가 싶어 울음을 터트리는 학생도 있지만, 대부분 눈앞에 아무런 위험도 없는데 위험이 발생한 것처럼 단체로 행동해야 하니 웃어버리곤 했단다. 왜 하는지도 모르고 록다운 훈련을 받고 온 아들의 시큰둥한 반응에 나도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이날 교장에게서 두 번째 이메일을 받은 건 오후 8시경이다. 아들이 귀가하고 가족 모두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각자의 일에 몰두할 무렵이다.



"오늘 무기를 든 괴한이 학교에 침입해 학생을 공격했습니다."


Weapon (무기)

Intruder (괴한)

Target (공격)


컴퓨터 화면으로 이메일을 들여다보던 내게 이 세 단어가 눈을 찌를 듯 다가왔다. 첫 번째 이메일을 읽고는, 단순히 학생들끼리 충돌이 있었겠거니 했다가, 무기를 든 괴한이 공격했다니 너무 놀라 기절할 지경이었다. 바로 3시간 전 귀가한 아들이 무사함에 이제야 감사함을 느꼈다. 교장이 새로 보낸 이메일도 어쩌면 사건의 전모를 파악했다 할 수는 없지만, 괴한에게 당한 학생의 상태가 위중한 것 같지는 않아 안심할 수 있었다.



"XXX에 위치한 OOO 학교에 칼을 든 괴한이 침입했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다음 날 학교 이름으로 검색해 찾아낸 인터넷 뉴스다. 


범인의 칼 소지 여부에 대해서는 약간 불분명하다. 누군가 칼을 든 괴한을 보았다고 신고했지만 범인은 도주해 버리고 현장에는 어떤 형태든 무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괴한에게 당했다는 학생도 칼에 찔린 것도 아니라고 한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칼이냐 아니냐 보다는, 어떤 형태로든 무기를 든 괴한이 학교에 나타났다고 하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안전하다고만 여겼던 학교가 갑자기 범죄 현장이 되었으니. 


모호했던 록다운의 의미도 이날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테러와 범죄에 대비한 훈련이라고 해야 할까. 총기 사건에 대한 대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 미국처럼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나라였다면 어땠을까? 학교에서 범인이 어떤 행동을 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얼마 전 아들의 학교에서 벌어진 일을 아들의 시선에서 그리고 저 자신, 학부모의 시선에서 적어본 글입니다. 


영국에서는 총 든 경찰을 보는 일은 드뭅니다. 총기 소지 자체가 자유롭지 않으니 총기 사고도 드문 편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테러 위협이 강해지면서 정부 주요 건물에 배치된 무장 경찰을 볼 수는 있지만 학교와 주택가에서는 힘듭니다. 실제 범죄 현장을 경험해보지 않은 제 입장에서 말입니다. 그만큼 이날 학교에서의 사태가 심각했다는 말이겠죠.


아들이 다니는 학교는 대학 준비반 (Sixth Form College)으로, 한국으로 따지면 고등학교 2, 3학년을 위한 학교입니다. 대학 입시에 필요한 과목만을 배우기에 대부분 서너 과목 정도만 이수하므로 중간에 수업이 없는 시간도 있어서 학생들은 학교 안팎으로 자유로이 다닙니다. 교복도 착용하지 않습니다. 자유로운 옷차림과 행동 덕택에 언뜻 보면 대학생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부모에게는 여전히 안위가 걱정되는 어린 자녀지요. 


교문 출입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고 록다운 훈련도 예전처럼 정기적으로 실시할 테니 안심하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달라는 교장의 다짐과 당부가 담긴 세 번째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범인은 한 명도 아니고 여럿이요 아직 도주 중이라고 해서 불안하긴 마찬가집니다. 


아들에게 다음번 록다운 훈련에는 집중해서 제대로 참여하라고 해봅니다.

때가 되었다 싶으면 잘 도망갈 수 있도록 평소 달리기 연습을 해두라고 합니다.

S처럼 소지품 잃어버렸다고 찾지 말고 무조건 안전한 곳으로 들어가라고 당부도 해봅니다.


부모와 학교, 경찰이라 해도 완벽하게 학생을 보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일상은 이어져야 하니까요.


커버 이미지: dailyecho.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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