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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3시간전

영국의 총선을 보다가 떠오른 7년 전 아들과의 대화

"엄마요, 오늘 테레사 메이가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아들이 쪼르르 달려와 전하고 간 말이다. 


테레사 메이가 뭘 했는지 아들의 뒷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브렉시트 협상 말고도 영국 정부가 당면한 정치, 경제 현안들로 인해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테레사 메이 총리의 얼굴이 뉴스에 나오던 시절이다.


아들은 뉴스를 시청하다가 부모가 관심 가져야 할 만하다 싶은 사항이 나오면 이렇게 달려와 브리핑을 해주곤 했다. 등교하기 전 시간대이니 아마도 <BBC 브렉퍼스트>를 보고 있었을 테다. 아침 정보 프로그램으로 뉴스를 주로 다룬다. 다른 시간대, 다른 방식이긴 하나 나 또한 그 정도 뉴스는 접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집에서 누군가 리모컨을 독차지해 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애까지 덩달아 뉴스를 보나 할 수도 있는데, 남편과 나 누구도 주중에는 TV를 보지 않는다. 


오롯이 아들 스스로 선택한 습관인 셈이다. 시간이면 또래 친구들이 즐기는 <텐><블루 피터>도 있을 텐데 말이다. 지금처럼 넷플릭스가 우리 집에 상륙하기 전인 듯하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7년의 일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 되자 학급에서 정치에 관한 수업과 토론을 실시한다고 했다. 영국의 모든 초등학교 정규 과정인지는 모르겠으나, 다가오는 총선 (6월 8일)에 맞춘 일회성 행사였을 가능성도 있다. 학생들에게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정보를 가르치고 모의 투표도 실시하여 어른들의 정치 참여를 흉내 내게 하는 학교도 있었다.  


아들은 이 정치 수업을 앞두고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나를 긴장시켰다. 


마침, 한국의 대통령 선거 (5월 9일)도 앞두고 있을 때다. 덕택에 영국의 정치뿐만 아니라, 한국과 영국의 정치 제도 비교, 지도자 선출 과정은 물론 부모의 정치관까지 두루 아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이보다 한참 전이긴 하지만, 같은 해 트럼프 미 대통령이 취임 (1월 20일)했으니 2017년은 아들의 정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같은 시기에 프랑스 대통령 선거 (4월 1차 투표, 5월 결선 투표)도 있었지만, 프랑스 정치까지 파고들지는 않았다. 휴... 다행이다.



야당과 여당이 뭔가요? 

정당 이름을 왜 자꾸 바꾸나요? 

한국의 국회의원은 임기가 어떻게 되나요? 

영국의 국회의원은요?

대통령은 어떻게 뽑나요? 

대통령은 왜, 어떻게 탄핵하는데요?

엄마는 어느 당 후보에 투표했어요?

왜 그 후보를 선택했는데요?

이번 선거 결과로 한국의 총리가 바뀌나요? 



질문은 간단하지만 이에 답하려면 구조적으로 차이 나는 두 나라의 정치 제도부터 설명하고 민주주의 역사도 언급해야 했다. 아무리 양쪽 국가에 모두 오래 살았다 해도 전혀 다른 두 나라의 정치 제도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나로서는 쉽지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묻는 아들의 질문 방식도 내 답변을 삼천포로 빠지게 만들었다. 한국어 이해가 느린 아들을 위해 최대한 쉬운 언어로 풀어내야 했다.


한국의 복잡한 당명 변천사를 언급하다가 뜨끔하기도 했고 박근혜 탄핵에 이르러서는 서글퍼졌다. 아들 입장에서는 순수한 호기심에 묻는 질문이겠지만 어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고, 왜 그런 결론에 이르도록 했나 책망하는 듯 들리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아침마다 뉴스를 보고 각종 질문을 퍼부으며 사전 준비까지 한 아들이 반에서 어떻게 수업에 임하고 토론을 벌였을지 눈에 훤하게 들어왔다. 


아들에게서 전해 듣는 내용과 학부모로 내가 참관한 수업, 교외 활동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바라본 영국의 초등학생은 토론과 발표에 익숙한 편이다 (잘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말이 틀리면 어떡하나?', '다른 사람이 나를 비웃지 않을까?' 등의 걱정은 하지 않는 듯했다. 누구든 거리낌 없이 손을 들어 주어진 질문에 답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물론, 토론과 발표에 익숙하다고는 해도 내 아들처럼 매일 뉴스를 시청하고 질문을 퍼부을 정도로 정치에 관심을 가질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나이대에서 보기 힘든 호기심으로 담임교사와 급우들까지 당황시켰을 것이 뻔하다.


"쟤, 뭐라고 하는 거야?"

"나도 몰라. 지 혼자서만 떠들고 있네."

"우리 할아버지가 하는 말투랑 비슷하다."


급우들끼리 이렇게 수군거리지 않았을까 걱정도 되었으나, 다행히, 아들은 수업이 재미있었다고 한다. 


커버 이미지: @ AP Archive


* 여름휴가를 다녀오느라 다음 주 연재는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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