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아들이 꺼낸 말이다.
성관계?
합의?
그런 주제로 학교에서 수업을 한다고?
아들이 하루 일과를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그날 들었던 과목별 수업 내용과 학교에서의 일을 간단히 요약해 전달하는 방식이다.
오전 9시에서 오후 3시까지 이어지는, 입시를 준비하는 학교라 보기 힘들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 듣는 수업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 않기에, 아들의 이야기는 그다지 길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지난번 했던 수업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새 단원으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학교를 졸업한 지 수십 년 지난 부모 입장에서 그다지 흥미를 끌만한 내용은 없다. 그럼에도 한 번씩 이날처럼 귀가 쫑긋 해질만한 주제가 나오기 마련이라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잉글랜드의 중등학교에서 실시하는 교육 과정 중 PSHE (Personal, Social, Health and Economic Education)라는 수업이 있다. 괄호 속 4개의 단어가 암시하듯 인간과 사회, 건강, 경제를 가르치는 과목으로 인간관계와 마약, 술, 경제 상식, 섹스가 주요 내용이다.
바로 이 PSHE 수업 시간에 아들이 감상했다는 영상을 이 자리에 소개할까 한다.
성관계와 합의라는 주제를, 차의 나라답게 '차'와 '차를 마시는 상황'에 비유하여 만든 영상이다.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 상대가 차를 마시겠다고 동의할 때만 차를 준다.
- 차를 마시겠다고 동의했다가 막판에 안 마시겠다고 말을 바꾼 경우, 차를 주면 안 된다.
- 자신이 차를 끓여 왔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에게 억지로 마시게 하면 안 된다.
- 상대가 말을 바꾸었다고 해서 화를 내서도 안 된다.
- 의식이 없는 사람은 '동의'를 할 수 없으므로, 차를 주면 안 된다.
- 지난주에 함께 차를 마셨다고, 오늘도 상대가 같이 마실 것이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의 뜻이 담겨 있다.
이 모든 '차 마시는 행위'를 성행위와 연관시켜 보면 된다.
상대의 의사 표현을 임의로 해석하거나 의사 자체를 무시하면 폭력이며 범죄가 된다. 무엇보다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강제해서는 안 된다.
기존의 성폭력 예방 자료가 피해자 위주로 제작되었다면, 이 비디오는 가해자가 될 만한 상황에 초점을 둔다. 상대가 '동의'하지 않을 때 강요해서는 안 되며,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가하는 행위는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폭력임을 우회적으로 설명한다.
'동의 (Consent)'에 대해서는 누구나 필요성을 알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 의미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가해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억울하다 여길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위 비디오는 동의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영상 속 사람의 이미지가, 어린아이의 솜씨처럼, 단순한 형태로 표현된 것도 흥미롭다. 남녀 구분이 전혀 안 되는데, 이 또한 '성관계'와 '합의'라는 말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와 상대의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든 합의를 거쳐야 하니까.
커버 이미지와 동영상: Thames Valley Pol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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