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낱말 퍼즐에 빠져 있을 때였다.
애초에 낱말 맞추기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므로, 시작은 미미하다. 쇼핑 후 적립되는 포인트를 어디에 쓸까 고민하다가 잡지에 이르게 되었다. 아들이 관심을 가지던 과학 잡지 하나를 골라낸 뒤 나머지 선택할 수 있는 주제로는 역사, 여행, TV, 영화, 연예, 스포츠, 건강, 낚시, 패션, 가사, 원예, 전원생활 등이었다.
딱히 내 구미를 당기는 잡지가 없기에 '이건 읽을 일 없겠지' 싶은 것부터 하나씩 지우다 보니 낱말 퍼즐만 남은 것이다.
시작이야 어떻든, 이후 퍼즐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이렇게 되었다.
나의 우스꽝스러운 옷차림과 퍼즐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너처럼 키 큰 애한테는 안 어울리지'라는 주변 사람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히려 귀여운 스타일에 눈길을 돌렸다.
안타깝게도 176cm 키를 넉넉히 감싸줄 여성용 캐릭터 잠옷은 없었다. 간혹 나만큼 큰 여성과 마주치곤 하는 영국에 건너와 살면서도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이 남성용 M 사이즈를 걸치고 나타났더니 초대형 피카츄라며 우리 집 남자들의 놀림거리가 되고 말았다. 놀림을 당하거나 말거나 여행을 마치고 피곤해진 몸으로도 나는 여행지 숙소에서 이렇게 낱말 퍼즐을 즐겼다.
그러나...
영어 퍼즐이 생각보다 쉽진 않았다. 알파벳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입력해야 다음 단어로의 연결이 가능하다. 한국어 퍼즐처럼 음절 단위로 연결하는 것과 다르다. '안무가'라는 한국어 단어를 맞추려면 '안', '무', '가'의 세 음절 중 하나에 이어 주어진 단어 설명만으로 맞추는 일이 가능하다. 솔직히 이 정도 짧은 단어는 그 설명만 있어도 가능하다.
하지만, 안무가의 영어 단어인 'Choreographer'를 맞추는 문제는 13개 알파벳 중 하나와 단어 설명만으로는 힘겹다. 철자도 헷갈린다. 상당수 영어 퍼즐 문제가 이런 식이다. 무엇보다, 내게는 아직도 생소한 영국과 유럽의 역사 지식, 인명, 지명 맞추기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사전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평소에 쓰던 사전으로는 부족했다. 때로는 'Apothecary'처럼 현대인은 잘 쓰지 않는 단어도 알아야 하고, 특정 단어에 대한 동의어를 요구하기도 해서다.
그래서 찾아낸 웹사이트가 있다.
말 그대로 동의어 사전이다. 이미 이 정도 웹사이트는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다 싶어 이 자리에 소개하기가 고민되었다 (이미 알고 있는 분이라면 그냥 참고 읽어주시면 감사^^).
퍼즐 빈칸에 채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싶을 때 힌트로 제시된 단어를 이 사이트에 입력하면 정답이 될만한 동의어가 여럿 나온다. 이 중에서 단어 길이와 이미 제시된 알파벳까지 일치하는 걸 고르면 된다. 'perpetual'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incessant, continuous가 동의어로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낱말 퍼즐을 할 때만 필요한 웹사이트가 아니다.
동의어 사전이므로 영어가 쓰이는 상황 전반에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영어로 글을 쓰던 중 자주 반복되는 단어가 눈에 거슬린다면 자신이 쓰려했던 단어를 넣어 웹사이트에서 검색해 보자. 이와 유사한 의미를 지니는 다른 단어를 여럿 찾아준다.
↑ 'Say'라는 단어의 동의어를 검색한 결과다.
영작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쓰게 되는 단어이면서 그래서 다른 단어로 교체하고 싶은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단어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남편과 아들은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공짜로도 구하는 걸, 왜 굳이 돈 (= 포인트) 주고 사냐, 는 반응이었다. 이 남자들에게 보란 듯 펜을 쥐고 퍼즐을 맞추어 가고 있다. 공짜 포인트 활용이 계기가 되긴 했지만 나에게 퍼즐은 단순히 시간 때우기나 심심풀이가 아니다.
영어 단어와 동의어 공부에 힘을 실어 준다. 처음에는 걸림돌로 느껴지던 영국, 유럽의 역사, 인명, 지명도 계속 맞닥뜨리다 보니 지식이 되었다.
비록 나 혼자만의 실력으로 한 편 완성하긴 힘들지만, 낱말 퍼즐을 통해 새로 익힌 단어는 독서와 뉴스 청취, 영화 감상, 원어민과의 대화까지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초등학생 수준의 어휘력과 고등학생, 대학생 수준의 어휘력으로 누릴 수 있는 생활의 질은 각기 다르지 않은가.
무엇보다 내게는 놀이다. 좀 힘들고 시간이 걸리는 놀이기는 하지만...
물론, 나처럼 굳이 돈이나 포인트를 써서 낱말 퍼즐이 담긴 잡지를 살 필요까지는 없다.
앞서 소개한 웹사이트만 이용하더라도 나처럼 동의어를 찾는 사람이라면 관심 가질 만한 단어 맞추기 게임을 다양하게 경험해 볼 수 있다.
↑ 매번 게임을 시작할 때마다 광고가 나와서 성가시긴 하지만 무료로 낱말 퍼즐을 해볼 수 있다.
↑ 전형적인 낱말 퍼즐 방식과는 다르지만 이보다 훨씬 쉽게 해 볼 수 있는 낱말 게임이다. 주어진 알파벳을 조합해서 간단한 단어를 만들어 내면 된다.
↑ 동의어 맞추기 문제를 매일 하나씩 이메일로 발송해 주는 기능도 활용할 만하다. 하루 한 단어 그리고 어쩌면 그 동의어까지 최대 두 단어를 익히는 셈이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hello aesthe on Pexels
* 휴가를 다녀오느라 연재 요일보다 앞당겨 이번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