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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Jul 04. 2024

해외에서 가지는 한인 모임 특징, 자꾸 사람이 늘어나요

- 예전 글을 새롭게 다듬어 올립니다 -


"우리 지금 선영이 방에 모여서 한 잔 하고 있는데, 자기도 올래?"


같은 호텔에 머물고 있던 A가 이렇게 연락해 왔다.


요청에 응하려니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거절하기는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살짝 고민이 되었다. 아들이 어려서 혼자 호텔방에 남겨둘 수 없다고 핑계를 댔더니, 같이 와도 된다며 A가 나를 부추겼다. 이미 잠들어버린 애를 깨워서 가기도 그렇고, 설령 깨울 수 있다 해도 어른들끼리 떠들며 노는 공간에다 애를 데려다 놓고는 모임이 재미날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선영과의 관계 때문에 더욱 망설여졌다. 선영도 같은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사람으로 자주 만난 편임에도 서로 친근하게 다가서지는 못했다. 


단체 모임이 열리던 날 A와 선영, 또 다른 친구까지 총 3명이 우연히 한 테이블에 앉은 걸 계기로 서로 잘 통한다 싶었는지 선영의 방에서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나 보다. 


기분 좋게 취한 듯 들뜬 A의 목소리를 전화기 너머 듣고 있자니 내 기분마저 덩달아 들뜨는 듯했다. 하지만, 선영과의 관계도 서먹하고 무엇보다 세 명이 나누던 대화 공간에 내가 난데없이 끼어드는 건 무리다 싶었다. 


선영이 난임으로 고통받던 시절과 녹록지 않은 시집살이까지 들려주고 있다며 A가 귀띔하니 고개가 더 절레절레 흔들어졌다. 이런 고된 인생사의 2막을 듣기 위해 다들 한자리에 모인 것이리라. 어쩌면 남에게 털어놓기 힘든 주제로 친밀하게 대화 나누고 있을 텐데, 별 친분도 없는 사람이 나서면 분위기를 깰 위험이 크다.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귀엽게 협박하는 A의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해야만 했다.



"이번에 여행 갈 때 대성이 형 가족도 합류하기로 했어."


이게 무슨 헛소린가 싶어 남편을 째려봤다.


친구들과 어울려 스코틀랜드를 여행할 꿈에 한창 부풀어 있을 때다. 얼마 전 그곳에 자리 잡은 B와 그의 가족도 만나고 그 집을 베이스캠프 삼아 여행 다니기로 한 것이다. 우리 일행과 B까지 모두 같은 학교 출신으로 영국에 오기 전부터 친분이 있던 사람들이다. 


B의 취업을 축하해 주고 동창회도 가져보자, 로 준비한 모임인데, 이런 취지와는 무관한 사람인 대성 가족마저 따라가겠다니 곤란하지 않겠나. 남편은 무리한 부탁이라는 걸 알면서 승낙하고 말았단다. 대성의 감정이 상할까 거절하지 못한다면서, 불청객 3명을 떠안아야 하는 B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단 말인가.


일행 몇 사람이 더 늘어난다고 무슨 대수냐 할 수 있지만...


'스코틀랜드에 정말 가고 싶었는데 지리를 몰라 고민하다가 이번 기회에 같이 가면 좋겠다 싶었어요.'라는 대성의 속셈을 모를 리 없다. 대놓고 공짜를 밝히느라 주변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그의 습성은 이미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식사가 제공되는 모임이라면 빠지지 않고 나타나 주변 사람이야 다 먹든 말든 차려진 음식을 빛의 속도로 바닥내고도 먹을 것이 더 없냐 요구하는 그의 태도도 거슬렸다. 우리 일행의 숙식을 책임져야 하는 B의 가족에게 폐를 끼칠까 우려하던 차에 생면부지의 불청객 3명까지 동원하다니. 


나는 이런 점을 강조하며 대성에게 연락하라고 남편을 다그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남편은 이번 여행에 합류하지 말아 달라는 어설픈 통보를 그에게 보냈다. 이 때문에 대성 가족과의 관계가 크게 소원해지고 말았지만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다음 주, 민희 집에 모여서 같이 놀 건데, 부럽지?"


C가 자랑하는 투로 말을 꺼냈다. 


모인 사람들 중 유일하게 직장인이던 나를 겨냥한 말이다. 나는 이런 모임 주제가 나올 때마다 일 때문에 참석할 수 없다며 모두에게 양해를 구하면서도 속으로는 안도했다. 민희 집에서 가진다는 이번 모임의 조짐으로 봐서는 얼떨결에 참석했다가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질 것 같아서다.


민희는 자기 집에서 시루떡 만들기 강연도 하고 밥도 대접한다는 명목으로 3명의 친구를 초대했다. 각종 요리에 능하고 입담도 좋은 민희의 초대를 꺼릴 이유가 없다. 나도 비슷한 이유로 그 집에 초대받아 간 적 있지만, 직장 때문에라도 또 특유의 모임 성격 때문에라도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날 내가 목격한 장면은,


민희가 3명의 친구를 집으로 초대했다는 소식이 주변에 전해진다.

'나도 갈래', '나도 끼워줘', '나는 왜 안 데려가' 등으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끼어들기 시작한다.

애초에 3명이던 모임 참석자가 순식간에 8명으로 불어난다.

이 자리에 없던 민희는 모임 전날까지 위 사실을 모르고 있다.

시루떡 만드는 법도 배우고 점심도 먹으려던 이들은 졸지에 반찬 하나씩 만들어 민희 집에 가져가는 과제를 떠맡는다.


나는 이 감당할 수 없는 부풀리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해외에서 고국 사람을 만나면 너무나 반갑다. 


어떤 때는 반갑다 못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현지 언어를 몰라서 혹은 교통 시스템이 익숙하지 않거나 길을 잃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현지 사정에 밝은 한인을 만나면 구세주라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설령, 그런 막막한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랜 타국 생활로 향수병을 앓는 이라면, 고국 사람과 나누는 수다만큼 좋은 치료제는 없다. 


이 때문인지,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은 다양한 형태로 모임을 가진다. 무슨 협회나 기관이라는 거창한 이름과 함께 수백, 수천여 명의 회원을 보유한 대규모 모임도 있고 종교 단체도 있지만, 서너 명 정도의 지인과 가지는 소규모 모임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다양한 형태의 한인 모임에 참석하다가 발견한 공통점이라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사람이 늘어나는 현상이다. 공식적인 협회나 기관의 이름을 가진 모임이라면 회원수 증가는 오히려 반길 일이지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이런 공식 모임이 아닌 사적 모임이다. 


모임에 누군가를 끌어들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인의 인정미 넘치는 태도는 해외서도 예외가 아니기에. 아니, 더 절실하다고 봐야 하기에. 


공통의 관심사가 없더라도 해외 거주 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뭉칠 수 있다고 보는 이가 있다. 고국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향수도 달래고 친분을 쌓자는 뜻에서다. 그런데, 이들의 태도가 누군가를 피곤하게 만들 수도 있다. 모임 주최자의 동의 없이 친구를 모임에 데려 오거나 혹은 당사자의 의견은 무시한 채 모임에 강제 참여시키는 행동 말이다.



"자기, 민지라고 알지?" ..... "몰라?" ..... "이번에 처음 영국에 왔다는데, 내일 너네 집 모임에 데려갈게. 같은 한국인끼리 알고 지내면 좋잖아." ..... "뭐? 인원수가 확정되었다고?" ..... "야, 우리가 언제 그런 거 따졌어?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되잖아!"



"동수 학교에 한국인이 새로 들어왔다던데, 소식 들었어?" ..... "못 들었다고? 그럼 내일 술자리에 같이 갈 테니 서로 인사나 나누자고."



"주말에 한인들끼리 골프 모임하는데 같이 갈래?" ..... "골프를 못 쳐서 안 된다고?" ..... "야, 남자가 사회생활 하려면 골프 정도는 해야지. 일단 와서 선배들에게 인사부터 하라고."



* 글에 언급된 이름은 물론 이니셜까지 모두 가명이며, 소개된 각 일화도 약간씩 각색되었습니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Kelsey Chanc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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